Le 25 Avril 2015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흐렸던 날, 루브르 박물관(Museé de Louvre)을 찾았다. 파리에 ‘우리 집’이 생기기 전이라, 여행자의 마음으로 더 열심히 파리를 돌아다니던 때였다. 뮤지엄패스에 날짜를 적고, 줄을 거의 기다리지 않고 박물관에 들어갔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는 곳이 눈에 띄었지만, 다시 언제든 올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오디오 가이드는 빌리지 않았다. ‘오늘은 가볍게만 둘러 보자’ 그런 생각이었다. 대신, 내 손에는 파리 여행 책자에서 뜯어온 루브르 박물관에 대해 적힌 몇 개의 페이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서 가져온 기본 정보가 담긴 안내서도. ‘가볍게만 둘러 보자’고 생각했던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날 난 여섯 시간을 있었다. 책에 실린 작품들을 찾아다닌 것뿐이었는데, 그러다 마주친, 책에는 실리지 않은 작품들 앞에서 조금 멈춰서 있었던 것뿐이었는데.
에펠탑도 그렇고, 삼각 피라미드도 그렇고 파리 곳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게 현대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파리의 또 다른 상징이자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이기도 한 유리 피라미드는 날 좋은 날엔 파리 하늘을 안에서도 밖에서도 담는다. 흐린 날이었던 이날, 나는 파리의 하늘을 안에서 담았다.
나는 쉴리관을 시작으로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집트 문명을 엿볼 수 있는 조각품들이 가득한 곳에서 안내서에 적혀 있던 ‘커다란 스핑크스’를 보았다. 회화를 좋아하는 난, 사실 조각 작품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도 표정이 살아 있는 다양한 조각품과 ‘어떻게 저 때 저런 색을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릇이나 장신구 따위의 유물들은 꽤 흥미로웠다.
‘밀로의 비너스’를 보았다.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몰랐을 땐 이 조각상의 작가 이름이 밀로인 줄 알았더랬다. ‘밀로의 비너스’는 아직도 누가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해진 건, 살짝 비틀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완벽한 인체 비율, 미소 짓고 있는 표정, 고정 양식과 헬레니즘 양식의 조화 때문이란다. ‘밀로의 비너스’의 정면에 가 서 보았다. 책에 적힌 설명처럼 비스듬해 보이지만 균형 잡힌 자세, 온화한 표정, 섬세하게 표현된 옷자락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면보단 옆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미세하게 올라가 있는 입꼬리를 볼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잘린 팔이 주는 묘한 느낌 때문인지, 높은 콧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묘하게 옆모습이 앞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
종종 악동으로 묘사되는 큐피트의 조각상도 보았다. 항상 다른 이들의 사랑만 지켜보던 큐피트의 사랑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사랑을 할 땐 한없는 진심을 보여주었을까. 장난이나 훼방이나 거짓이 아닌. 자신을 믿지 못한 연인 프시케를 죽음의 잠에서 깨우기 위해 화살이 아닌 키스를 날리는 큐피트의 모습을 보니 문득 그가 이야기하는 다른 이들의 사랑이 아닌, 큐피트의 사랑이 궁금해졌다.
쉼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졌다. 그래서 루브르 박물관 안에 있는 카페 몰리앙(café mollien)을 찾았다. 메뉴판을 펼쳐 들고 보니 모르는 프랑스어가 가득했다. 그래도 샌드위치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참치를 뜻하는 단어 ‘Thon’이 보여서 그것과 라떼 한 잔을 함께 주문하기로 했다. ‘여기요’라는 말 등으로 직원을 불러세우지 않는 프랑스에서는 그들이 눈치껏 와주기를 기다리거나 눈을 마주쳐 와달라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무척 많았고, 직원들도 바빠 보였다. 나는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눈이 마주친 직원에게 내가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하는 간단한 식사가 여유로운 일이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테이블 사이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 갔고, 카페 바깥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게다가 6유로 20상팀이나 하는 샌드위치는 마트에서 파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선 편의점에서 파는 그런 샌드위치였다. 나는 대체 무얼 기대한 걸까. 사람이 조금 없었거나, 샌드위치가 그런 샌드위치만 아니었어도 조금 나았을 텐데. 나는 적지 않은 실망감이 들었지만, 배가 너무 고팠으므로 샌드위치와 라떼 한 잔으로 굶주린 배를 치우고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딜 간건지, 카페를 벗어나자 박물관은 한결 한산해 보였다. 그렇게 여유롭게 박물관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뭐지 싶은 궁금한 마음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모나리자’가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모나리자는 생각보다 정말 작았고, 화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 큰 감동을 주진 않았다. 작품보단 작품에 얽힌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뿐이었다. 나는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르누아르의 그림이나 박물관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작품 속 작품 같아 보이는 장면들이 더 좋았다. 박물관을 찾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인 이곳 사람들은 더러 유명한 작품을 찾기도 하지만, 때론 구석진,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눈길이 잘 미치지 않는 작품을 들여다보고, 그저 작품들에 둘러싸여 가만히 생각에 잠기고. 가만히 생각 하는 일조차 사치였던 삶에서, 이런 삶을 만나니 처음엔 당황스럽다가도 적응하고 나니 이런 게 진짜 여유구나, 싶어 참 좋았다.
생각지도 못한 여섯 시간을 보냈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던 건 한때는 궁이었던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작품, 작품이 걸려 있는 공간,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모두를 구경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 그 모든 게 작품이 되는 곳, 나도 누군가의 눈엔 작품이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