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불일치에 관하여
타자와 자아는 분리된다.
각 사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아는 타자의 개념에 속한다.
타자의 생활양식을 더 잘 모방할 수록 자아정체성이 확고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체성이 확고해진다는 것은 실질적 자아가 숙성되는 것과는 반대의미다.
이렇게 우리는 타인과 함께 간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기준과 부합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라도 살아야 중간이라도 간다.
민주주의 체제를 걷지만, 수많은 암묵적인 합의가 전체주의처럼 응집되어 있다.
과거로 부터 전해져 오는 역할과 현대생활상의 차이 '덕분에' 혼란스럽다.
지금껏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는 판단을 해왔다.
아닌 것은 아니었고 옳은 것은 옳았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내 생활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관을 갖고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아존중감을 올려주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선택이 삶을 바꿔놓는 비중이 높아졌다.
삶은 더욱 많은 것과 연계되어 있으니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선택할 땐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고려해야 한다.
낙인이 찍히는 선택은 사회적인 매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보편적 기준에 맞는 선택을 한다.
나는 주관에 맞는 선택을 함으로써 더욱 당당했으면 좋겠다.
타자와 나는 다르고, 선택의 기준은 더더욱 다른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눈을 가로질러 나만의 길을 갔으면 한다.
홀로 외로이 걸어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