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늘 ‘둔한 아이’로 살아남아야 했다. 예민함을 들키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태연한 척하며 무던하게 지내야 했다. 물론 내 안에선 예민한 감각들이 화산처럼 꿈틀대고 있었지만, 그런 걸 내보였다가는 상처만 더 깊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난 둔하다. 저들의 비웃음은 비웃음이 아닐 거야. 그냥 웃긴 일이 있었나 보지. 저 표정은 나를 향한 게 아니겠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속였다. 그렇게 예민함을 감춘 채 둔한 척, 둔한 척, 매일을 연기하듯 살아갔다.
예민함은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는 공간에서나 빛을 본다. 예민한 척을 부릴 수 있는 건, 그 예민함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나 가능한 호사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예민함은 그저 불필요한 날카로움, 기이한 유별남일뿐이다. 그래서 나는 바깥에서 예민함을 내려놓았다. 그저 웃는 얼굴, 아무리 작은 소리에도 번뜩이는 감각을 억누르고 둔감한 사람인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버텨야 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했다. 남편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나 본인을 꽤나 “예민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결혼 전부터 “난 참 민감해서...”라고 말하곤 했지만, 함께 살아보니 그 말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 2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그는 고백한다. “당신을 보니 내가 예민한 게 아니었어.” 머리만 대면 숙면에 빠지고, 어떤 소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남편이, 잠결에 부스럭거리는 소리 하나에도 벌떡 일어나 “뭐야?” 하고 주위를 살피는 나를 보며 진짜 예민함이 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우리 집엔 온갖 종류의 귀마개가 쌓여 있고, 암막 커튼은 내게 절대적이다. 식구들은 집 안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본다. 이 모든 건 결국 나 때문이다. 낯선 공간에서는 내 눈동자가 끊임없이 주변을 훑어대고, 잠시도 안정을 찾지 못한다. 배가 고파도 속이 불편해도 낯선 곳에선 좀처럼 편히 해결하지 못한다. 밖에서는 그저 둔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사람들의 찰나의 표정, 순간의 손짓, 시선의 숨김 모두 보이지만 못 본 척, 모르는 척해야 한다. 내 예민함을 드러냈다간 쫓겨나듯 외면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예민하다고 하면 깜짝 놀란다. “네가? 전혀 안 그런 것 같은데?” 밖에서는 둔한 사람 코스프레를 완벽히 해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건 나름대로 내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조금 달라진다. 가족들 앞에서는 미세한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내 모습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밖에선 절대 꺼내놓지 못한, 내가 억눌렀던 예민함이 그나마 조금은 숨 쉴 공간을 얻는다.
예민함은, 생각해 보면, 가지런히 정돈된 선물상자 같은 게 아니다. 누구나 쉽게 감탄할만한 깔끔한 특징도 아니고, 때로는 다루기 힘든 성질머리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예민함은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고, 나만의 감각적 생존기술이다. 나는 둔한 척했지만, 사실 나는 언제나 심해 속 물고기처럼 주변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네가 그런 애였어?”라는 말에 그저 웃어넘기곤 한다. 이게 바로 내가 세상과 타협한 방식이니까. 그리고 적어도 집 안에서만큼은 예민한 나로 살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