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 거절합니다.

by 신서윤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르쳐 보고 싶다는 마음에 평생학습원에서 가베 지도사 수업을 들었다. 이후,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가베 수업을 해준 적이 있었다.

뭐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성격인 나는,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그렇게 가베 수업으로 나를 소진한 날이면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피곤함을 핑계 삼아 소홀해지곤 했다. 더구나 아는 엄마가 해주는 수업이라는 이유로 돈도 거의 받지 않았다. 기름값도 안 되는 돈이었다. 힘만 들고 경제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수업을 계속할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 아이들 친구들의 가베 수업을 접고 집에 있던 어느 날, 그 수업을 듣던 한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하는 가베 수업이 너무 좋아서 다른 엄마에게 소개를 시켜줬다는 이야기였다. 곧 전화가 갈 테니 이야기하고 수업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나는 소개를 부탁한 적도 없었고, 소개받고 싶지도 않았다. 더 이상 가베 수업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힘들다는 핑계로 화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날 소개해 준 그 엄마의 교육에 대한 만족과 배려는 고마웠다. 그래서 이어지는 전화벨 소리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상대는 당당했다. “소개받았어요. 수업할래요?”라는 뉘앙스. 돈을 주는 사람의 당당함이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지금 수업을 쉬고 있었고, 저는 전문가도 아니에요.”라는 핑계를 대며, 상대가 자연스레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완곡한 거절은 쉬운 선택이다.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만족하기 어려우실 거예요”라며 스스로를 낮추면, 상대는 “그럼 굳이”라며 물러난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다면, “그 정돈 할 수 있어요. 다만, 이 정도 페이는 저를 가볍게 보는 것 같네요”라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걸 잘 안다. 나는 그렇게 완곡한 거절을 했다. 전화를 끊은 상대방은 다신 나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동생의 권유로 국어 과외를 시작해 보려고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렸다. 왜 그 학벌에 그 실력을 썩히고 있느냐는 끈질긴 설득이었다. 여유 있으면 좋지 않느냐는 너무 좋은 말. 연말이라 그런지 큰 기대는 없었다. 대부분 견적만 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니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오래된 기억 속, 그 당당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를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었다.

“고2 올라가요. 급해요. 보니까 독서 논술 위주던데 내신 위주 수업 가능해요?”

가능하다고 대답하니, 상대는 덧붙였다. “기존 선생님이 사범대 국문과 출신인데 우리 아이 국어 100점 맞게 해 줬어요. 문법을 너무 잘 가르쳐서 스스로 모르는 문제를 봐도 풀 수 있게 만들어 줬어요.”

아... 기대치가 높구나. 기 죽이기 싸움에 힘들겠구나. 하기 싫다. 전화 통화 중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완곡한 거절을 시작했다.

“이미 너무 잘하고 있는 친구라 뭘 해도 잘할 거예요. 저는 문법보다는 문학과 비문학에 강점이 있으니 선택은 어머님 몫입니다.”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아직 배가 부른 걸까? 아니면 아직 덜 굶은 걸까? 끝없이 이어지는 고민 속에서 오늘도 나는 거절이라는 선택을 했다. 잘 모르겠다. 내가 선택한 이유가 단지 겁이 나서 도망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 남긴 것은 분명히 있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아마도 나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거절 당함을 택하며, 나를 지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에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해야 할 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내 선택의 중심에 나를 두고, 스스로를 믿으며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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