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

by 신서윤

아동 청소년 문학을 하는 작가들은 어찌 보면 개개인의 개인사업자일지도 모르지만, 서로의 글을 공유하며 토론하고 비평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흔히 말하는 '요즘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아동 청소년 문학을 창작하는 일은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아동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고,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청소년 소설 비평 모임에 참여했다. 줌으로 만난 작가들과 선생님들은 네모난 화면 속에 바둑판처럼 빼곡히 모여 있었다. 코로나 이후 흔해진 온라인 만남이었지만, 모여서 서로 공유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나누며 풍부한 대화를 이어갔다. 비평의 대상이었던 청소년 소설은 이슈가 되는 책이었고, 그만큼 이야기의 양은 풍성했고 시간도 길어졌다.


그러던 중 나는 너무 화가 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쩌면 화가 날 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비평 대상이었던 책의 내용 중 가난한 엄마가 딸에게 겨울 점퍼 하나를 사주기 어려워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한 작가가 그 장면에 대해 "요즘 세상에 겨울 점퍼 하나 못 사줄 만큼 가난하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화가 난 이유는, 그 작가가 "그런 삶이 있구나"라고 공감하기보다는, 그저 이해가 안 된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더나아가 "그럴 수 없다"는 단언이었다.


세상에는 내가 겪어보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 많은 삶들이 존재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그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아동 청소년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라면, 공감 능력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날 나는 화가 난 상태로 시 쓰기 과제 마감일을 맞이했다. 화를 억누르며 시를 써서 제출했지만, 받은 평가는 "너무 직설적이고 강하다. 시는 좀 돌려서 써야 한다"였다. 평을 듣고 조금 진정된 후에 내가 쓴 시를 다시 읽어보니, 화가 나서 폭발 직전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쩌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쪽방촌에 살던 친구의 집, 모로 누워 계시던 친구의 아버지,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공간에서 나와 함께 놀고 싶어 했던 내 친구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다행히 부모님이 아프지 않으셨다는 점만이 다른 점이었다.


어떤 화평자는 내 시를 '저항시'라고 불렀다. 그 말에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쓴 시가 저항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세상에 대한,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작은 저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부드럽게, 더 많은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동 청소년 문학을 하는 작가라면 특히나 그렇다. 나도 그 점을 잊지 않고,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글을 써 내려가야겠다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