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약 6,000만 원을 빌렸다. 약 5년 동안.
처음에는 사업을 하니까 믿고 아무런 조건 없이 선뜻 빌려주었다.
이자도 받고, 원금도 조금씩 받았다.
돈은 늘 사람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사람이 변했다.
빌려준 사람도, 빌린 사람도 형편이 어려워지자 갚아라, 조금만 기다려달라.
친구였지만 이제는 친구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 10년 지기.
참다못해 고소를 하였다.
고소인 조사는 다른 경찰서에서 하고 내게로 넘어왔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까지 사기죄로 고소하였으니 얼마나 독해졌을까?
피고소인, 전화하여 경찰서로 불렀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가 학교를 가지 못해 집에서 돌봐야 하는데 자기를 대신하여 봐줄 사람이 없다며 차일피일 미루었다. 약 일주일 후에 출석하기로 하였지만 세 아이를 돌봐줄 시부모님께서 갑자기 편찮으셔서 어렵다고 연기를 했다. 주말에도 조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남편이 아이를 보고 오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것도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접수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갔다.
무더위가 시작하는 어느 오후에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오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하니, 계속 미루던 피고소인. 시간이 지금 난다며 30분 후에 들어오겠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다음 날에 하자고 했더니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니 오늘 꼭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미룰 수 없어 오라고 했다.
약 30분 후에 40대 초반의 여성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화장을 하지 않은, 집에서 아이를 보다 금방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오늘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돈을 빌린 사실은 부인하지 못할 테니 조사는 빨리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권리를 고지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사항을 물었다.
재산상황을 묻는데 머뭇거렸다.
사실대로 대답을 하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물론 사실대로 답을 해야 한다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뱉었다.
입을 가린 마스크를 살짝 내리더니 입술이 떨렸다.
사실을 말하고 싶은데 그 입이 마음을 따르지 않는 듯 보였다.
다그치지 않았다. 기다려주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랬다.
옆에 있던 동료직원이 바라보았다.
내가 윽박지르거나 아주 곤란한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눈물이 계속 흘러 흰 마스크를 저셨다.
나를 속이거나 나에게 동정심을 얻으려는 불순한 눈물은 아니었다.
진정, 그 안에 아픔이 보였다. 다시 기다려주었다.
계속 머뭇거린다.
조사를 멈추고 하고 싶은 말을 해라고 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심호흡을 하더니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며 조사받는 것보다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급하게 왔다고 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택배 일을 하면서 2개월 동안 13kg이 빠진 남편의 아내였다.
자영업을 하면서 돈을 빌려 사용하다가 2년 전부터 너무 어려워져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소당한 금액은 그에 비하면 소액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자기만 살자고 지인을 속여 큰돈을 빌렸다고 한다.
원금에 이자, 원금과 이자가 합해져 다시 원금, 그리고 또 이자.
빚이 평생 벌어도 갚을 수없는 금액이 되었고, 그 금액이 이제는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짓밟고 있다며 울었다.
전부 내가 잘못한 것인데 세 아이와 부모님과 동생과 남편이 고통을 겪는다고 아파했다.
“수사관님, 저만 없어지면 이런 문제는 해결되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그냥 놔두면 경찰서 일보의 변사란에 몇 줄로 채워지는 인생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도 없다.
“예쁜 세 아이는 어떻게 할 건데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말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자기 속 사정을 얘기했고, 나는 그저 들었다.
해결책을 내가 제시할 수 없었고,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없었다.
나는 엄연히 그 세 아이의 엄마를 조사해야 하는.
죄가 있으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해야 하는.
피해자를 위해서도 공정하게 해야 했다.
분명, 그 엄마는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다.
잘못을 했다. 돈을 빌려 갚지 않았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조사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자료를 준비해 오라고 말해주고 조사는 다음으로 미루었다.
요즘 읽은 ‘더 해빙’이 생각났다.
나는 가지고 있다. ~~~~ 을
나는 느끼고 있다. ~~~~ 을
과연, 이런 문구가 그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과연, 저 빈칸에 어떤 단어를 채울지.
매일 찾아오는 일수쟁이,
매일 전화 오는 친구였던 친구.
매일 피해야만 하는,
흰 마스크가 있어 좋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얼굴을 반쯤이라도 가릴 수 있으니.
반쯤만 알아보고 반쯤만 쫓아올 테니.
그녀를 떠올리니 일본 동요 시인 ‘가네코 미스즈’가 같이 떠오른다.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져버린 그녀.
엄마들은 모두.
이 시를 들려주고 싶다.
마음
가네코 미스즈
어머니는
어른이고 크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조그맣다.
왜냐면,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조그만 나로 가득하다고.
나는 어린애로
조그맣지만
작은 나의
마음은 크다.
왜냐면, 큰 어머니로,
아직 가득해지지 않고,
여러 가지 걸 생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