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로 떠난 여행 드로잉 ep#11.-#20.
#11. 여행은 아름다워
이틀간의 아프리카 모로코의 관광을 마치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길, 비가 보슬보슬 왔지만 그 덕에 너무나 아름다운 쌍무지개를 구경하게 되었다.
"쌍무지개는 처음이야! 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반원을 그리는 무지개도 또 처음이야!"
이러면서 신나게 비바람 맞으며 사진을 찍다가 내부로 들어와 이 순간을 그림으로 담았다. 사소하게 기쁜 순간들은 놓치면 잊고 만다. 이때의 감정과 장면, 함께 했던 것들을 남겨 두면 그 사소함이 사소함으로 오래도록 남게 된다.
세비야에 도착하여 세비야 성당, 마차 탑승, 스페인 광장 구경 등 바쁜 관광을 하면서 하루 종일 무지개를 세 번이나 보게 되었다. 모로코를 떠나는 순간부터 스페인에서의 그 장면 장면들이 너무 꿈같아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선택 옵션으로 세비야 플라멩코 춤 공연이 있었는데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 옵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보통 호텔에 내려주고, 남은 시간을 모두 호텔에서 보내야 하는데 대부분의 패키지여행이 그러하듯 숙소는 보통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아무것도 주변에 있지 않는 외지에 자리잡기 마련이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며 나가지 말라고 말했던 가이드의 말에도 오후 시간이 꽤 남아있었던 지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같이 밖으로 나가 주변 거리를 구경했다. 가이드의 말과는 다르게 가까이에 제법 쓸만한 상점가가 있었고, 우리는 나서길 잘했다며 맥주 한잔을 하고자 했다. 그동안의 바쁜 일정을 소화했었고, 자유시간과 교류가 적었기에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맥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가게 문들이 열려는 있지만 저녁 8시에나 문을 연다는 말에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는 케밥집에 들어갔고, 더듬더듬 못하는 영어로 어설프게 주문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나 한국말할 줄 아는데, 그냥 한국말로 주문해요'라고 하셔서 순간 일동 얼음, 깜짝 놀라서 막 웃자, 얼마 전까지 이태원에서 살았다며 멋진 한국말 솜씨를 뽐내셔서 안심하며 당당하게 한국말로 주문해서 음식을 먹었다. 맥주를 주문할 때는 '비어'라고 하지 말고 '세르비자'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한잔이 두 잔 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또 이 순간을 잠깐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욕심에 잠시 양해를 구하고 이 즐거운 순간을 5분 남짓한 시간에 빠르게 담아보았다.
아, 정말 이날은 하나하나 잊지 못할 추억이 너무 많다. 풍경도, 사람도, 상황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만이 가득했던 오늘을 담은 드로잉,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날'을 담은 드로잉으로 남겨졌다.
#12. 나만 본 풍경, 함께 한 풍경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이동했다. 차로 이동하는 지라 시간이 꽤 걸렸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시 휴게소에 들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하얀색 건물이 대조적이어서 노곤노곤 햇볕을 받으며 잠시 또 드로잉 타임.
드로잉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게, 그곳에 머물러 손을 움직이던 순간만큼은 동영상 재생 버튼처럼 생생히 그림에 담겨, 정적인 드로잉 안에서도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이 흔한 휴게소 장면에서도 내가 어느 자리에 걸터앉아 어떤 표정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 그리고 그리는 동안 우리 팀 사람들끼리 또 사진을 찍고 포테이토 과자를 나누어 먹고 잠시 어떤 에피소드들이 펼져졌는지 전부 다.
그렇게 오래 달려 드디어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점심 식사를 하러 이동했는데, 그곳으로 가는 사이 또 나만의 '식사 후 자유시간'이라는 루틴을 실현시키기 위해 주변 동선을 살폈다. 식사를 마치고 이 광장에서 그림을 그려야지, 저쪽 골목길로 쭉 걸어가 봐야 지하는 즐거운 생각.
그렇게 식사를 마쳤고, 포르투갈식 보도로 '칼사나 포르투게사'라고 불리는 물결무늬 바닥이 유명한 호시우 광장에서 그림을 그렸다. 바로크식 분수와 페드로 4세 동상을 앞에 두고 거리의 소음을 즐겼다.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롭게 그렸는데 정작 동상이 잘려서 당황, 내가 못 그린 게 아니고 동상이 너무 높았어 라며 웃어넘겼다. 바닥부터 그리다 보면 늘 위가 잘리고 위에서부터 그리다 보면 아래가 잘리고,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듯하다.
광장을 그리고 나서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는데, 웬걸 길진 않지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래서 호시우 광장 앞쪽으로 쭉 길게 이어진 길목의 끝자락에 있는 코메르 시우 광장으로 걸어갔다. 사전 지식 없이 감만 믿고 쭉 걸어갔는데, 특 트인 테주강이 눈에 들어와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광장이고 예쁘다며 그렸던 이곳은 개선문과 원래 궁전이 있던 자리였다. 아무튼 넓은 광장과 탁 트인 강가의 이국적인 풍경을 보며 광합성을 즐겼고, 광장 중앙에 있는 조세 1세의 기마상 자리에 기대어 그림을 그렸다. 이 주변에서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내 커다란 포르투갈 국기를 들고 흔들던 아저씨가 있어서 이곳이 더더욱 기억 남는다.
보통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동선이 어느 정도 겹쳐져 일행을 만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 만난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뭔가 나만 이곳을 본 것 같다는 생각에 보물상자를 만들고 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시 호시우 광장 쪽으로 향해 걸어가자 일행을 만날 수 있었고 함께 이번에도 또 정 반대쪽의 길 끝에 있는 에두아르두 7세 공원까지 걸어가 보며 남은 자유시간을 보냈다. 공원을 가는 길에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노란색 전차도 구경했고, 내내 이색적인 보도블록을 보며 공원에 다다랐다. 이 공원 역시 나와 이곳을 함께 걸어간 3명만이 볼 수 있었던 장소라 더욱 특별했고, 신나게 포토타임을 가지며 즐거운 포르투갈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 들린 벨렝 탑에서는 잠시 겉옷을 벗고 반팔을 입을 정도로 매우 더웠기에 아이스커피가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대하던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를 사 먹으러 가는 길에 같은 골목길에 있던 스타벅스로 잠시 경로를 이탈하여 아이스커피를 샀다. 좀처럼 아이스커피가 없는 유럽에서 그것도 스페인 커피 자체가 더 맛있기에 현지 사람은 절대 가지 않는다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이스 아이스 노래를 불렀더니 직원이 아예 아이스라고 적어줬다. 그리고 이 아이스커피를 들고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서 사진을 찍었더니 뭔가 멋있다며 사진 찍기용 소품으로 둔갑하여 빌려주기도 했다.
#13. 땅끝 마을에서 점프를..!
유럽 서쪽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한 해가 끝나면 다른 해가 시작되듯이 땅끝마을이라고 불리는 이 까보 다 로까 (Cabo da Roca)는 동시에 바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 곳에 있는 상징물에 까보 다 로까가 새겨 있어 수많은 관광객이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어 줄 서서 기다려야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였다.
포르투갈에서는 날씨가 너무 따뜻하고 볕이 좋아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이곳은 바람이 엄청나서 다시 바람막이 점퍼를 입었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그저 평범한 바닷가이고, 바람도 돌담도 바다도 흡사 제주도를 연상케 하는데 시작과 끝이라는 말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곳에서도 그다지 여유 있는 시간이 주어진 편은 아니었지만, 주차장으로 돌아갈 때 뛰어가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그림도 그리고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끝과 시작이라니. 개인적으로 항상 연말에서 새해가 넘어갈 때, 한해를 건너뛰자는 마음에 점프를 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 생각이 들어 이곳에서도 점프를 했다. 바다의 시작과 땅의 끝을 이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14. 고통 뒤에 희망은 옵니까
세계 3대 성모 발현지 중 하나라는 파티마에 도착했다.
1차 세계 대진이 일어났던 1917년 5월 13일부터 달마다 13일에 파티마에 살고 있는 어린 목동 루치아, 히아친타, 프란치스코에게 나타나 수많은 예언을 했으며 정체를 밝히기로 한 약속한 10월, 빛을 발하는 장면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고 한다. 처음 나무 위에 흰옷을 입고 어린 목동들 앞에 나타났다는 자리에는 작은 야외 성당이 있고, 원래 아이들이 양을 치며 돌보던 언덕에는 지금의 성당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성지 순례하는 사람들이 꼭 찾는 장소이자, 작년(2017년)에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미 도착한 시간이 저녁이라, 광장같이 넓은 성당은 밝은 조명 빛으로 맞이했고 반대쪽 박물관은 문을 닫아 외부만 감상할 수 있었다. 마침 외벽에 적혀있는 성경 구절 중 한글로 적혀있는 구절도 있어 이곳에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 같이 성당 외부와 내부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었는데 숙소 키를 잃어버려서 걸었던 길을 다시 역추적하며 찾느냐 혼쭐이 난 기억이 있다. 다행히 도로 한복판에 떨어져 있던 키를 발견하여 얼른 줍고는 그제야 안심하는 마음으로 다시 성당을 그리러 가까이 걸어갔다. 멀리서 보는 웅장함과 야간 조명으로 새하얀 멋스러움이 잘 드러나는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하루 종일 미사를 드린다는 야외 작은 성당에 저녁 미사를 구경했다. 무교인이지만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이나 높은 천장 아래 경건해지는 분위기에는 늘 압도 되면서도 고요한 평온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야외 작은 성당에서는 시간이 되자 신도들이 들고 있던 초의 불을 옆자리로 하나둘씩 옮기면서 비로소 촛불이 다 빛을 밝히자 오르골 소리에 맞춰 미사 노래를 부렀다. 신기하고 뭉클해지는 장면이었다.
그 미사 소리에 맞춰 나 역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빌었다. 성모가 발현했던 이 작은 성당 자리에서 예전 양치기의 언덕 자리인 큰 성당까지 한 신부님이 간절한 소원을 기도하며 무릎으로 기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어, 지금도 이 길목을 무릎으로 기어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소원을 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늘 품고 있는 난제와 닮아있다. 비 온 뒤에 땅은 굳건해 집니까, 고통 뒤에 희망은 옵니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집니까.
미사 자리에 끝까지 함께 있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마음속에 작은 일렁임을 안고 숙소로 돌아온 날이었다.
#15. 긴 그림자가 앞에 드리워진다는 건 등 뒤로 햇살이 비추고 있다는 것
길게 늘어진 네바다 산맥을 보면서 몇 시간씩 에스파냐로 이동했다.
패키지여행 중에는 이렇게 이동이 유난히 긴 스케줄을 차지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동 중 어떤 날은 상점, 마트, 주유소, 화장실이 모두 제법 갖춰진 휴게소에 들르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화장실 용무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외지에서 쉬기도 한다.
어쨌든 오랫동안 운전하는 기사님도, 버스 안에서 앉아있는 관광객도 지루하고 찌뿌둥한 것은 사실이니 잠시 나가 기지개라도 켜며 주변 공기를 힘껏 들이켜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이 10분 이상이라면 어김없이 스케치를 한다. 그곳이 어디이든, 이동이 얼마나 길든, 드로잉은 시간을 저장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을 뒤로하고 휴게실 뒤편에 있는 건물을 그렸다. 알 수 없는 용도의 건물이고 이곳에서의 추억은 없지만, 흘러가는 이 잠깐의 시간을 붙잡음으로써 결국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 내 앞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보면서 그림자로나마 내 그림에 출연하게 되는 유일한 장면이겠구나 하면서 피식 웃었다. 풍경만 담는 나는 좀처럼 스스로의 그림에서 발이나 손을 굳이 그리지 않는 이상 등장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실루엣을 온전히 드러내게 되니 등 뒤로 쏟아지는 햇빛의 존재를 더욱더 실감한다. 뒤에서 등 떠밀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현재의 모습을 일러준다. 지금 어디쯤에 있어,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저쪽이야 라며 알려주는 이정표의 모습 같기 느껴지기도 했다.
#16. 한 곳에서 오롯이 저녁을 맞이하는 일이란
우리나라에서도 관광명소에서 사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북적이는 관광객들의 소음에 시달린다고 하는데, 마그리드의 마요르 광장에 도착하고 이곳이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들로 둘러싸인 광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감탄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일상처럼 느껴 아무렇지 않을까 아니면 일일이 불평하고 있을까.
내내 이동만 하다 처음 들린 관광 장소라 이런 북적거림도 반가웠다. 이곳에서 조금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대부분의 일행들은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가서 과일을 사며 즐겼고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이 주변 소음을 즐기며 갈증 났던 드로잉을 해소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동선, 약간의 악취, 마치 할리우드 거리를 연상케 하는 슈렉고양이, 스파이더맨, 미니언, 돼지, 쿵후 판다 등 인형 분장객들의 호객행위, 건물 사이사이로 비추는 햇살과 그림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이곳에서의 관광을 다했다.
그리곤 이번엔 마요르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솔 광장으로 옮겨 두 번째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곳은 좀 전보다 더 점잖은 느낌으로 예술공연이나 퍼포먼스가 많았고, 상점들이 즐비해있어 일행과 함께 아이쇼핑을 즐기며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광장 관광을 마쳤다.
마그리드가 특별하게 느껴지게 된 건 같은 공간에서 낮과 밤을 맞이했다는 것 때문이다. 보통 자유여행이 아니고서는 패키지여행에서 왔던 곳을 다시 들리거나 하는 일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나만의 요령으로 그럴 수 있었다.
도심을 한 바퀴 돌고 돌다 보니 처음 그 자리로, 그리고 그 한 곳에서 오롯이 저녁을 맞이하는 일이란 이 도시를 품고 가는 느낌이 든다.
이 곳은 관광버스 공용 주차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동선을 익혔던 지라 패키치 상 들어가 있는 어쩔 수 없는 쇼핑 일정이 진행될 때 슬쩍 뒤로 빠져 동네를 한 바퀴 돌아다녔다. 이 스페인 왕궁 앞 광장에서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며 잠시 시간을 보냈었는데, 일정을 소화시키고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으러 들린 식당 위치가 바로 이 근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여전히 식사를 빨리 마치는 루틴을 발휘하며 골목 어귀를 성큼성큼 빠져나오자 역시나 익숙한 장소가 드러났고, 한낮의 햇살에서 저녁노을로 바뀐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스페인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 중에 이 곳에서 찍었던 석양 사진이 제일 예뻤다. 그래서 낮에 그린 그림을 다시 펼쳐두고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곳을 눈과 마음에 담고, 나아가 마그리드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담아 둘 수 있었다.
#17. 그라시아스 (Gracias)
여행에서 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일정 중에서 가장 고대하든 프라도 미술관에는 오픈 시간인 10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입장 대기시간이 주어졌다. 얼른 미술관 외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벤치에 앉아 미술관을 담았다. 어차피 내보는 사진 촬영 금지기에 이곳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이런 여행 드로잉을 즐기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개인의 자유 행위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외국인들이 많다. 따라서 조용히 옆에서 구경하거나 간간히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엄지 척해주고 가는 사람들을 만난 적 있으나 육성으로 말을 걸어주며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그림을 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무렵 벤치 옆자리에 앉으셨던 아주머니가 '굳 드로잉'이라고 칭찬해 주셔서 쑥스러워하며 '그라시아스'라고 답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기억이 함께 그림에 남게 되었어요.
미술관 내부 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스페인이 사랑하는 고야, 루벤스, 엘 그레코, 뒤러 등 어마어마한 작품 소장량과 전시 기획 동선에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내부 관람도, 외부 그림을 그리던 시간도 모두 그라시아스.
#18. 사실 모든 것이 주관적 이상화의 나열이다.
중세시대 마을 톨레도로 왔다. 여기는 골목골목이 시대를 거슬러 간 것처럼 고즈넉한 분위기에 매료되는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가는 곳곳의 성당과 장소마다 매너리즘 시기의 화가 엘 그레코의 작품 흔적들이 곳곳마다 남아 있는 점이 인상 깊어 이곳이 엘 그레코의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엘그 레코도 톨레도를 사랑하고 톨레도 역시 엘 그레코를 영원히 기억하듯 마을 전체에서 품고 있었다.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시기 이후 타성에 젖은 일정 양식을 탈피하고자 주관적인 표현이 가미되던 매너리즘 시기는 과도기적 양상으로 몇몇의 작가의 이름과 대표작품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 오니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시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주관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대하여. 전성기 양식에서 벗어나 점차 벗어나 50대가 되어서 비로소 주관적인 해석으로 자신만의 이상화를 마음껏 펼쳤던 엘 그레코. 길게 뒤틀린 인체의 표현, 인간의 밝은 면 보다 어둡고 불안한 슬픔을 품고 있는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19. 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기사도 소설을 많이 읽던 돈키호테는 자기 자신도 기사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종마로 늙은 나귀 로시난테를, 신복으로 산쵸를, 공주로 푸줏간 둘시네아를 두고 정의의 기사가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양 떼를 군대로 착각해 싸우고,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덤비는 등의 에피소드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바보 같은 용감함, 시련에 굴복하지 않는 긍정적인 자세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꿈 꾸는 기사 돈키호테, 그가 거인으로 착각하고 진격한 풍차의 마을 콘수에그라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풍차는 8개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풍차마다 주인 이름이 남겨져 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아 바람이 몹시나 강렬하였지만 그만큼 탁 트인 전망이 한눈에 들어와 멋스러운 경관을 자랑한다. 근처 식당에서부터 푯말까지 돈키호테와 로시난테의 얘기가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용기가 없는 곳으로 달려가고, 닿을 수 없는 별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Ese es mi DEstino)"
삶이 확신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자신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꿈꾸고 있는 세상이 있기에 가야 할 길이 보이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루어질 수 있고 가능한 것만 바라는 것이 꿈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나아갈 길을 정하고 그것이 운명이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너는 그림을 왜 그리니?'라고 묻는다면 '그냥, 좋아서,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어.'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 갈 이루어야 꿈'이라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사람들 사이에 속하는 보통의 나는, 그런 추상적인 꿈을 꾸기에는 아직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20. 그리고 무엇을 기다립니까.
다음날 아침 일찍 마드리드 공항에서 출발하여 다시 헬싱키를 경유했다.
헬싱키 내부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자작나무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헬싱키는 함박눈이 내려 새하얀 도시로 남겨져 있었고 덕분에 제설 작업하느냐 이륙이 상당히 지연되기도 했다.
새하얗고 쉽게 벗겨지는 백화 피 나무껍질을 가졌으며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나는 자작나무는,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꽃말을 가졌다고 한다. 꽃말의 뜻을 알고 나니 여름의 자작나무가 나를 기다려 주었기에 겨울의 자작나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걸까 하는 조금은 낭만적인 생각도 가져본다.
평범했던 경유 대기 시간이 지난여름과 이번 겨울을 같은 곳에서 보내게 되어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여행을 끝내며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그래서, 그다음으로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