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수많은 시절인연들이 있다.
한때는 그 인연들과의 멀어짐에 일일이 슬퍼했으나, 지금은 그 한 시절이라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 알기에. 인연이 닿았으나 보폭이 같지 않거나 방향이 달랐으므로, 멀어짐에 대해, 여기까지였던 것에 대해, 이제는 나의 소홀함이나 내가 어찌할 수 있었던 문제만은 아니었음을 안다.
대게는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공통점이나 닮은 점을 찾으며, 우리가 결이 같은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과정 말이다.
내게는 그 과정이 없었던 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내게 첫 만남에서 같은 질문을 던졌던 사람들이었다.
"너는 뭐 좋아해?"
한 번은 입시학원에서 같은 반이 되어 처음 만났던 상황에서, 너는 어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냐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좋아하는 음식이 만두야?"
다른 한 번은 고시원 공유 주방에서,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에 먹는 음식이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 텐데 그게 맞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첫 만남에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듣는다는 건 참으로 묘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의 질문을 했을 뿐인데 서로의 거리가 성큼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한다. 그것은 이미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를 뛰어넘는 말이었다.
그러면 나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첫 만남부터 자연스럽게 늘어놓을 것이고, 그걸 듣는 화자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을 테지. 이런 대화는 처음이었다.
관계는 호기심에서 시작되고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상대가 궁금해야 하고 그 궁금함을 묻고 답해주면서 관계에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물어보고 귀 기울여준다는 것만큼 '너를 알고 싶다'는 더 큰 시그널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고 챙겨주거나 피해 주는 것만큼의 '배려'가 또 어디 있을까. 누군가의 시절 인연은 그런 것들로부터 이어지는 것 같다. 어느 지점에서 시절 인연이 멈추었는가를 가만히 돌아보면, 더는 상대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거나 굳이 묻거나 답하지 않았던 지점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묻는다. 그 질문이 스스로에게 향한 것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느냐고.
100문 100답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에 즉답할 수 있느냐고. 혹시 고민하고 시간을 써야 대답할 수 있는 자신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기 자신과도 시절인연처럼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나는 아직도 이 말이 잊혀지지 않아서 때때로 내가 되물으며 나와 친해지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너는 (지금) 뭐 좋아해?
네가 (지금)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어떤 음식을 먹는지를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했다.
어떤 책을 읽는지를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도 했다.
어떤 사람들이 주변이 있는지를 둘러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했다.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24시간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를 알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나는 즉답할 수 있는 걸까, 거울과의 인터뷰는 몇 분만에 끝낼 수 있는 걸까.
나를 알아가기에, 그리고 상대와 가까워지기에 딱 좋은 두 가지 질문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