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영화나 책 자체는 크게 재미가 없었어도, 단 한 줄의 대사와 글귀는 선명히 남을 때가 있다.
그리고 대게 그런 말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스쳐 지나가는 장면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거 없는 대화 속에 멈칫, 머물게 하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사연들과 연관되어 있으리라.
사람마다 싸우는 전쟁터가 다 다른 거야.
'사람'은 보편적인 공동체를
'마다'는 개별적엔 주체성을
'싸우는'은 저마다의 인생 속에서 저지르는 '실수'와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성장'의 시간을,
'전쟁터'는 저마다의 인생 속에서의 각기 다르게 '요구'되는 '욕구'와 '의무'의 사회를,
'다'는 다양성을
'다른 거야'는 그 다양성을 '이해'의 영역 안에 두고 관계 맺음을 하려 했던 인간관계에서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나의 전쟁터와 저 사람의 전쟁터는 다른데, 나는 내 전쟁터를 기준으로만 저 사람을 보고 있었구나.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은 얼마나 자기 편향적인가.
'이해해'라는 말은 얼마나 가벼운가
'알아, 알 것 같아'라는 말은 또 얼마나 오만한가.
누군가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지레짐작하자 나온 대사였다. '네가 뭘 알아, 걔한텐 걔 사정이 있는 거라고'라는 뉘앙스였으리라. 스쳐 지나가는 대사였는데 이 대사가 생각보다 강렬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되었다.
내게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 하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경험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해왔다.
지인이 '지하도시'라는 주제로 열었던 그림 전시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지하철 내의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들을 담은 그림들이었다. 나는 한 그림 앞에 서서 오래도록 그 그림을 지켜봤다.
"저 여자, 무슨 사연이 있어서 울고 있는 걸까요, 서럽게."
"응? 아닌데, 피곤해서 기대어 졸고 있는 모습을 그린 거야"
이 말을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시절 내내 울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는 것을.
내가 울고 있어서 다른 사람도 우는 것처럼 보였구나.
세상이 서럽고 힘들어서 울고 있던 '내 인생의 전쟁터'와, 하루하루 버티고 고군분투하느냐 피곤해 졸던 '저 여자 인생의 전쟁터'는 다른 곳인데, 나는 내 시선으로 저 사람을 바라봤구나.
그때부터였다. 누군가의 사연 있는 말에 '알아'라던가 '알 것 같아'라는 대답이 아닌, '그렇구나' '그랬구나'라는 대답으로 바뀐 것이.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대화가 아닌, '이곳(자기만의 전쟁터)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이 대사를 나는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