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려줘."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알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보여졌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말이다. 다음으로는 '좋겠다 그림 잘 그려서 (보통은 뒤에 나는 진짜 못 그려가 따라붙는다)' 이거나, '나도 미술이나 할걸' 등이 있다. 한 때는 왜 내가 들여온 노력의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왜 이리 쉽게 그려달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잘 그리는 게 뭐가 좋은 일이지?'라고 받아들일 때도 있었다. 때때론 '미술이나'라는 말에 하찮게 보는 건가 싶어 언짢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이건 이 모든 말들이 결국 '칭찬'의 말들이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걸 안 이후로는 '스케치북 보여줄까?' 라며 그간 그린 그림들을 더 보여주거나 '그림은 언어 외에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너무 좋은 방법인것 같아' 등의 말들로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무언가에 너무나 몰두해 있어서 누군가에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몸 망가져'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이 말은, 예전에 본 드라마에서 잊지 못하는 대사 중의 하나이다.
내게는 그런 열정의 시절이 3번 정도 있었다. 죽을 만큼 노력했던 시절이 있는 사람은, 노력의 결과로써의 삶이 만족스럽지는 못할지언정 결코 노력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으며, 누군가가 내 노력에 대해 언급하더라도 큰 미동도 없다. 왜냐하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거나 그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부단히 도 노력했던 시기가 거름이 되어 반짝반짝 빛을 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스스로는 안다. 현재의 나는'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아는 삶'을 살고 있으며 '취미'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차선이 이어지는 삶'으로 지내고 있다.
"그림 그리는 게 그저 취미라고? 너무 잘 그린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취미를 10년정도 가지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 정도는 그려. 야, 너도 할 수 있어."
이 대답은 누군가의 칭찬에 대해 '겸손'도 '거만'도 아닌 그저 나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유머가 담긴 답이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특별한 성공이나 성과 없이 계속하는 것에 대해 묻거나, 그저 해왔을 뿐인데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시절이 길었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몰두하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쩌다 그걸 하게 되었어?' '그걸 왜 (계속)해?'라고 묻는다면 그저 웃으며 '좋아하니까', 혹은 '재미있으니까'라고 답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설득할 필요도 없으며 노력의 시간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다. 다만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이해받고자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쏟고 싶을 뿐이니까.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을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yes라고 말할 수 있기를
살다 보면 너무나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삶이 계속 이어지는 데에도 다시 일어나는데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으니까,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가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이 모든 것들을 담은 생에 대한 애착의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