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빛이 뱉어 놓은 그림자
나는 밤을 좋아한다.
달그림자가 방안으로 슬그머니 스며들면,
몇 시간이고 텅 빈 공간을 응시한다.
그곳이 넓거나 깊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면 더 좋다.
어느 날, 한 지인이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에 초대했다.
세계적으로 많은 이슈를 낳았던 전시로,
시각을 배제한 채 암전된 공간 속을
일정시간 체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국내에 소개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적지 않은 관람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왜 굳이 돈을 지불해 가면서
이 불편함을 체험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검은 플래카드에
‘Dialogue In The Dark’라는 타이틀이 선명했다.
그렇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아래에 조그맣게 적힌 짧은 문구였다.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보다’
이는 내게 묘한 기대감을 주었다.
우리는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에 [IN]이라 적힌 문으로 들어섰다.
자주빛 암막커튼이 몸을 스치는 느낌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완전히 암전된 공간 속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마치 적을 감지한 고양이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두터운 어둠이 뒤덮인 공간은
순식간에 당황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놀랍게도 우리를 진정시킨 것은
서로의 몸이 부딪칠 때마다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이었다.
한결 친숙해진 어둠이 조밀하게 나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로드마스터(그들은 모두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의 인도로,
'어떤 장소'로 짐작되는 공간들로 이동했다.
시각 대신 소리와 냄새, 촉감이 내 세계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묘하게 편안하고 자유로운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놀랍게도 어둠 속에서 생각들은 더 빨리 진동하고,
이질적인 정적이 잊었던 찰나의 단상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밤의 텅 빈 공간을 응시하고 있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 무엇이 좋으냐고.
나는 답한다.
보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낮이 타인과 더불어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밤은 오롯이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나는 밤이 가진 완벽한 자유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냐고.
나는 답한다.
꼭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인가.
낮이 육체적 환희가 커지는 순간이라면,
밤은 육체가 휴식하고 영혼이 커지는 순간이다.
나는 밤이 머금고 있는 신비를 사랑한다.
나에게 내가 묻는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혹시 어둠이 아니냐고.
내가 답한다.
어둠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둠은 단지 빛의 이면일 뿐,
중요한 것은 빛이다.
그리고 반문한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빛이 뱉어 놓은 그림자가 아닌가.
내가 나에게 충고한다.
그래도 어둠보다는 빛을 좋아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나는 답한다.
필름 속에 갇힌 이미지가 사진으로 탄생하기 위해서
어둠이 꼭 필요한 것처럼,
나 또한 어둠 속에서 나의 상(像)을 그린다.
그리고 언젠가 어둠상자 속에서 걸어나와,
내가 그린 상(像)을 하얀 인화지 위에 선명하게 펼쳐놓을 것이다.
‘어둠 속의 대화’가 끝나고,
밤의 베일 같은 암막커튼을 벗어나 낯선 빛을 맞았다.
갑자기 쏟아 들어온 빛은
앞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검은 실루엣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인화지에 배어나오는 이미지처럼
어둠 속을 스멀스멀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