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원이다. 원은 포함하는 동시에 배제한다.
「세계는 원이다.
원은 포함하는 동시에 배제한다.
나는 세계 속에 있으며, 동시에 세계를 품고 있다.」
사진을 배우던 시절, 그는 ‘원’의 힘에 대해 자주 말했다.
“나는 '원'의 힘을 믿어.”
낮은 목소리가 어두운 암실 공기 속으로 스몄다.
붉은 조명으로 물든
차가운 현상 테이블 위에 인화지 한 장을 펼쳤다.
“이건 백지상태야. 아직 아무 의미도 없지.”
그는 마치 공연을 앞둔 마술사처럼 인화지를 앞뒤로 뒤집어 보이더니,
여전히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페인트 마커로 인화지 위에 둥근 원 하나를 천천히 그려 넣었다.
“원 하나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져.
원 안의 것이 선택될 수도 있고,
혹은 제외될 수도 있지.
원은 포함하는 동시에 배제하기 때문에 마법적이야.”
'마법'이라니!
어딘가 유치하다고 느껴졌다.
그는 확대기 마운트에 필름을 끼우고, 동그라미가 그려진 인화지를 이젤에 고정했다.
포커싱 스코프를 돌리며 노광을 조절하던 그가 혼잣말로 낮게 중얼거렸다.
“결국, 의미를 부여받은 시선만이 힘을 가지게 되는 거니까.”
곧 수세를 끝낸 사진을 플레이트에서 꺼내 건조대에 걸었다.
사진 속에는 전시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담겨 있었다.
그의 말대로 마커로 그린 둥근 원은 일부의 사람을 품고,
또 일부의 사람을 배제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의미를 부여받았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
원은 세계다.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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