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궁전, 베르사유에 없는 딱 한 가지
유럽여행을 다녀와 본 사람들이거나 유럽에서 살다 한국에 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한국은 화장실 인심이 참 좋다는 것이다. 심지어 깨끗하기까지 해 너무나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를 꼭 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화장실을 찾기도 힘들지만 그 마저도 유료이기 때문에 사용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선진국이며 복지국가라는 유럽에 이렇게 화장실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를 알려면 과거로 거슬러 가봐야 한다.
기원전 27년경 로마에는 이미 하수도와 상수도를 발전시키며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했다. 기원후 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대리석 소변기들이 설치된 건물을 지어 최초의 공중 화장실을 만들었다. 4세기경에는 400여 개의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뛰어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마가 망하고 중세 유럽이 되면서 교황의 지위가 상승했고 기독교는 육체가 원하는 모든 욕구를 억제해야 한다는 “금욕주의”가 자리 잡게 된다. 도시조차 화장실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목욕이 건강을 해친다든지, 설사가 질병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희한한 이념과 신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밤새 본 소변을 창문 밖으로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길을 가다 가도 어디서든 똥을 맞을 수도 있었고, 똥을 쌀 수도 있었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오물을 피하기 위해 망토와 양산이 발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여자들은 어디에서든 남 눈치 안 보고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통이 크고 풍성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원래 살던 루브르 궁전도 위와 같이 화장실이 없었던 이유로 넘치는 오물을 피하기 위해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더욱이 베르사유 궁에는 화장실을 만들었 어야 하지 않나 싶지만 루이 14세는 화장실을 불결한 공간으로 생각해 만들지 않았고 ‘거울의 방’, ‘루이 14세의 방’, ‘전쟁의 방’, ‘평화의 방’등 화려한 700여 개의 방을 만들 뿐이었다.
그렇다면, 화장실이 없는 궁전에서 체통 높은 루이 14세는 과연 어떻게 용변을 봤을까?
왕을 비롯해 궁전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전용 변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태양왕 루이 14세는 26개나 되는 변기를 보유했다. 간혹 전용 변기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귀족들이 정원 이곳저곳에 볼 일을 해결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정원이 오물로 뒤덮여 악취가 진동했다. 골머리를 앓던 정원관리인이 정원 통로에 ‘Etiquette 에티켓’ 표지판을 내 걸었다. ‘Etiquette 에티켓’은 표지판을 뜻하던 단어인데 귀족들이 그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 용변을 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오늘날 ‘예의범절’을 뜻하는 표현이 됐다.
아무튼 상하수도 개념이 사라지고 목욕문화가 없어진 중세 유럽은 오물에 뒤덮이면서 악취의 도시가 되고 만다. 밤새 파티를 열며 화려한 생활만 할 줄 알았던 중세 유럽의 더러운 면인 것이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향수이고 미생물학이다. 또 오물을 피하기 위해 멋들어지게 풍성한 치마와 멋진 모자, 망토를 썼으며 양산을 썼고, 하이힐은 오늘날에도 각광받는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되니 더럽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라 생각된다.
덧붙이자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 170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üskind)의 소설로 주인공 그르누이가 한여름 파리의 음습하고 악취 나는 생선 좌판대 밑에서 매독에 걸린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물냄새로 가득한 파리에서 냄새에 대해 초자연적인 감각을 타고 난 그르누이. 그는 향기를 갈망하며 소녀들을 연쇄 살인해야 했고 결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향기로 사람들의 금욕주의를 깨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중세시대의 파리에 대해 심취해 보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이나 영화를 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 로마: 하수도 + 공중 화장실 → 깨끗
- 중세: 교황·기독교 영향 → 금욕주의 → 불결
- 루이 14세: 화장실 없는 궁전 + 변기 26개
- 결과: 향수·예절(Etiquette)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