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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돌이 Aug 26. 2018

너는 기본이 부족해

문과 개발자 생존기

 IT 개발을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어 질문을 하면서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말은 주니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겠지만 전공자가 아니라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개발자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채용면접 당시의 상황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1차 기술면접을 볼 당시 함께 일하는 실무자들은 이왕이면 전공자가 좋겠다는 의견을 냈었지만 면접 장소에는 파트장 이상의 관리자만 참여를 해서 해당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2차 임원면접은 1차 면접을 함께 봤던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과 나 총 2명이 올라갔다.


 운 좋게도 나는 최종면접까지 통과하고 개발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전공자를 선호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술 한 잔을 하면서 털어버렸지만 여전히 나에게 자격지심과 동기부여를 주는 사건이다.



 인문계 출신으로 개발자가 되기 위해 국비지원 학원에서 6개월 간 교육을 받았다. 블로그 운영을 하면서 HTML, css 수정 조금 해본 게 전부였기에 어려운 과정이었다. 기간은 짧았고 배워야 할 양은 많아서 하루에 나가는 진도가 엄청났다. 그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이른 시간에 학원에 도착해서 야간 자율학습까지 했다. 아침에는 지옥철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수업 30분에서 1시간은 일찍 도착하는 열정적인 강사님에게 질문을 하기 위함이었다.


 6개월 동안 얇고 넓게 공부를 한 뒤 원하던 대기업에 개발자로 취직을 하게 되어 국비지원 학원 출신의 취업률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에 비하면 아주 좋은 시작을 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 기본이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닥공사를 하지 않고 바로 건물을 짓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납기를 맞추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점은 이런 내 부족함에도 사수님과 협력업체 대리님은 크게 귀찮아하지 않고 기초적인 부분부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간단한 업무로 시작해서 다른 부서와 협업해서 진행하는 일을 진행하게 되면서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했다.


 맡고 있던 업무는 사수님 또는 협력업체 대리님이 하던 업무라서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 한 사람이 맡고 있는 업무 범위가 넓었기에 서버, DB, 네트워크 등에 대한 지식도 필요했는데 이중에는 개념조차 처음 듣는 내용이 많았다. 회의에 들어가니 외계어가 난무했고 다행스럽게도 PPT 파일이 있어 인터넷을 검색하고 관련부서 분들을 찾아가 물어보면서 해결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날에는 나라도 이왕이면 말 잘 알아듣는 전공자를 뽑았겠다고 스스로를 괴롭힌 적도 있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모두가 개발을 잘하는 건 아니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지만 4년의 대학과정 동안 관련 전공을 마치고 졸업을 했다는 건 기초 지식이 있다는 의미이다.

 문과 이과 출신 동료들을 두루 사귀고 있는 내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상대적으로 이공계는 인문계보다 전공에 대해 깊숙하게 공부를 한다. 각종 과제나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들이는 시간도 문과 과목에 비해 많다. 문과 출신의 경우 수업 이외의 다른 스펙을 쌓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나 또한 한국어, 한국사를 비롯해서 무역영어, 국제무역사, 유통관리사, 토익, 영어 말하기 등등 10개가 넘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교내 공모전에 선발되어 유럽에 다녀오기도 했다. 1년 이상 활동한 대외활동까지 고려하면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스펙의 비중이 높다.


 자타공인 기본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뭔가 더 노력이 필요했다. 전공을 떠나 개발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굳이 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업무 대 업무로 밀리고 싶지 않았다.


 기본을 채우는 과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음에는 기본을 채우기 위한 분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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