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돌이 Jan 11. 2016

퇴사면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문돌이 #퇴사결심 #100일

"저 퇴사할게요"

"그러세요"


    퇴사한다는 한 마디로 모든 절차가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퇴사는 개인의 자유지만 의외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회사에 들어갈 때 만큼 어렵지는 않지만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회사에 따라 규정은 다르지만 퇴사에 대한 규정이 있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


    사실 일개 사원 한 명이 그만두어도 회사의 경영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수 백, 수 천의 태엽이 맞물려 돌아가는 게 회사다. 태엽 하나가 빠지면 일단 다른 태엽이 그 역할을 대신하다 새로운 태엽으로 보충하면 그만이다. 개인의 능력과 직책에 따라 태엽의 크기만 다를 뿐 대체 가능하다는 점은 동일하다. 어차피 대체가 가능한데 회사에 미리 통보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본인뿐만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른 곳에 이직을 확정했거나 준비 중이라면 당연히 미리 통보를 해야 한다. 사회는 넓어 보이지만 무섭게도 지인 몇 사람만 거치면 웬만한 회사에 줄이 닿는다. 이직하는 회사에서 이전 회사에 연락해 평판조회를 하는 경우도 많다. 퇴사가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적을 만들고 나오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업무를 하면서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업체와 계약을 위해 미팅을 갖는데 예전 회사 상사와 마추칠 수도 있다.


    비록 하루에 열 번씩 퇴사 충동을 유발했던 암 같은 상사가 있더라도 나갈 때만은 웃으면서 나가자. 사직서를 상사 얼굴에 던지거나 잘 먹고 잘 살라고 시원하게 고함치고 뒤돌아 서는 방법은 영화에서나 나올 장면이다. 더 이상 직장 생활에 미련이 없고, 어디 해외로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꾹 참고 상상만 하자.


    회사 입장에서도 나갈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맡은 일은 대부분 이전에 누군가가 하던 업무이다. 큰 회사에서 한 사람 업무를 메꾸는  것쯤은 어렵지 않지만 새로운 태엽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부서의 누군가가 일을 더 해야 한다. 퇴사자가 신입사원이라면 그 업무를 가르쳐준 사수가 다시 일을  돌려받는다. 인수인계를 해준 사람이 지금 그 부서에 없다면 팀장이 분담을 해준다. 돌아는 가지만 다른 태엽들이 과부하에 걸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회사도 힘들어하는 태엽에 기름칠을 하고 다른 태엽을 끼울 시간이 필요하다.


    퇴사 통보와 동시에 면담 시작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토하면서 썼던 기안서의 결재라인을 따라 1:1 면담이 이어진다. 처음 기안서를 작성하며 암기하고 또 암기했던 결재라인이라 순서가 머릿속으로 술술 그려진다. 회사를 다니면서 몸이 많이 상했지만 병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몸무게가 5kg 이상 늘어나고 배에는 지방이 쌓여 불룩 튀어나왔지만 병은 아니다. 체지방률이 두 자릿수로 치솟고 혈압이 정상에서 경고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직장인이면 당연하다는 선배의 말에 건강에 대한 내용은 부서장 면담 시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일신 상의 사유로 퇴사하려 합니다"

"어떤 일신 상의 사유인데?"


    자발적인 퇴사인 경우 퇴사 신청서에는 "일신 상의 사유로 인한  퇴직"이라는 한 줄이면 충분하다. 일신 상의 사유를 적는 순간 퇴사 후 실업급여는 안녕이다. 실업급여 수령이 가능한 사유는 많다. 본사가 갑자기 이전하면서 통근을 하기에 어려운 경우도 실업 급여 수령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발적인 퇴사는 해당사항이 없다. 조금 억울한 부분도 있다. 내 발로 나가는 건 맞지만 엄밀히 따지만 100% 자의는 아니다.


    매일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어느 순간 슬럼프가  찾아온다. 입사 후 1, 3, 5년과 같이 홀수 해가 위기라는 말도 있고 매년 찾아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일은 항상 처리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쌓여 있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처리하다 보면 갑자기 상사는 미뤄두었던 업무를 찾고 업무 처리 미숙으로 왕창 깨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건지 답이 없는 고민에 빠진다. 당신이 한 업무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면 슬럼프는 금방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라면? 다른 길이 없나 눈을 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치이고 치여서 결정한 퇴사가 100% 자발적일까?


    힘들게 첫 번째 면담이 끝나고 다음 면담 시작이다.


"일신 상의 사유로 퇴사하려 합니다"

"어떤 일신 상의 사유인데?"


    마치 Ctrl + c를 누르고 Ctrl + v를 누른 듯, 아니면 모범 답안이 정해져 있는 듯 같은 질문이 나온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리 속에 가득해도 면담에서는 간결하게 정리를 하자. '너  때문이잖아'라는 말은 앞서 말했듯이 속으로만 100번 반복하길 바란다. 이유를 구구절절 말하기 싫다면 유학도 한 방법이다. 국내 대학원을 언급하면 지금 하고 있는 업무의 전문성을 좀 더 쌓은 뒤 야간에 대학원을 다니는 방식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설득 공격을 당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내년 인사이동 때 부서를 옮겨 줄 테니 우선 참으라는 설득 공격이 들어온다. 몸이 좋지 않다고 하면 연차를 사용해도 좋고 진단서가 있다면 병가도 내줄 테니 쉬다 오라는 설득을 받는다. 단지 부서를 옮기고 잠시 쉬면서 충전을 하고 싶다면 이 정도에서 타협을 하면 된다. 타협을 해도 실제 실행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는 건 옥에 티다.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다면 마무리를 잘하자. 퇴사까지 과정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당신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겪어온 고난과 시련을 용서해야 한다. 성공해서 갑의 위치에서 당신을 괴롭힌 상사를 만나는 상상을 하면서 끝까지 미소를 보이자. 성과가 뛰어난 직원이라도 퇴사를 언급한 후에는 좋은 말 듣기 어렵다. 퇴사 전까지 일 폭탄을 맞더라도 '가는 마당에 일이 대수'가 아니라 '야근해봐야 퇴사 날까지다'라는 마인드만 갖고 있다면 당신의 앞날은 밝다.



매거진의 이전글 플랜 B 없이 퇴사를 결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