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플랜 B 없이 대기업 퇴사한 문돌이
"아니 그 좋은 회사를 왜 나간다는 거야?"
또 비슷한 반응이다. 좀 더 건설적인 답변을 해주는 사람은 없는 걸까? 그래도 어제 들었던 "네가 힘들다고 하는 자리는 누구에겐 정말 간절한 자리야"라는 답변보다는 낫다.
퇴사를 결심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준비했던 플랜 B도 없다. 지난 석 달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본 뒤 결정을 내렸다.
"넌 지금 즐겁니?"
"아니"
90일 동안 아니라는 대답을 반복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차피 최종 결정은 스스로 하는 거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시기에 고작 즐겁지 않다는 이유로 그만두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영업도 아니고 사무직이면서 뭐 그리 힘들다고 벌써 회사를 그만둬?"
"응 조언 고마워"
"매일 컴퓨터 앞에만 있어서 피부 하얀 것 좀 봐, 나처럼 몸 쓰는 일 해보면 후회할 걸?"
"응 조언 고마워, 그런데 내 피부는 원래 하얗다."
영락없는 도련님 취급이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까지는 안 했지만, 대학 시절 장학금 타보겠다고 매 학기 몸부림을 쳤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코피가 날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등록금은 얼마나 비싸던 지 졸업할 때는 넓지도 않은 양쪽 어깨에 1,700만 원의 빚이 쌓였다.
"대학 졸업하려면 최소 4천만 원 필요하다는데 이 정도면 선방했네"
갑자기 시간차 공격이 들어왔다.
"어디 좋은데 이직이라도 하나? 갈 데도 없는 데 왜 나가"
"하하하 조언 감사합니다. 꼭 갈 데를 정해놓고 나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꼭 갈 곳이 있어야 퇴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대기업의 연봉과 복지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각오는 이미 되어 있다.
"월요일 좋아~ 최고로 좋아~"
인기 애니메이션 스펀지밥에 나오는 노래 가사 중 하나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과 월요일 아침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스스로 최면을 거는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가.
"플랜 B 없이 무작정 나가면 지옥을 경험할 거야"
진심 어린 조언도 너무 많이 들었더니 무덤덤해졌다. 말이 플랜 B이지 모든 걸 다 준비하고 나가려면 한도 끝도 없다.
"주말에 시간을 쪼개서 지원서를 쓰면 되잖아?"
주말에는 녹초가 되어 이불과 동화된 지 오래다. 내가 이불인지, 이불이 나인지 모르겠는 경지에 이른다. 하지만 월화수목금금금 시즌에는 이불과 붙어 있는 시간조차 사치다. 사모하는 이불을 잠시 개고 지원서를 써도 결과는 시원찮다.
1년 만근을 채우니 휴가가 15개나 생겼다.
"휴가가 있는데 왜 쓰지를 못할까요?" 내가 물었다.
"야, 어차피 휴가는 다 못쓰니까 그냥 나중에 돈으로 받아"
나에게 필요한 건 금일봉 같은 연차수당이 아니라 휴식이다. 연차수당 모아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 휴식 없이 달리다가 몸이 축나는 게 빠를 것 같다.
이직을 할 수 있는 시간까지 참아보려 했지만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고 '노잼'의 강도는 점점 강해져만 갔다. 인내는 쓴데 결과도 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월급은 마약과 같아서 헤어 나올 수 없어"
"마약 정도로는 절 중독시킬 수 없나 봐요"
"일하는 이유가 뭐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일이란 건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의미가 없다면 개인의 수명과 돈을 바꾸는 교환 행위일 뿐이다. 직장인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낸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의미도 찾지 못한 일을 평생 한다면 슬프지 않은가.
직접 해봤지만 플랜 B가 없어도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