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저 퇴사하겠습니다"
"그러세요"
퇴사한다는 한 마디로 모든 절차가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퇴사는 개인의 자유지만 의외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회사에 들아갈 때만큼 어렵지는 않지만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회사에 따라 규정은 다르지만 미리 통보를 해야하는 건 동일하다.
일개 사원 한 명이 그만둔다고 회사 경영에 영향은 없다. 수 백, 수 천의 태엽이 맞물려 돌아가는 게 회사다. 태엽 하나가 빠지면 일단 다른 태엽이 그 역할을 대신하다 새로운 태엽으로 보충하면 그만이다. 개인의 능력과 직책에 따라 태엽의 크기만 다를 뿐 대체 가능하다는 점은 같다.
그렇다면 퇴사 시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내가 내일 부터는 니 고객님이다 식빵!"
이라고 외치고 싶어도 일단 참자. 한국 사회가 은근히 좁아서 지인 몇 사람만 거치면 웬만한 회사에 줄이 닿는다. 이직하는 회사에서 평판조회를 하는 경우도 많다. 퇴사가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적을 만들고 나오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업무를 하면서 마주치는 일도 종종 있다.
비록 하루 열 번씩 퇴사 충동을 유발했던 암 같은 상사가 있더라도 나갈 때는 웃으면서 나가자.
"하하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더 이상 직장에 미련이 없고 전혀 다른 업종에서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참는자에게 복이 온다.
아무리 대체할 수 있는 자리라고 해도 공석이 생기는 만큼 회사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퇴사 예정자가 맡고 있던 업무를 누군가가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회사에서 한 사람 업무 메꾸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만 새로운 태엽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누군가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퇴사자가 신입사원이라면 그 업무를 가르쳐준 사수가 다시 일을 돌려받는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인수인계를 해준 사람이 지금 그 부서에 없다면 부서장이 분담을 해준다. 태엽이 돌아는 가지만 다른 태엽을이 과부하에 걸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다. 회사도 힘들어하는 태엽에 기름칠을 하고 다른 태엽을 끼워 넣을 시간이 필요하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우선 이야기좀 합시다"
퇴사 통보와 동시에 면담 시작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토하면서 썼던 기안서의 결재라인을 따라 1:1 면담이 이어진다. 처음 기안서를 쓸 때부터 암기했던 결재 라인이라 순서가 머릿속으로 술술 그려진다.
회사를 다니면서 몸이 많이 상했지만 병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몸무게가 5kg 이상 늘어나고 배에는 지방이 쌓여 불룩 튀어나왔지만 병은 아니다. 체지방률이 두 자릿수로 치솟고 혈압이 정상에서 경고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직장인이면 당연한거라는 말을 듣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유로 퇴사하려 합니다."
"어떤 개인적인 사유인데?"
자발적인 퇴사의 경우 퇴직 사유에는 '일신 상의 사유로 인한 퇴직' 이라고 적힌다. 이렇게 적히고 나면 실업급여 신청은 안녕이다. 실업급여를 수령할 수 있는 사유는 많다. 본사가 갑자기 이전하면서 통근하기 어려워진 경우에도 실업 급여 수령이 가능하지만 자발적인 퇴사는 해당사항이 없다.
"슬럼프는 1, 3, 5년처럼 홀수 해마다 찾아와"
"그럼 2, 4, 6년 차에는 괜찮은 건가요?"
"슬럼프가 아니라고 다 괜찮은 건 아니지"
"ㅠㅠ"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면담에서는 간결하게 답하자. '너 때문이잖아' 라는 말은 앞서 말했듯이 속으로만 100번 반복하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지 않으면 내년 인사이동 때 부서를 옮겨줄게 조금만 참아" 라는 말도 단골 퇴사 면담 멘트다.
"저 몸이 안 좋아진 것 같아서요"
"그럼 병가 내줄테니 좀 쉬다와"
'실패다'
단지 부서를 옮기고 싶거나 잠시 쉬면서 충전을 하고 싶다면 이 정도에서 타협을 하면 된다. 타협을 한다고 실제 실행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다면 마무리를 잘하자. 퇴사까지 과정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나의 앞날을 위해 지금까지 겪어온 고난과 시련을 한 번 더 참아내는거다. 갑의 위치에서 나를 괴롭힌 상사를 만나는 상상을 하면서 끝까지 미소를 보이자.
아무리 성과가 뛰어난 직원도 퇴사를 언급한 뒤에는 좋은 말 듣기 어렵다. 퇴사 전까지 일 폭탄을 맞더라도 '가는 마당에 일이 대수'가 아니라 '그래봐야 퇴사날 까지다' 라는 마인드만 갖고 있다면 미래는 밝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