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돌이 Mar 28. 2017

퇴사 카운트다운

chapter1

 퇴사의 달이 밝았다. 인수인계와 휴일을 고려해서 퇴사 일정을 잡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퇴사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인수인계도 웬만큼 다 했고 이제 나갈 직원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지는 않으니 여유가 생겼다. 바쁠 때는 숨 돌리면 점심시간이고 다시 기지개 한 번 펴면 저녁 먹을 시간, 너무 피곤하다 싶으면 밤 10시 인적도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한량 수준이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층에서 일하고 있는 유관부서 담당자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슬쩍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찾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전 층을 누볐다. 퇴근한 담당자들이 별로 없어 대부분 미리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와요. 회사 그만 둔다면서요? 앞으로 더 잘 될거에요"

 '어떻게 아셨지..'

  

 시간은 흘러 퇴사일이 한 손에 꼽히기 시작했다. 남은 날은 4일이지만 주말을 끼고 있어 실질적인 잔여 근무 일수는 2일이다. 하루를 잘 보내고 주말을 넘기면 퇴사의 아침 해가 떠오른다. 퇴사 당일에도 당연히 일은 해야겠지만 퇴사 절차대로 업무용 PC를 포맷했다. 인수인계는 다 마쳤고 중요한 자료들은 부서 시스템에 올려놨기에 문제가 없다.  


 빠뜨린 자료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포맷 버튼을 눌렀다. 노트북이 위잉하고 작동을 시작하면서 PC의 자료들이 사라진다. 입사 후 PC를 처음  지급받았을 때의 상태로  돌려놓고 반납해야 한다. 더 이상 회사 노트북을 통해 자료를 찾을 일은 없다.

  

 

    어김없이 오늘도 회의가 잡혔다. 3시간 넘게 이어지는 마라톤 회의에서 달라진 점은 필자가 PPT 슬라이드를 넘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제나 회의 일정이 잡히면 5~10분 먼저 회의실에 가서 세팅을 했지만 그날은 사수 선배가 대신 노트북을 들고 참석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보안 절차를 위해 포맷이 돌아가고 있는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슬라이드를 넘기기 위해 집중할 필요가 없어져서 회의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멍...'


  일개 직원 한 명 빠져도 회사는 아무 이상 없이 돌아간다. 점심을 먹으며 다른 선배가 굳이 회의 들어올 필요 없지 않냐고 말했지만 수첩을 챙겨서 참석했다. 신경 쓰는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마지막까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회의에서 붕 뜬 느낌이 들었다.  


 PPT 자료가 어제보다 완성도가 높아졌다. 어제 회의도 분명 저녁 즈음 끝났는데 하루 만에 높은 퀄리티의 자료가 화면에 비춰지고 있었다.  


 회의로 오후 시간을 다 보냈다.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었더니 답답해서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회의는 끝났지만 아마 밤까지 다시 수정 작업에 들어갈 거다. 일찍 준비하든 닥쳐서 준비하든 끝나는 시점은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 남으면 또 다른 수정사항이 생기곤 했다.  


 카운트를 하는 손가락이 하나 더 접혔다. 남은 손가락은 단 3개뿐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니 회사원의 마지막 주말은 집에서 보낼 계획이다. 주말이 지나면 정말 마지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