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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돌이 May 07. 2017

어제도 오늘도 춥기만 한 채용시장

부제 : 플랜B 없이 대기업퇴사한 문돌이

    퇴사 전 이력서를 몇 개 넣어두었다. 퇴사 후 바로 취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크지 않았기에  마음 가는 소수의 회사를 골랐다. 세계 여행이라도 떠날 기세로 퇴사를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불안했나 보다. 세계 여행을 떠나지 않은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가르쳐줄 것이다.


'굶어서 죽으면 어떻하지?' 괜한 생각도 해봤다.  


    급하게 쓴 서류를 좋게 봐준 회사들이 있어 필기시험을 보러 다녔다. 서류 통과 배수가 높아 채용 프로세스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기분은 좋다. 처음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보다 시험의 난이도가 조금 올라간 듯했다. 시 족해서 빈칸으로 두고 나온 문제들도 있었다. 준비가 부족했던 탓인지 어려운 유형의 문제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아.. 망했다


    준비를 했어도 풀 수 있었을까 싶은 문제가 다수 나왔다. 회사 필기시험 치고 잘 봤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정말 심했다. 필기시험을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합격을 해서 면접을 보러 간 경험이 있기에 부스러기만 한 희망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기업 필기시험에는 보통 연차가 낮은 직원들을 동원한다. 필자도 몇 번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다시 수험생의 입장이 될 줄은 몰랐다. 회사에서 연차가 낮은 직원들을 동원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외주를 주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대기업 필기시험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데 이틀 동안 20만 원 가까운 돈을 받았다. 시급으로 따지면 만 원 정도다. 시험 전날 고사장에 미리 가서 문제지와 답안지 박스들을 나르고 반 별로 구분하는 작업을 했다. 반 별 인원수에 여분을 고려해서 서류 봉투에 담고 박스로 밀봉하는 작업을 한다. 고사장 교실의 자리 배치와 프린트 물 부착까지 하고 나면 얼추 준비가 끝난다. 시험 당일에는 복도에서 시험 감독 보조하는 일을 하고 시험이 종료되면 수거된 문제지와 답안지를 정리해서 차에 싣는다.


    일개 아르바이트 생에게 지불한 금액이 20만 원이니 외주 업체가 받은 돈은 그보다 훨씬 많다는 말이다. 회사마다 규정은 다르겠지만 필자가 받은 수당은 5만 원 남짓이었다.


    두 번째로 직원들, 특히 저 연차 직원들의 퇴사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퇴사를 고민하는 동기들이 필기시험 감독을 하고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를 했는데, 퇴사를 하면 악몽 같았던 취업준비를 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회사 다니면서 준비하면 되잖아?


    퇴사 후 다시 준비하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재직 중에 몰래 다른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하지만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소수의 능력자를 제외하면 밥 먹 고하루 종일 취업을 목표로 달리는 취업준비생들의 필기 커트라인을 넘기 힘들다.



    취업준비생들의 무서움(?)을 금융권 필기시험에서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일반 기업의 인적성 검사는 유형만 파악해도 어떻게 볼 수는 있는데 금융권 취업은 전공필기나 경제논술을 준비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논술이라고는 써 본 적이 없다. 자기소개서 정도가 써봤던 가장 긴 글일 정도였다. 경제 신문을 읽어서 막연하게 알고 있는 내용도 막상 글로 풀어내려면 몇 번의 퇴고가 필요했다. 서류 발표 후 남은 5일 동안 주요 이슈를 다 읽고 글로 쓰는 연습을 했지만 전체적으로 부족했다. 그 어려운 경제논술을 마치고 멍하게 앉아있는데 교실 밖에서 들리는 대화에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 논술 주제가 너무 쉬운 것 아니야?
맞아. 이래서 변별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스터디를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서울까지 왕복하는 시간, 차비 그리고 비용을 고려하니 효율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면접스터디면 몰라도 필기시험은 기업 특강과 인터넷 강의로 커버가 가능하고 판단했는데 오판이었단 말인가.


    간절한 마음 부족, 실력 부족으로 지원한 몇 개의 회사에서 모두 탈락했다. 두 번째 지원 만에 대기업에 덜컥 합격했던 게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얼어붙은 채용시장이지만 한 번 깨 봤으니 다시 노오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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