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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돌이 May 07. 2017

직장인은 할 수 없는 흔한 취미

부제 : 플랜B 없이 대기업퇴사한 문돌이

 요즘 취업준비생들의 이력서를 보면 취미/특기란이 화려 하다. 취업 학원에 자소서 첨삭을 맡기면 음악 감상, 영화감상, 축구 같이 흔한 취미는 바로 빨간 줄이다. 기업 채용담당자의 눈을 끌기 위한 취미가 필요하다는 피드백이 돌아온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다. 채용 담당자의 눈에 띄기 위해 억지로 만드는 게 취미는 아닐 것이다. 취준생들은 살기 위해 튀는 취미를 찾아다니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 위해 가뜩이나 가벼운 지갑을 턴다.  


 

 흔하지 않은 취미일수록 비용은 증가한다. ‘신명 나게 노래하기’ 정도면 양반이다. 그냥 노래 부르기라고 적으면 밋밋하니 자극적인 멘트를 추가했다. 신명 나게(?) 노래하기 위해 학원에 지불하는 비용은 수 십 만원이다. 서류와 인적성은 잘 통과하는데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지인의 취미는 패러글라이딩이다. 


정말 신명 난다


 패러글라이딩 정도면 가질 수 있는 취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학 시절을 함께 한 지인은 놀이공원에서 자이로드롭도 타지 못해 밑에서 구경을 했었다. 면접에서 도전정신을 어필하기 위해 고른 비싼 취미가 패러글라이딩이었던 거다. 딱 한 번 타고 자소서에 적기에는 부족할 것 같아 그 후에도 3~4번 정도 더 탔다고 한다. 이 정도면 취미가 아니라 극기 수준이다. 


 취업을 위해 암벽을 타고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냥 배낭여행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차별화하기 위한 소품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소품으로는 한복과 태극기가 있다. 한 여름에 반팔, 반바지가 아닌 한복을 입고 유럽을 누비기도 한다. 지원할 회사의 제품을 챙겨가서 외국인들에게 사용하게 하고 설문을 받는 노오력까지 한다면 당신은 자기소개서의 한 가지 항목을 수 십, 수 백 개의 회사에 ctrl+c, ctrl+v 할 수 있다.

 

 퇴사 후 흔하디 흔하지만 직장인은 할 수 없는 취미를 두 개나 만들었다. 낮에 영화보기, 낮에 도서관에서 책보기다. 흔하디 흔하지만 ‘낮에’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특별한 취미로 탈바꿈했다.   


연차 내고 쉬는 날 보면 안 되나?


 연차를 몇 번 써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연차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존재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연차는 차곡차곡 쌓이고 회사에서 연차를 소진하라는 공지가 뜨면 한 번에 모아서 여행을 떠나기 바빴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주말의 영화관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단돈 3,300원에 영화 관람권을 매달 받을 수 있는 통신사 부가서비스를 신청했다. 영화를 제 돈 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원래 가격이 만 원인걸 생각하면 합리적인 소비다. 2017년이 되면서 혜택은 끝났다. 영화할인이 많이 되는 체크카드도 하나 발급했다.


영화를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월요일, 목요일 오전 9시 영화


 영화관은 집에서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데, 지하에 위치한 영화관에 가려면 지하철 역을 통해야 한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를 느긋하게 통과해서 영화관으로 향한다. 지하철이 곧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에 급하게 뛰다 넘어진 직장인의 가방을 챙겨주는 여유까지 부렸다. 


 영화관은 한산하다. 주말에 왔던 모습과는 딴 판이다. 검표하는 직원이 없어 주변을 두리번 거리니 저 멀리서 뛰어오는 직원이 보인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다른 업무를 겸하고 있는 듯했다.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주변을 둘러보니 10명 미만의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있다. 


 자리가 텅텅 비어 있어 왼쪽 자리에는 입고 있던 옷을, 오른쪽 자리에는 메고 있던 가방을 놨다. 옷과 가방은 덕분에 판매가만 원짜리 좌석에서 호사를 누렸다. 상영관이 조용하니 오롯이 영화에 집중하는 게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점심시간이다. 네모난 건물 안에서 일을 하던 직장인들이 동시에 밖으로 나오니 인근 식당이 북적북적하다. 점심시간을 조금만 조정하면 좀 더 여유 있게 식사를 하고 쉴 시간이 있을 텐데 모두 같은 시간에 밥을 먹으니 기다리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다음 행선지는 영화관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도서관이다. 30분 이내 거리는 걸어 다니는 습관 이이제야 좀 익숙해졌다.


 월요일의 도서관은 열기로 가득 차 있다. 나이가 있는 분들의 도서관 이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느지막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고 놀아버렸던 주말을 후회하는 취업준비생들의 학구열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평일 도서관 이용의 황금시간은 오후 4시까지다. 학생들이 학업을 마치는 시간이 되면 도서관은 금세 가득 찬다. 그 전에 읽을 책을 골라서 열람실로 향한다. 책을다 골랐다면 새로 들어온 월간지를 읽는다. 인기 월간지를 독차지하는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퇴사를 하고 고르는 책의 기준을 바꿨다. 회사를 다니며 빌렸던 책이 주로 자기계발서, 경영, 업무 관련 도서였다면 이제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보려고 노력한다. 인문학 책이 익숙하지 않은 인문학 전공자라는 꼬리표를 극복할 절호의 기회인데 쉽지 않다. 


분명 한글인데 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도서관을 나선 시간은 밤 10시, 도서관에서 집까지 거리는 도보 25분이다. 집에 가는 길에는 운동기구가 많이 비치된 공원이 있다. 간단히 몸을 풀고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됐다. 하루 동안 두 가지 취미를 즐기며 든 비용은 6,800원이다. 


영화 3,300원 + 도서관 백반 3,500원 = 6,800원


 퇴사 후 직장인은 할 수 없는 흔한 취미를 즐기는 데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루의 가치를 월급으로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퇴사한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요소 중 하나이다.


 한 달 월급이 200만 원이라 가정해보자. 월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한 달 근무일 수는 약 22일, 하루 일당으로 계산하면 10만 원이 채 안 된다. 퇴사 후 하루하루를 10만 원보다 가치 있게 보내야 한다는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과정을 10만 원과 비교해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다른 공부를 하든 여행을 가든 아니면 건강 회복을 위해 쉬는 모든 과정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나는 퇴사 후 진짜 취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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