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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Jul 20. 2021

승마 모임, 어릴 적 소원을 이루다 2

2nd

"말은 자신의 등에 타고 있는 사람이 초보인지, 숙련된 전문가인지 단번에 알아채요. 그리고 초보가 탄 경우는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려 해요."


내가 탄 말이 갑자기 딴 길로 새서 물을 마신다거나, 앞으로 갈 생각은 안 하고 마구간으로 다시 들어가는 등 제어가 되지 않자 교관님이 말머리를 틀어주며 한 이야기다.


"목이 얼마나 말랐으면... 많이 마셔~~"

하며 말의 목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던 나는 순간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 얘가 날 무시하는 행동이었구나'


"기수의 자세가 불안정하면 말도 불편해해요. 그리고 덥고 귀찮은데 달리고 싶지도 않고, 농땡이 치는 거죠. 그땐 과감하게 혼내면서 가야 해요. 물론, 기수가 자세를 잘 잡고 타는 게 제일 먼저지만."

그리고 교관은 나의 손에 채찍을 살며시 쥐어주다.


햇볕은 쨍쨍하고 날도 더운데, 왕초보를 등에 태우고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고 싶은 말이 어디 있을까. 나라도 싫겠다. 순간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교관님의 말대로 채찍을 말의 시야가 닿는 곳에 가져가자, 말은 움찔하더니 순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 잘했어 잘했어~ " 말이 의도대로 잘 움직여줄 때마다 칭찬을 반복하며 생각했다. '그래, 네가 도와줘야 내가 빨리 초보에서 벗어나지. 같이 잘해보자.'



그 승마장의 규칙은 '내 말은 내가 책임지고 마무리한다'였다. 내가 탄 말의 안장은 내가 마구간에 정리해놓고, 말 목욕도 내가 시켜놔야 한다.

말 목욕을 어떻게 시키는 거예요...? 후달달 거리고 있는 내게 모임 멤버가 다가와 웃으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가 비누칠을 하면 나는 물을 뿌렸는데, 난생처음 말을 목욕시키는 기분은 오묘했다.

"오늘 왕초보 태우느라 고생했어" 말을 쓰다듬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그날의 승마가 마무리되었다.


승마 비용은 처음 모임에 참석하기 전 선결제를 하는데, 한 시간 승마 비로 생각하고 낸 5만 원으로 다섯 시간가량 말을 탈 수 있었다. 원장님(=사장님)은, "오늘은 인원도 많지 않으니 본인이 타고 싶을 때까지 타고 가"쿨하게 말씀하셨다.(추후에 다른 모임을 통해 가게 된 승마장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모임 멤버들과는 점심을 먹으며 처음 얼굴을 마주했는데, 어색해하는 나에게 말도 걸고 챙겨주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승마가 끝난 후 집에 갈 땐, 너무 고맙게도 가는 길이 같은 여성분께서 집 근처 지하철역까지 차로 태워다 주셨다.


많은 승마장들은 서울 근교 혹은 그보다 멀리 위치해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 모임에서는 카풀 시스템을 도입하여 모임 멤버들이 보다 편하게 승마장에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신의 차에 흙이 묻을 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을 태워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선뜻 매주 카풀을 해주시는 모임 멤버분들 있다. 모임 활성화되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고마운 람들이자 숨은 공신은, 바로 그분들이라 생각한다.


승마를 배우고 싶은데 부담스러운 가격에 망설여지거나, 바닷가, 풀밭, 산 등 자유로운 코스로 말을 타고 싶다면?

몽골까지 안 가도 된다.

승마 모임에서 충분히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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