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 벨을 보게 된 경위는,박근혜가 탄핵 되고 나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그 직후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가 아직 공개되지않아서 이에 대해 수사가 진행되면 어떻게 되는 지와 같은 것을 포털 사이트에서 보다가 ‘이건 꼭 봐야돼’ 싶어서 보게 되었다.
세월호가 침몰 되었던 2014년상반기에는 한창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시기라,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독서에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이에 심취한 게 2014년 12월 즈음부터 이니, 2년사이에 나란 사람의 내면도 그간 읽은 책을 읽은 만큼 100% 살아 내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삶에 적용이 되었다면 내 자신이 충분히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3일차, 민, 군, 관이 650명의 잠수사를 투입해서 구조를 40여 차례 시도 중이라고 보도가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요. 민간잠수사 분 말로는 말이죠. 배에서만 계속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연합뉴스 기자는, 지상최대 작전이라고, 배가 수백 척 동원되고, 하늘에 전투기항공기가 수도 없이 동원 되었다고. 그러나, 현장에 있던세월호 유가족들은 배 한 척 볼 수 없었어요.
자 여기서, 알파잠수기술공사이종인 대표가 등장 합니다. 이 분은, 해난 구조 전문가에요. 바다 사나이 35년 차로 프로 중에 프로 잠수사죠. 다이빙벨은 유속에 상관없이 20시간 정도 연속 작업 할 수 있는기술이에요. 선 채 옆에 붙어 있는 출입구 까지 내려 가는 거에요. 일종의물속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고 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다이빙 벨에 들어가면, 다이버들은공기가 있어서, 조류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로도 활용되고 이 안에서 음식물을 섭취도 가능하죠. 그림이 있으면 이해가 빠르겠죠? 아래와 같습니다.
이종인 대표는 해경에게 공식적인 요청을 받지 않고 팽목항으로갔어요. 다이빙벨을 가지고 말이죠.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슬그머니 와이프에게 눈치를 보고, 허락을 받아요. 1억 5천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어감에도 말이죠. 이종인 대표님의 와이프는 그 돈이 있는 게 아니지만 그 돈을 구해줄 테니 가라고 해요. 다이빙벨은 인천항에서 팽목항으로 7시간 걸려서 도착했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이종인대표가 팽목항에 도착해도. 사고 현장 접근 허가가 나지 않아요. 네임벨류가있는 회산데 말이죠. 왜냐하면 다이빙벨이 들어가면 여태까지 정부가 한 말들이 공갈이라는 게 들어나 거든요. 다이빙벨이 출항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은 물론 어떤 언론도 다이벵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사고 현장에 접근도 못한 채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대표는 팽목항으로돌아가는 데, 현장에 없었던 언론들이 일제히 오보를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오후에 본격적으로 다이빙벨이 투입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이죠.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 사용을 막았던 해경이 민간 업체를 통해다른 다이빙벨을 현장으로 들여오다가 취재진에 포착되었어요. 이 다이빙벨은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보다규모도 작고, 용도도 대학 실습용 이었어요.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함께 하는 대화 자리가 처음으로 마련되었어요. 도중에 이상호 기자가 유가족들을 대신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선실 입구에 다이빙벨을 왜 뺐는지 질문을 던저요. 20시간 동안작업할 수 있는 다이빙벨을 말이죠.
해경청장은 잠수하는 사람의 안전이 확보가 안된다고 답을 해요. 잠수하는 사람 안전을 걱정 했는데, 이 분들은 생명포기 각서까지쓰고 간 사람들이 에요. 작업을 할 수 있는 장비를 가지고 있는 인원이 없었다고 대답을 하네요. 또 다른 질문으로 알파의 이종인 사장 같은 경우는 25년 된 업체에요. 돈 한 푼 안 받고 1억 5천들여서 왔는데, 경험이 없어서 내쫓았냐고 물어봐요. 해경청장은들어갈려면 빠지(Barge, 작은 배 종류) 가 기(이미) 설치가 되어 있는데, 그사람들이 오면 빠지를 다시 설치해야 한다고 해요.
그러나, 이상호 기자가전문가들로부터 알아낸 바는, 배가 140m에요. Barge 여러 대 띄울 수 있다고 해요. 더구나, 4개의 anchor를 박아요. 고정하기위해서. 해경 측이 밝힌 것은, 앵커끼리 마찰 때문에 끊길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끊어질려면 한 10년 정도 해야 끊어진다고 합니다. 이상호 기자는 역으로 되묻죠. “한 10년 정도 구조하려고 생각하셨어요? 하다 끊어지면 어때, 애들 죽어가는데!”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하라고 명령했어요. 이기자는 이주영 장관은 이 정권의 총리감이라고 이상호 기자는 소개해요. 이주영장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하라고 명령했어요. 그런데 이 조건에서는, 왜 하나도 명령이 안 먹히는 겁니까?! 경찰청장에게 답을 요구해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항명하는 건지 말이죠.
해경청장과 알파의 이종인 대표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 대표가 이번 일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스스로 언급합니다. 해경은이와 함께 기자와 가족의 탑승도 허가해주겠다고 약속하고요.
유가족들은, 사고직후부터 계속 언론에 속았어요. 한 이틀 지나면서, 언론이구조하지 않는 정부와 책임지지 않는 청와대가 한 패라는 것을 깨 달아요. 그러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거짓 언론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게 되죠. 그런 가운데, 이제 처음으로 정부 당국자와 대화를 할 상황이 생겼죠. 그래서 이에 이상호 기자가 생중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했고 이에 유가족들이 동의한 것이었어요.
80분 정도의 영화분량의 약 절반(41분)을 요약을 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