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정신현상학』
나에게는 왜 이렇게 모자란 구석이 많을까? 스스로를 관찰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은 유독 자신의 모자람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무릇 ‘모자람’이란 말은 어떤 것을 갖지 못했다는 뉘앙스를 내포하는데, 나는 너무 많은 ‘모자람’을 가졌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온다. 나를 되돌아보며 인지하게 된 나의 부족함, 모순, 오류. 이런 것들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한없이 떨어뜨리고 결국에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절망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나의 모자란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봐도 그 때뿐이다. 모름지기 사람에겐 관성이 있어 방심하는 순간 모자란 나로 되돌아간다. 절망은 더욱 깊어진다.
스스로의 모자람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는가? 그렇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는가? 그렇다. 실망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가고 싶지만 햇빛이 닿는 지상까지의 높이는 손도 닿지 않을 정도로 높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무기력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밧줄 하나가 있다. 바로 『정신현상학』이라고 불리는 책이다. 독일의 근대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대표적인 저서인 『정신현상학』은 한 가지 물음에서 출발한다. “정신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헤겔은 이 책에서 위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정교하고도 복잡한 말로 풀어낸다. 가뜩이나 자신의 모자람 때문에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정신현상학』을 읽으라는 것은 난해함이라는 또 다른 절망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죽을힘을 다해 밧줄을 붙잡고 올라가야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듯이, 모자람의 절망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정신현상학』을 탐독해야 한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이전의 철학자들이 진리를 제시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그들이 설명하는 ‘진리’란 것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진리가 도출되는 과정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입장이다. 헤겔에 따르면 그의 전임자들은 진리를 도출하기 위해 직관이나 종교, 또는 신에 대한 사랑에 의존했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란 것도 존재하며 이는 인간이 가진 직관력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다.
이러한 철학적 견해가 갖는 문제점은 현실에서의 구체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진리는 현실 속에 사는 인간의 정신에 와닿아야 의미가 있는데, 철학자들이 말하는 진리는 너무 추상적이라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진리는 현실로부터 생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신이 피조물을 만드는 것처럼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인간 정신이 발전해 진리에 도달하는 점진적이고도 구체적인 과정. 헤겔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든다.
모자란 점이 많은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발전의 궤도 위에 올려놔야 한다. 그리고 발전의 최종 목표는 진리와의 일치다. 우리의 정신이 진리와 일치되는 단계까지 발전하면 우리는 비로소 완전함에 이르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더 이상 모자란 사람으로 남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물었던 것과 같이, 정신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변증법적 발전 원리를 제시한다.
발전은 즉자존재(An Sich) 상태에서 시작한다. 우리들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즉자존재다. 즉자존재라 함은 단순히 말해 스스로에 대한 어떠한 관념도 없이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상태다. 자신에 대한 고찰, 반성, 되돌아봄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기만 하기 때문에 즉자존재는 자신이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달리 표현하면 내가 가진 장점은 물론 부족함, 모순, 오류를 알아채지 못한 단계다. 즉자존재 상태의 나는 내가 가진 모자람에 주목하기는커녕 내가 어떤 부분에서 모자란 사람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즉자존재로 존재하는 정신은 어느 순간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이때부터 정신은 다음 단계인 대자존자(Für Sich)에 진입하게 된다. 대자존재는 말 그대로 나 자신을 대(對)하는 존재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장점은 무엇이고 또 나의 단점은 무엇인가? 대자존재는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대면해 스스로 던진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가진 부족함, 모순, 오류를 자각할 수 있다. 대자존재로 존재하는 정신은 비로소 자신의 모자람을 깨닫는다.
그 다음으로,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인식한 정신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그 결과 즉자-대자존재(An Und Für Sich)로 나아간다. 정신이 스스로 깨닫게 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뛰어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이 단계에 들어섬으로써 드디어 결실을 맺는다. 즉자-대자존재는 즉자존재가 대자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각한 자신의 모자람을 극복해, 한층 발전된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한 단계의 발전을 헤겔은 아우프헤벤(Aufheben)이라 명명한다. 독일어 ‘Aufheben’은 ‘위로 올리기’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다. 이는 즉자존재가 한 단계 위로 올라가 즉자-대자존재로 발전했음을 나타내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자존재는 대자존재 단계에서 발견한 한계를 극복해 한 단계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즉자-대자존재의 정신은 즉자존재에서 한 단계 발전한 상태이긴 하지만, 자신의 또 다른 한계를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2의 즉자존재와 같다. 그러므로 다시 제2의 대자존재로 나아가며 한계를 자각하고,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또 한 번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정신은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한다. 그리고 결국 점진적인 발전의 끝에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정신의 발전 방식인 변증법적 발전 원리다.
학교나 회사에서 발표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발표할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안 좋은 버릇이나 습관을 발표하는 동영상을 보며 발견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는 발표하는 순간 즉자존재였던 내가 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시청함으로써 스스로를 관찰하는 대자존재로 나아갔다는 말이다. 대자존재 단계에서 알아챈 자신의 안 좋은 버릇 및 습관을 고친다면 나는 발표자로서 한층 발전하게 된다. 형태만 다를 뿐 우리들의 발전 과정은 발표자로서의 발전 과정과 대동소이하다.
헤겔이 제시하는 정신의 변증법적 발전 원리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모자람을 자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발전이라는 점이다. 발전은 자신이 가진 오류와 모순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진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모자란 부분에 지나치게 집중해 자기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비하해버린다. 그러나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은 모자람이 많은 사람과 모자람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지 않는다. 자신의 모자람을 아는 사람과 자신의 모자람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두 사람 중 자신의 모자람을 아는 사람은 곧 발전하는 사람이다.
헤겔은 이로써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에서부터 시작된 독일관념론 철학을 완성시킨다. 이전의 철학들이 가졌던 빈약한 체계는 헤겔 철학에 이르러서야 단단하고 확실한 철학적 구조를 확립한다. 이 위대한 독일 철학자는 조그마한 물질에서부터 거대한 정신인 신까지 세상의 모든 요소들을 변증법적 원리 하나로 해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그가 서양철학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물론 당시에는 헤겔 철학을 비판하거나 그를 질투하는 사상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다양한 비판과 질투에도 불구하고 헤겔 철학은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현대철학에 영향을 끼친다. 현대철학은 헤겔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거나 부정해야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이성주의 철학의 정점이자 근대철학의 마지막 주자인 헤겔. 그가 모자람의 절망에 빠진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명료하다.
나의 모자람을 느낄 때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모자람을 안다는 것 자체가 발전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모자람에 대한 자각을 한 단계 발전의 시작, 즉 아우프헤벤의 밑거름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조금씩 발전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때다.
헤겔은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난다. 5살 때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김나지움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헤겔은 튀빙겐 대학으로 진학해 신학을 전공한다. 이곳에서 횔더린(Friedrich Hölderlin),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과 교제하며 사상적 교류를 나누기도 한다.
졸업 후 헤겔은 스위스 베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며 가정교사 생활을 전전하는데, 이후 친구 셸링의 주선으로 예나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한다. 강사 생활을 이어나가던 중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추천으로 교수에 임명된다. 이 때 집필한 책이 바로 『정신현상학』이다.
뉘른베르크 김나지움 교장,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 베를린 대학 교수를 역임하며 활발한 학문 활동을 펼친 헤겔은 1831년 세상을 떠난다.
※ 추천도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정신현상학』,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