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첫 유럽:Hallo, Deutschland

Ep. 1. 입독 준비와 첫 시작의 두려움과 기대감

by 무늬무니

내가 독일로 오게 된 이유


“독일로 오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독일어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독일에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수능이 끝난 어느 날, TV를 켜두고 멍하니 인간극장을 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편이 있다.
‘된장을 빵에 발라 먹는 아저씨.’


주인공이 살고 있던 나라는 스위스였고, 화면 속 풍경이 이상하리만큼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스위스를 검색해 보니 사용 언어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일어? 독일어는 뭘까. 정말 그게 전부였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에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그날 방송 속 주인공이 독일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나는 뜬금없이 독일어과에 지원했고, 합격했고, 졸업했고,
결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독일에 오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이없어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가족들조차 나를 꽤 특이한 사람 취급했다.

그동안 일본어를 공부하며 일본 유학을 가겠다고 했던 사람이
갑자기 독일이라니.
당황스러웠을 만도 했다.


독일어과생의 현실과 자괴감


막상 대학에 들어가 수업을 들으니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독일어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낯설었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도 버거웠다.


교환학생에도 지원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결국 취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학과장 교수님으로부터
졸업할 때까지 교환학생 취소에 대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시간들은 나를 많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억울했고, 분했고,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컸다.

그때부터 생긴 목표가 하나 있었다.
20대가 끝나기 전에, 무조건 독일로 가자.


아이러니하게도 그 교수님 덕분에
나는 독일을 ‘꿈’이 아니라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결국 이루어졌다.


오페어,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대학 졸업 후, 나는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에 다녔다.
세후 월급은 130만 원.
서울에서 자취하며 돈을 모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무렵 알게 된 것이 오페어 제도였다.


마침 뮌헨 근교에서 오페어를 하고 있던 학과 동기에게 정보를 얻어
가족 매칭도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쉽지 않았다.

오페어는 자칫하면 ‘베이비시터’ 역할에만 머무를 수도 있었고,
매칭하던 가족은 아이가 네 명이었다.
주변에서도 만류가 많았고,
독일 오페어 후기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가족 매칭에 실패하고 낙담하고 있던 그때,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한국 워킹홀리데이 협정 체결.


그 순간, 정말 한 줄기 햇살이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아, 나 드디어 독일 갈 수 있겠구나.
좋아, 일단 500만 원만 모아보자.’


협정 체결 후 2년.
나는 정말로 500만 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비자 신청을 하고, 보험을 들고,
에티오피아 항공 편도 티켓을 끊었다.


독일에서 1년간 머물 집도 한국에서 미리 구했다.
다행히 좋은 한인 부부를 만나 방을 셰어하며 지낼 수 있었다.


출국일은 2014년 8월 27일.
경유 포함 25시간짜리 비행이었다.


두려움과 환대 사이


출국 전까지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도착하면 어학원 등록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재미있게 살아야지.


하지만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설렘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경유지였던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몸수색을 당하고 난 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해외도, 비행기도 처음이었다.
영어도 못하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행히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
전 세입자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기차표 사는 법, 집 가는 법, 독일 생활 전반을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불안은 조금씩 사라졌다.


집에 도착하자 한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집을 소개해 주고, 식사까지 준비해 주셨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2014년 8월 28일


방을 정리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걱정했을 사람들에게 “잘 도착했다”고,
살아 있다고.

그리고 그 당시 남자친구에게도
생존 신고를 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그동안의 준비 과정과 수많은 부정적인 말들이 스쳐 갔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그 어떤 부정적인 의견도 듣지 않았다.


이제 독일 생활의 실전이었다.
어학원 등록, 핸드폰 개통,
Anmeldung(주소 등록)까지.
독일인들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일상이 시작됐다.


2014년 8월 28일.
나의 독일 첫날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숫자이자,
나만의 기념일로 남아 있다.


가장 행복했던 입독 초기


독일 영공에 들어왔을 때
창밖 풍경이 베이지색에서 초록으로,
그리고 회색으로 바뀌는 모습이 보였다.

그라데이션처럼 변하는 풍경이
너무 신기했다.


마침 그 시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시즌 1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초록빛 초원과 집들을 보며
저 들판에서 거인들이 달려올 것 같은
쓸데없는 상상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내가 들떠 있었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스스로 세운 목표를
내 힘으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독일에 처음 왔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뿌듯했던 순간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입독 초기 사진들을 보면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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