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이제는 실전이다. 새로운 환경, 생활 그리고 언어|
그렇게 첫날이 지나고 다음 날은 시차로 인해 눈이 일찍 떠졌다.
방 창문을 열고 밖을 봤을 때의 느낌은 마치 자연 속에 온 것 같았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향긋한 나무 냄새, 그리고 마치 그림을 그린 듯한 초록초록한 식물들.
사실 독일 초기에 살던 집은 프랑크푸르트 근교였고,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40분을 더 가야 했다.
즉, 도시 안에 있는 집이 아니라 시골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당시 거주하고 있던 집은 언덕 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역에서 집까지도 꽤 거리가 있었고, 매번 등산하는 기분을 만끽하곤 했다.
집에 나와 산책을 하다 보면 산도 보이고, 들판도 보이는 그런 곳.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시내와는 다르게 창문만 열면 피톤치드를 맘껏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해가 질 때면 금방 어두워져서 무서움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 대학교까지 자라며 생활했고,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내 인생에서 도시는 늘 일상이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첫 시작은 작은 마을이 되었고, 그 시점부터 나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쉽게 써본 적 없던 단어인 ‘여유로움’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기대감을 안고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는 실전 독일어를 사용해야 할 시간이 왔다.
어학원 등록, 핸드폰 독일 번호 개통하기, 필요한 물품 구매하기.
이것이 나의 독일 생활 실전 첫날의 업무였다.
첫 번째 관문은 어학원 등록하기였다.
전날부터 전 세입자의 도움을 받아 어학원 등록을 위해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물어봤고, 메모장에 문장을 적어 기차 안에서 외우며 갔다.
과연 나는 무사히 어학원 등록을 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어학원 등록을 완료했고, 바로 9월부터 A1-2 레벨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등록하기 전에 레벨 테스트를 진행했다.
1차 테스트는 문법, 2차는 직원과 독일어로 간단한 대화였다.
나의 초기 독일어 실력은 알파벳과 기본 인사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회화 부분에서 많이 약했기 때문에 A1-2를 배정받았다.
당시에는 완전 초보 레벨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대학 4년을 독일어 전공으로 공부했고, 독일에 오기 전까지도 틈틈이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는데 실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 스스로를 많이 탓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해보면 점점 실력이 늘 거야. 오히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라고 다짐했다.
내가 독일에 온 첫 번째 목적은 독일어를 실제로 사용하며 독일인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간부터 시작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했다.
진땀을 흘리며 무사히 어학원 등록을 마치고, 이제 다음 단계가 남았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2014년 당시 길거리 어디를 가도 공공 와이파이가 적용된 환경이 아니었다.
심지어 각 건물에서도 와이파이 연결이 활발하지 않아 3G만 사용 가능할 정도였다.
게다가 인터넷 속도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느려 답답함을 느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결국 이것마저도 시간이 지나니 적응이 되어버렸다… 하하하.
나는 당시 워킹홀리데이 1년 비자로 입국했기 때문에 통신사와 장기 계약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매월 정해진 금액을 충전하며 사용할 수 있는 ‘Prepaid Karte(프리페이드 카르테)’ 요금제를 신청하기로 했다.
전 세입자의 도움으로 이 정보를 알게 되었고, 어학원 등록을 마친 후 바로 프랑크푸르트 시내 Hauptwache로 향했다.
이곳은 프랑크푸르트 중심가로, Zeil 쇼핑몰이 있고 뢰머 광장과 마인강으로도 바로 갈 수 있어 주말이나 행사가 있으면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처음 오면 다들 한 번쯤 들리게 되는 곳인 만큼, 나 역시 이것저것 구경할 겸 이곳으로 나왔다.
먼저 Zeil 쇼핑몰 안에 있는 통신사 O2 매장에 들어가 프리페이드 카드를 찾았다.
하지만 독일어를 배우기 전이었고, 당시에는 번역 앱이라곤 구글 번역뿐이던 시절이라 나는 무작정 가서 당당하게 “I want a prepaid card.”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원이 제안한 요금제는 내가 생각한 금액도 아니었고, 전 세입자가 말해준 내용과도 달랐다.
이건 내가 원하는 요금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괜히 계속 있다가는 뭔가 잘못될 것 같아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나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Ich werde morgen wieder kommen."
‘그래도 내가 독일어 전공 졸업은 제대로 한 건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일단 그렇게 말하고 매장을 나왔다. 직원들도 쿨하게 “Gerne(알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나의 핸드폰 개통 1차 시도는 실패했다.
이후 다른 매장으로 가서 같은 요청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번째 매장에서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건 없다”라는 말만 남긴 채 또다시 실패했다.
이때 독일인들의 냉정함과 친절함을 동시에 겪으며 천국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었다.
다행히 먼저 독일에 거주하고 있던 대학 과 선배의 도움을 받아 다음 날 무사히 핸드폰 개통을 마칠 수 있었고, 그제야 어디를 가든 편안하게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은 기대감과 긴장감이 공존한 채 독일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어학원을 다니며 새로운 친구들과 독일어로 대화하고, 상점에 가서 직접 독일어로 계산을 하며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해서 들으려 노력하던 하루하루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만큼 긴장감도 늘 함께했다.
혹시 내가 잘못 말한 건 아닐지, 틀린 문장을 사용한 건 아닐지, 내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지.
그런 불안감 속에서 원래도 내성적인 성격이 더 내성적으로 변해갔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으로서 독일 문화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으려 했고, 탄뎀을 구하거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과 우연히라도 접촉하며 독일어를 사용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설렘에서 오는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긍정적인 감정들은 서서히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