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거리

가족이라고 당연히 가까울 수 없어요.

by 콩심콩

아이가 생기기 전에 주말은 항상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불금! 누군가와 약속을 잡든, 혼자 맥주 한 캔 홀짝이며 티비를 보든. 뭘하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워킹맘이 되니, 금요일 저녁이 제일 피곤하다. 월,화,수,목,금 일하랴 애 챙기랴 동동거리며 살다보니 금요일 저녁이면 긴장이 탁 풀린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도 겨우 차려 먹고, 설겆이도 못 한다. 그득한 설겆이 꺼리들을 내일 아침으로 미룬 채 남편에게 " 나 오늘은 파업이야." 선언하고는 손 하나 까딱 못하고 대충 씻고 자 버린다.


토요일은 그야말로 늦잠을 자고 싶은 날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우리 두 아들 녀석들때문에 늘 실패다. 평소에는 깨워야 겨우 일어나더니 주말에는 언제 일어나냐며 깨우기에 바쁘다. 사실 토요일에는 좀 쉬어줘야 주중에 다시 힘내서 일 할 수 있는데!!! 늘어져서 누워 있고, 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좀비같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과 놀이터도 가고, 주변 산책도 하고, 코로나가 있기 전에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꼭 야외 어디든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간다.


이렇게 피곤함을 꾹 누르고 주말을 아이들과 보내려는 8할의 이유는, 나의 어린시절 때문이다.


라떼는 말이야, 주말을 떠올려보면 온 가족이 누워서 티비 보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우리 부모님은 주말부부이셨기에, 아빠는 집에 돌아오시면 누워서 쉬기 바쁘셨다. 너무 어렸을 때에는 아빠가 집에서 매일 누워서 티비보고 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고, 좀 더 컸을 때에는 왜 아빤 저렇게 누워서 티비만 볼까 살짝 원망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도 커서 아빠의 나이 즈음이 되고보니 이해가 간다. 일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삶이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그리고 엄마는 전업주부이셨지만 운전이 어려우셨고, 아빠가 나서지 않는데 엄마가 두 자식을 끌고 여기저기를 다니실만큼 삶의 여유와 에너지가 없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솔직히 1박 이상의 여행은 해 본적 없고, 나들이도 다섯 손가락에 꼽았다. 그래서 가족들끼리 놀이공원 가고 수영장 가는 애들이 참 부러웠었다. 우리 집 근처에 경주 도투락월드. 거기 가는 게 소원이곤 했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아빠 얘기를 해봐야지.

아빠는 참 책임감이 넘치는 분이시다. 그리고 꼼꼼하셔서 일처리도 참 매끄럽다. 내가 사장이어도 아빠에게 일을 맡기면 큰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가정은 늘 뒷전이었다. 그래도 많이 어렸을 때, 두 분이 주말부부 하시기 전에는 아빠랑 살 부비고 함께 한 기억은 있는데 주말부부하신 이후로는 내 기억속에 온통 언니와 엄마 뿐이었다. 일단 평소에 아빠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고, 주말에 오셔도 늘 집에서 누워 밀린 잠을 주무셨다. 그리고 워낙에 무뚝뚝한 분이시라 우리 자매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신다거나 신경쓰신다거나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딸바보라고 아빠는 딸 편이라는데... 아빠는 우리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으실까 서운하기도 했었다. 아빠도 가정에서보다, 일에서 성취감과 희열을 더 느끼신 것 같다. 아빠에게 '보고싶다'라는 말을 대학교 2학년 때 전화로 듣고는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빠 덕분에 우리가 밥 굶고 살 일 없었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쪼들릴 정도로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아빠가 감정적으로 교류가 없었을 뿐 있어야 할 자리에 항상 있어주셨다. 그리고 아빠가 지금까지 해 오신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기에 아빠께 감사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하지만.. 솔직히 아빠와 함께 있는 게, 엄마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편하지 않다. 아빠와 둘이 있게 되면 자꾸 무슨 말을 해야할까 생각하게 된다. 아빠에게 안부전화를 드리는 게 엄마보다는 머뭇거려진다. 편하지 않다라는 말을 쓰는 게 나도 불편하지만, 가족이긴 한데 거리감이 엄마와 다른 건 사실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가족이라고, 혈연으로 맺어졌다고 해서 모두 가족이고 끈끈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시간을 나누고 추억을 공유하며 하나씩 관계를 다져가는 게 진정한 가족이다. 가족이라고 당연한 건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남편에게도 늘 이야기한다.


세상에 가족이라고 당연한 건 없어.
그리고 지금 아이들에게 소홀하면
나중에 애들 커서 당신 쳐다도 안 볼 걸?
애들이 지금 같이 있어달라고 할 때 잘 해.


사실 이건 남편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찐한 관계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골든타임이 0~10세란다. 이후의 시간들은 관계를 어떻게 형성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골든타임에 관계를 잘 맺었으면 아이가 커서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어서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이가 클수록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나이 들고 나서 좀 여유로워졌을 때, 아이들에게 잘해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경험을 내가 몸소 하다보니 최소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되기 전까지는 내가 무조건 사랑해주고 아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야겠다 다짐했다.



육아가 힘들다. 나도 늘 미타임을 원한다. 하지만, 문득문득 내가 지금 이렇게 아이를 귀찮아하는 마음을 가지다 나중에 커서 아이들도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귀찮아한다면.... 참 슬픈 일이다. 지금의 이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다시 마음을 잡아본다. 그리고... 아빠에게 미뤄뒀던 안부전화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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