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묻히고 유리 깨고 난리났네 난리났어
마루에서 린이랑 놀던 제이슨이 똥을 누겠다고 내게 말하고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제이슨은 엄마 아빠를 닮아 키가 큰 편이다.
일곱 살인 제이슨도 린처럼 형제가 없다.
네팔도 요사이는 혼자인 아이들이 많다.
앞집 쌈랏도 혼자고 건너편 비수와 형님댁도 딸만 하나다.
길가 가겟집은 아이가 안 생겨 입양했는데 그 딸이 벌써 열 살이 넘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던 제이슨이 화장지를 달라며 맨 궁둥이로 나왔다.
날이 따듯해지고부터 화장지를 사지 않았다.
카트만두도 대부분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섰는데 우리 집은 마침 쪼그려 앉는 화장실이다.
어떻게 혼자 똥을 누나 들여다봤더니 세상에, 푸하하하 거꾸로 보고 앉아 있다.
‘제이슨, 왜 거꾸로 앉아 있니?’
‘린이 엄마, 저는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몰라요.’
참 제이슨다운 답이다.
녀석, 덩치는 저렇게 큰데 아직 아기다.
화장지를 받아 든 제이슨이 혼자 할 수 있다기에 역시 한 살이라도 많아 다르긴 다르다 생각하며 나왔다.
조금 뒤 제이슨이 나왔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린이가 똥이 마렵다고 한다.
린이가 화장실로 들어가다가 도로 나왔다.
웬걸 제이슨의 뒤처리가 엉망이다.
물 안 내린 것은 고사하고 슬리퍼에 똥이 묻어 그 똥이 내 발에 다시 묻고 마루며 제이슨 바짓가랑이에도 똥이 묻어 있다.
하, 제이슨!
물을 내리고 슬리퍼와 내 발을 씻고 제이슨에게 제 바짓가랑이를 보이며 갈아입고 오라 했더니 직접 바지를 씻겠다며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걸 겨우 타일러 보냈다.
제이슨은 바로 옆집에 산다.
제이슨과 이러쿵저러쿵 할 때까지 오래 기다린 린이 마침내 화장실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
‘제이슨 엄청나네.’
그런데 이 날 일은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
옷을 갈아 입고 올 줄 알았던 제이슨이 잠시 후 나타났다.
아까 입었던 바지 그대로다.
일곱 살, 키가 훌쩍 크고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제이슨이 아주 환하고 자랑스럽게 웃는다.
‘린이 엄마, 제가 물로 씻고 왔어요.’
사 층인 집으로 올라가기도 싫었거니와 엄마에게 혼도 날 테고 혼나면 다시 와 린이랑 놀기 어려울 테니 가면서 꾀를 낸 모양이다.
마당 수돗가에서 바짓가랑이 똥을 씻고 온 아이의 저 환한 웃음!
나는 제이슨에게 린이 바지 중 큰 것을 하나 골라 주었다. 제이슨은 린이 바지를 입고 다시 놀기 시작했다.
두 녀석의 옥신각신을 보고 있으면 재미가 있다.
간식으로 준 만두를 먹을 때 제이슨이 린이에게 애걸한다.
‘그 만두피 나 줘.’
제이슨이 만두피를 좋아한다는 걸 린이는 알고 있다.
사실 린이는 만두피보다 그 속의 고기를 더 좋아한다.
제이슨의 애걸에 린이는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킥킥거리며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느린 동작으로 만두를 통째 입속으로 넣고 우물우물 씹는다.
제이슨은 울상이 되어 아쉬움을 어쩌지 못하다가 다시 또 금방 키들거린다.
참 보기가 좋다.
제이슨이 얼마 전 남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친척이 보냈다는 멋진 시계를 차고 왔다.
하늘색 플라스틱 시계인데 불이 들어왔다.
그 시계를 받자마자 차고는 부리나케 달려와 린에이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시계 뿐 아니라 까만 시계가 하나 더 있다며 어른들에게 들은 풍월까지 읊는다.
남아프리카는 엄청 큰 나라이고 물건도 네팔보다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을 때
린은 그 푸른 시계를 한 번 차고 싶어 애걸복걸을 하지만 제이슨은 침을 튀기며 일장 연설을 할 뿐 절대 벗어주지 않는다.
나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이 아이들의 놀이가 참 좋다.
늘 양보해야 한다고 배웠고 좋은 것은 남과 꼭 나눠야 한다고 배웠기에 내 욕망을 드러내기 주저하고 부끄러워했던 내 어린 시절을 비춰보면(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주 사소하지만 본인에게 중요한 몇 가지만은 고수하는 두 녀석의 놀이가 내겐 근사해 보인다.
마루에서 놀다 일이층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그것도 지겨워졌는지 밖으로 나간다.
좁은 마당에서 찌그러진 플라스틱 크리켓(밑에서 위로 공을 받아치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함께 논다.
함께 놀면 놀수록 재미있는 친구, 린이와 제이슨은 그런 친구 같다.
나는 느긋하게 책을 본다.
그것도 잠시, 제이슨의 고함 소리가 난다.
‘린이 엄마, 빨리 나와 보세요. 린이가...’
서로의 잘못을 고자질하기 좋아하는 요 녀석들.
제이슨을 따라 뛰어들어온 린이가 말을 잇는다.
‘엄마, 내가 모르고 유리창을 깼어요. 미안해요.’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두 녀석 모두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밖으로 나갔더니 계단 밖으로 난 여섯 조각의 창 중, 맨 밑의 것이 깨졌다.
린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대나무 작대기로 때리는 시늉을 한다.
나는 린에게 작대기로 유리를 때리면 깨지는 줄 몰랐냐고 물었고 린이는 몰랐다고 했다.
나는 린이 말을 그대로 믿는다.
작대기로 때리긴 했지만 깨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던 데다가 모르고 한 것은 이해할 테니 항상 솔직하게 말하라고 해왔기에 린은 정말 몰랐다고 말한 것이다.
제이슨을 밖에 두고 린을 데리고 방에 들어와 꿇어 앉혔다.
두 손도 머리 위로 들게 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린에게 다시 물었다.
'유리컵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돼?'
'깨쪄'
'그지?'
'응'
'린이가 작대기로 때린 그것도 유리컵 같은 유리로 만들어진 거야.
그걸 작대기로 때리면 지금처럼 그렇게 깨져.
다행히 유리가 두꺼워서 린이랑 제이슨한테 안 튀어서 다치지는 않았는데
이건 아주 조심해야 되는 일이야.'
몸을 비비 꼬고 손을 내릴락 말락 한다.
자리에 앉혀 움직이지 못하게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무릎을 꿇리고 손을 들게 한 것은 처음이라 린은 엄마의 강경한 태도가 반신반의한 모양이다.
'유리를 깨면 위험도 하고 다시 유리를 끼워 넣으려면 새 유리를 사야 해서 돈도 들어.
린이가 한 일을 그렇게 손을 들고 좀 더 생각해 봐.'
그리고 나는 나왔다
오 분 정도 지나고 다시 들어갔더니 린이가 얼굴이 일그러진 채 그래도 손을 애써 들고 있었다.
'좀 생각을 해 봤니?'
'생각은 아까 다 했어.'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참았다.
'그래, 그러면 손 내리고 이리 와.'
손을 내리고 잠시 멈칫거리던 린이가 내게 와 안기더니 엄청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벌이란 걸 받은 것도 처음이고 팔도 아프고 어리둥절도 하고 유리도 깼으니 울 만도 했다.
한참을 서럽게 울던 린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또 제이슨 집에 가겠다고 한다.
마침 그때 제이슨 옆집에 사는 엉기따 자매가 온다.
엉기따는 올 초, 시골에서 카트만두로 와 우리 동네에 사시는 외할아버지 댁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방학 때라 시골에서 동생이 와 두 자매가 요새 항상 손을 잡고 다닌다.
제이슨네에 가겠다는 소리는 쏙 들어가고 셋이서 이번엔 장난감을 꺼내 한참을 논다.
그 사이 커겐은 린이가 깨뜨린 창문에 합판을 잘라 우선 박아 넣었다.
엉기따를 불러 제 아빠가 끼워 맞춘 깨진 유리 자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린.
한참을 노는데 갑자기 엉기따의 이모가 와 엉기따 자매를 데리고 가는 바람에 린 혼자 남았다.
장난감은 어질러져 있고 곧 우리는 작은 아버지 댁에 저녁을 먹으러 가야하는데...
난감해진 린이가 나를 본다.
아이들이 늘 와서 노는 우리 집의 규칙 중 하나는 청소와 정리다.
한 달 정도 마르고 닳도록 말했더니 이젠 제법 알아서들 한다.
아주 위험하지만 않으면 어떻게 놀든 괜찮으니 단, 놀고 돌아갈 땐 청소하고 가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린이가 다 치워야지.’
린이는 혼잣말을 하며 치우기 시작했다.
린이는 혼자서 놀다 치우다 놀다 치우다하더니 정말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다.
'오 멋진데, 깨끗하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작은 아버지 댁에 가서 저녁을 먹고 늦게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자려고 누운 린이가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은 엄청난 하루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