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력 Aug 18. 2024

나의 신혼은 호러영화였다.

사랑의 불시착 그리고 호러

 남편과 시댁에 처음 인사 갔던 이야기를 우리 결혼하고 한참 후에 나누었던 적이 있는데, 내가 인사 온 첫날 딱 첫인상만 보고 어른들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셨던 모양이다.  몇 년 만에 집에 와서는 한다는 첫소리가 장가보내달란 소리부터 하니 이놈이 사고를 쳐서 여자에 코가 꼈나 생각하셨단다.


아 그리고 그 당시 내 모습이라면 마음에 안 드셨다는 게 이해 간다. 키 작고 쇼트커트에 선머슴아 같은 여자를 데려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처음 인사드리는 날은 그런 티를 안 내셔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남편이랑 집 뒤 밭에서 큰 아주버님이랑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며느리 첫인상 외모,  '불합격!'이었다.


우리는 시골에 계신 시댁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왔으면 나의 도착지는 신내동 우리 집, 남편은 자기 집 천호동으로 갔으면 됐다.


그런데 우리는 둘이 같이 천호동으로 도착하였다.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나는 신내동 집으로 가기 싫어서 남편 집으로 '불시착'한 것이다.


신내동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시골에서 올라왔으면 집에 와야 할 과년한 처녀가 집에 안 오니 아버지가 난리가 난 것이다.


큰오빠에게 나를 찾으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큰오빠가 생각하기에 요것들이 지하 남편 집에 있을 것으로 심증이 왔나 보다. 2층은 큰오빠 집이다. 우리는 대담하게 오빠집을 패스하고 지하 남편집에서 붙어있었다.


큰오빠가 남편 집 문을 쾅쾅 두드리며 'OO아. OO아' 내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포기하고 돌아갈 만 한데 꽤 오랫동안 불렀다. 우리는 방에 꼭 붙어서 사람 없는 척했다. 잠시 후 올케언니가 또다시 문을 쾅쾅 두드리며 나를 찾았다. 우리는 또 숨을 죽이고 없는 척을 했다.

아마 오빠도 올케언니도 우리가 일부러 대답 안 하는 줄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게 방에서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붙어 있는 게 너무너무 좋았다.  아버지같이 무서운 남자만 보다가 맹숭맹숭 착하고 잘생긴 남편이 나를 좋아하니 아마 이성이 마비된 모양이었다.


좋게 말해서 사랑의 도피? '사랑의 불시착'을 한 것이다.


그렇게 난리를 치고 서로 좋아서 그랬던 시절이 있었네. 지금 내 옆의 남자가 같은 사람인가 싶다.

나는 콩깍지가 꽤 오래갔다. 한 십 년은 간 거 같다.




우리는 우리 집과 시댁에, 이제부터 같이 살 거라는 허락을 받고 살림을 합쳤다. 그때의 내 생각은 둘이 부부가 되기로 했는데 결혼식이라는 형식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너무 가진 게 없었다. 결혼식을 할 비용도 없다 보니 허울 좋게 그렇게 포장한 것이다. 또 돈을 모아서 하기에도 둘 다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신혼집을 남편이 살던 반지하 방에서 시작하였다. 둘 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보니  장롱과 침대만 들여놓고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지하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이 보이고 거실과 방뿐인 집이었지만 아버지를 떠나서 내 남편 내 가정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살림을 합치자마자 금방 아기를 가졌다.  몸살기가 있고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것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아기집이 보였다. '배 속에 아기가 있다고?' 초음파 사진 갖고서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배가 불러오기는 하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진짜 실감은 입덧이었다. 당시 나는 종로로 출퇴근하며 무역회사에 다니는 중이었는데 지하철을 타면 거의 쓰러지기 직전으로 머리가 하얘졌다. 몸을 주체할 수 없으니 회사 다니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였다.


나는 입덧이 심하니 집에서 살림만 겨우 하고 점심은 천호시장에서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해결했다. 천호동 시장에 있는 유명한 냉면집, 노부부가 운영하는 아주아주 찾기 어려운 구석에 있는 한 평짜리 백반집에 가서 집밥 같은 밥을 먹었다. 콩나물무침, 미역국 등 특별할 것 없는 반찬이었지만 이 집 밥을 먹으면 살 것 같았다. 밥값도 너무 저렴했다. 4천 원 정도 했다. 냉면은 5천 원 정도니 진짜 저렴했다.


임신을 했으니 태교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평소 클래식이나 그런 것을 과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서 하루 종일 잠을 많이 잤다. 참 잠이 너무 쏟아지니 '내가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었나.'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입덧과의 전쟁을 벌이며 살아갔는데, 어느 순간 옆집과 맞닿은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쾅쾅 두들기기도 하고 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고 기분 나쁜 소리였다. 옆집과는 겨우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사생활 존중이 안 되는 편이었다. 옆집은 중년 부부가 살고  가끔 눈인사를 하는 정도라 서로 안면이 있는 정도였다.


내가 아기를 가진 후부터 들리는 이상한 소리는 한 달 동안 지속되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욕도 들리니 태교에 참 나쁘겠다 생각이 들었다.


나는 2층에 사는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왜 그런 소리가 나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천호동 반지하는 낮에는 햇볕이 그래도 들어오는 편이었다. 방도 시세에 비해 널찍해서 많은 살림이 들어가도 넉넉했다. 불편했던 점은 지나가는 어느 호기심 많은 사람이 들여다볼 때다. 방안에 있는 나를 누가 창문에서 들여다본 적이 있어서 너무 무서워 낮에도 커튼을 치고 생활해야 했다.


밤에는 더 무서웠다. 우리 집 창문 앞 골목길이 불량배들 아지트인지 허구한 날 밤에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느 날은 연인들이 싸우기도 했는데 남자가 여자한테 데이트 폭력을 하는지 아주 무섭고 괴로워 아침이 오기만 바랬다.


우리 옆집 소리도 그런 부부 싸움 소리라고 생각했다. 오빠가 옆집과 이야기하고 와서는 아저씨는 낮에 없고 가끔 집에 온다는 거다. 옆집에 임산부가 사니 조금 조심해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부부 싸움도 아니면 그럼 대체 그 여자는 누구를 향해서 그렇게 분노를 터트리고 욕설을 할까.  의문이 들었다. 오빠가 옆집과 얘기하고 며칠 조용하다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욕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태교는커녕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옆집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여자가 어떨 때 어떤 욕을 하나 벽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한참 후 내가 부엌에서 무엇을 하기 시작하자 그 여자는 갑자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 욕은 나를 향한 것일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말 한번 섞어 본 사이가 아니다.  그럼  대체 뭐지? 생각의 꼬리를 물다가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 이 일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오빠에게 그 여자가 대체 왜 욕을 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임산부인 내가 나서기는 좀 무서웠다. 당시 28살이었다.  


오빠가 옆집을 다녀와서는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옆집 여자 말로는 내가 먼저 벽을 향해 욕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나서 벽에 대고 그렇게 욕을 했단다. 나를 향한 욕이 맞았던 것이다.

   

뭔가 꼬인 사람이 분명하다.

  

나는 생각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까. 지금 당장 이사 나가고 싶지만, 우리 집도, 옆집도 바로 이사 나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 클래식을 들려주지  못할망정 욕이라니...  이틀에 한번 꼴로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욕을 듣는 것은 공포 그 자체다.


나는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사자를 확인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접 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나는 같이 화가 나서 따지는 방법이 아니라 회유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아무래도 아이가 뱃속에 있으니 그 방법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남편 쉬는 날 같이 음료수를 사들고 옆집 문을 두들겼다.


똑똑


"옆집 새댁이에요."


이전 02화 시댁에 인사드린 첫날, 트로트를 불러 제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