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아서요. 음료수 드시며 같이 얘기해요."
나는 손에 들린 주스를 들어 보여줬다.
그 여자는 반쯤 열었던 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는 안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방을 살펴보았다. 방 구조가 우리 집과 반대지만 똑같았다. 깔끔하고 단촐했다. 이불도 반듯하게 정리를 잘해 놓았다. 옆집 아저씨도 그날은 집에 있었다. 아저씨 인상도 나쁘지 않았다. 방에 앉으며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요. "를 시작으로 욕한 적이 없고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등최대한 상대방 마음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아저씨는 이미 오빠한테서 얘기를 들었었는지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었다. 뭔가 얘기가 잘 통할 것 같았다. 옆집이니 그렇게 나쁘게 지내지 말고잘 지내자는 마지막 이야기로 마무리하였다.
아저씨가 집에 있는 게 나은 것 같았다. 아저씨가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아줌마도 먼저 욕이 들려와서 그랬다고 변명을 했다. 나의 얘기를 듣고 의외로 수긍을 하고 오해를 푸는 눈치다. 어쨌든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이야기하고 옆집을 나왔다.
그 후로 전혀 벽을 타고 욕은 들려오지 않았다.
'휴~ '
나는 우리 아기의 태교를 사수하기 위하여 싸움이 아닌 친구가 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 후로 아줌마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갖다 주기도 하고 친근하게 대했다. 나는 속으로 꺼림칙함이 남아있었지만 최대한 좋게 지내려 했다. 심지어 아줌마가 동대문에 옷 사러 가자고 해서, 임산부라 힘들 때인데도 동행하고 옷도 골라주었다.
아기를 낳고 옆집 아줌마가 아기가 너무 보고 싶다고 보러 오기도 했다. 조금 꺼림칙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기 옆의 아줌마를 주시하였다. 티 안 나게...
그런데 나는 아기랑 나랑 오빠 집 지하에 매일매일 이런 집에서 사는 것이 마뜩지 않았다. 남편과 상의 후 이사를 가기로 결심하고 오빠에게 말하였다. 오빠는 '돈 좀 모아서 이사 가지'하고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런 환경을 너무 탈출하고 싶어서 쪼금 나은 곳으로 이사하였다.
옆집 아줌마는 처음에 아기를 임신한 나를 질투한 것도 같다.내가 입은 임산부 옷도 별거 아닌데도 이쁘다고 부러워했다. 좀 대화가 필요한 외로운 사람이구나 느껴지기도 했다. 내 마음이 꺼림칙함이 남아 있으니 관계는 이사와 함께 끝이 났다.
신혼 초에 남편이 실직을 했다. 월급도 몇 달 동안 제대로 가져다주지 않더니 일하던 가게는 폐업하고 남편은 백수가 된 것이다. 남편의 그 당시 직업은 중국집 요리사였다. 다시 취직하면 되지만 금방 취직이 되지 않았다.
벼룩시장을 살펴보다가 한 광고가 눈에 띄었다. 보증금 500 월세 50 권리금 300 자장면집 인수하실 분. 이렇게 나온 광고가 눈에 띄었다.
'와 가게를 천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인수할 수 있네.' 쉽게 생각했다.
우리는 곧장 가게에 방문하였다. 지금 사는 집과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10평 정도 하는 가게에 홀과 주방, 방이 하나 딸린 가게였다. 모든 집기들은 그대로 있고 바로 장사만 하면 되는 거였다. 우리는 그 당시 딱 그 정도의 돈이 있었다.
우리는 그날로 가게 인수를 결정하고 일주일인가 내부 공사를 간단하게 하고 영업을 시작하였다. 참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하고 무지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자장면집주인이 된 것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자장면 집은 인수만 하면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손님이 많지 않았다. 광고도 하고 배달도 했지만 우리가 먹고살 만큼의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 택시 기사님들이 가끔 들려서 식사하시고 맛있다고 하지만 입소문 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더구나 나는 첫째를 낳고 자장면 집에 딸린 방에서 같이 돌보면서 홀서빙을 했는데 아이한테도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결국 가게 인수는 4월에 했는데 8개월인가 운영하고 다른 사람한테 넘겼다. 조금 더 해볼 수도 있었는데 그 당시 어린아이를 돌보고 가게를 운영하기 힘들어서 양도하기로 빠른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금방 인수하실 분이 나타났다. 우리는 투자한 돈에서 조금 더해서 받았다. 손해는 보지 않았다.
그 후로도 양주에서 한 번 더 자장면 집을 8년을 운영했다. 이번에는 열심히 했지만 실패했다. 폐업하고 나니 거의 1억 가까이 빚이 생겼다. 우리는 둘 다 파산을 했다. 아주 큰 수업료를 치렀다.
두 번 실패하고 그제야 우리의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 봤다. 남편과 나의 성향을 분석하였다. 남편은 고객이나 직원들 관리를 잘 못했다. 성실하고 자장면도 맛있게 만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의 문제점은 숫자에 약하다는 것이다. 사업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머릿속의 계산이 전혀 되질 않는다. 숫자 알레르기가 있는지 더하기 빼기도 수월하게 못한다. 그것 말고도 우리는 수십 가지의 실패의 원인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사업하지 말자'이다. 우리는 사업하는 머리가 전혀 없는 사람인 거다. 앞으로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사업은 안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