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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뇌순남과 산다

feat : 질문 살인마

by 필력

남편은 참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연애할 때는 잘생긴 남편이 이것저것 질문하면 정말 내가 가진 재능을 한껏 발휘해 설명해주고는 했다. 나의 설명을 들은 남편은 늘 흡족해하고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누가 뭘 물어보면 알기 쉽게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것은 나만의 재능이라면 재능이겠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게 말이다. 근 30년 가까이 그런다고 생각해 보라. 남편은 모든 삼라만상,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궁금증을 나를 통해 해결한다.


나도 슬슬 짜증 날 때가 되지 않았겠는가.


무언이 궁금하면 말이다. 상황 파악을 해보거나, 추리를 하거나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책을 읽으면 된다. 남편은 늘 나를 통해 해결한다. 도통 생각이나 추리를 하지 않는다.


오늘도 말이다. 밥솥이 밥이 냄새가 나고 고장이 났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우리 집에 들어온 밥솥은 너무 고생을 많이 한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7인분의 밥을 만들어내니 1년마다 손을 본다. 오늘 그 시점이 온 것이다.


우리 집은 밥이 없으면 큰 일 나는 집이다.


마침 창고에 서브밥통이 있어서 남편에게 부탁을 하였다.


"여보. 창고에 밥솥 좀 갖다 줘. "


그런데 그런 느낌 있잖은가 한 번에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어. 밥솥 없는데? 창고에 있는 것 맞아?"


"어 있어. 잘 보면 돼."


"없어. 없다니까."


이쯤 되면 남편 눈으로는 이미 밥솥을 가져오는 것은 글렀다. 나는 창고로 가서 남편의 눈앞에 있는 투명 비닐에 쌓인 밥솥을 가리켰다.


"저기"


"아. 거기 있었네."


나는 부엌에서 하던 일을 마저 한다. 왜 못 찾았냐고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다. 남편은 내가 알려준 밥솥을 선반에서 번쩍 들어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말한다.


"아 밥솥 색깔이 흰색이고 작아서 밥솥 아닌 줄 알았지."


아니 밥솥이 늘 보던 색깔이 아니면 밥솥이 아닌가? 늘 그런 식이다. 우리 남편은.... 늘 보던 것과 다르면 다른 생각을 못한다.


살짝 잔소리가 올라오려고 그러니 남편은 감지했는지 갑자기 출근준비를 한다. 현관에서 부리나케 신발을 신다가 무엇을 발견했다.


바로 이 종이조각이다. 아주 아주 작은 종이조각

남편은 현관에서 작은 종이조각을 집어 들더니 너무 궁금하다는 듯 나에게 보여 주며 묻는다.


"이거 뭐지?"종이조각을 내 눈앞에 보여주며 묻는 것이다.


순간 나는 그동안 친절하게 설명해 줬던 여러 가지 일이 스쳐 지나가며 '이런 것까지 묻는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겨우 작은 종이조각이지 않는가. 이게 물어볼 일인가.


순간 나는 남편을 골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보여준 작은 종이조각을 소중히 건네받아 내 손바닥에 얹고서 천천히 친절하게 말했다.


"여보 이건 무척 소중한 거야. 되게 소중하고 귀한 거야. 그러니까 당신이 출근할 때 가져가면 돼."


남편은 내 얼굴과 종이조각을 번갈아 보더니 당황한 표정이다. 너무 진지한 내 표정을 보더니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없었는지 아니면 마누라가 이상했던지. 흐흐흐 웃고는 황급히 현관문을 닫고 도망간다.


나는 뒤에 대고 진지하게 소리쳤다.


"여보 소중한 거야. 가져가."







나는 뇌순남과 산다. feat: 질문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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