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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Jul 19. 2024

고양이 덕을 볼 줄 몰랐다

이름은 칠월이

우와 감사하다.


오늘은 칠월이 덕을 봤다.


나는 아침에 애들을 깨워서 학교 보내는 것이 하루 중 제일 힘든 일이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 둘을 겨우 겨우 깨우고 얼른 씻으라고 화장실로 밀어놓는다. 또 겨우겨우 지각은 면하게 닦달을 하고 겨우 학교에 보냈다.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는 왠지 녹초가 돼서 하루의 시작이 힘을 반이나 쓴 모양새이다. 큰애들 키울 때 이십 년이 넘게 그랬고 또 막내 애들을 키우면서도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였다.


내가 양육을 못해서 인지 '아침에 애들 깨워서 학교 보내기'는 나의 스트레스의 하나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에 나가보니, 아이들이 깨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어나 한 녀석은 칠월이 분유를 타고 있고, 한 녀석은 칠월이와 놀아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와 우와 세상에 이런 일이...


애들은 칠월이를 다 돌보고 나서, 각자 알아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내 도움 없이 스스로 학교에 갔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된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오늘은 방학식 하는 날이다. 즉 월요일부터 쭉 한 달 동안 아이들이 집에 있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칠월이 덕을 톡톡히 봤다. 나는 칠월이를 키우며 이런 좋은 일이 생길 줄을 몰랐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나는 편하게 집안일을 했다.


잠시 후 배고파하는 칠월이 분유를 능숙하게 먹이고 한참을 놀아준다.  이제 제법 나랑 요리조리 잘 논다. 어제부터 깨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잠든 칠월이를 확인하고, 마트에 살 것이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은 왼손이 몽글몽글 칠월이와 놀아주던 감촉이 느껴졌다. 분명히 칠월이는 자기 방 보금자리에서 자고 있는데, 방금까지 놀아줬던 왼손이 마치 칠월이를 만지는 감촉의 여운이 남은 것이다.


'뭐지?'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옆에 없는데 옆에 있는 느낌.


참 희한한 느낌이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고양이와 전혀 일면식도 없었고 만져보지도 않았던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을 보고 와서 고양이가 있는 방을 열어보니 아직 곤히 잠들어 있다.


잠시 후 왁자지껄 애들이 금방 돌아왔다.


셋째는 그동안 돌봐줬던 길고양이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자기가 학교 끝나면 먹이 주었던 이야기를 한다.


고양이들한테는 미안한데, 우리 칠월이가 월등히 이쁘다. 각양각색의 길고양이들과 친분(?)을 쌓고 먹이를 주고, 사진을 찍고 귀여워하던 아이니 칠월이는 얼마나 이쁠까.


고양이덕에 셋째랑도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애들이랑 각종 문제로 투닥투닥 의견이 안 맞을 때가 많은데 칠월이가 깨면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게 된다.


방금도 아이 학원 문제로 서로 의견이 안 맞고 서로 기분이 안 좋아서 잠깐 소강상태였다. 뭔가 찝찝한 채로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다 학원 갈 때가 되니


"칠월이 깼어. 나 학원 가야 돼."이런다.


칠월이 덕에 우리는 잠깐의 소강상태를 중단할 수 있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 투닥거림의 중단을 할 수 있게 칠월이가 도와주는 것이다.


고양이 덕을 볼 줄 몰랐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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