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
사진 날짜 94년 7월 12일. 여름이라 속옷과 고깔모자만 입고 있지만 세상 제일 큰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 생일 개념을 처음으로 알게 된 아이. 생일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걸 배운 아이. 배스킨라빈스에서 강아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통째로 먹으려고 도전하는 아이. 혼자 숟가락질이 익숙하지 않아 딸기 아이스크림을 얼룩덜룩 묻히고 먹은 아이. 내가 어린 시절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이다.
첫 생일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받는다는 건 내게 삶에 어떤 의미였고 영향을 끼쳤는지 한동안 몰랐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참 귀여운 추억이었다는 생각만 들고 1살에 나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깊이 생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근데 딱 하나는 알았다. 내 생일 공식은 무조건 아이스크림 케이크였다. 가능하면 배스킨라빈스 걸로.
강아지 아이스크림 덕에 배스킨라빈스 발음도 제대로 못 하는 나이부터 충성심이 생겼다. 보이는 어른만 보면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먹으러 배스 꾸리 아이스 꾸리 갈까?”라고 물었던 아이스크림 전도사가 바로 나였다. 좀 더 컸을 땐 매달 나오는 아이스크림 맛이 궁금해 아빠를 졸라 자주 아이스크림을 종종 사러 갔다. 아빠랑 나는 한자리에서 파인트는 혼자 먹을 수 있는 충분한 크기이기에 무조건 크기는 쿼터 아니면 패밀리로 시켜야 했다. 부모님은 아몬드 봉봉, 자모카 퍼지를 고르셨고, 나랑 동생은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레인보우 샤베트, 체리 쥬빌레, 피스타치오 아몬드, 슈팅스타를 자주 먹었다. 언제 한 번은 피스타치오 아몬드가 다 나가서 민트초코를 시켰는데 5살이 처음 먹어본 민초는 충격적이었다. 차가운 치약 맛 아이스크림이 따로 없었다. (TMI지만, 이젠 민트초코 굳이 찾아서 먹지는 않지만 있으면 먹습니다.) 그렇게 다 주문하고 나면 야무지게 드라이아이스 포장까지 하여 집에 와서 드라이아이스로 연기를 나게 하는 과학실험까지 할 수 있는 든든한 가족 활동이었다.
배스킨라빈스가 가족을 단합시킬 때도 많았지만 한번 크게 싸움에 중심이 된 적도 있다. 대학교 여름방학이라서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내 생일 이틀 전 아빠 후배가 치즈케이크를 선물해 오셨다. 그분은 내 생일인지도 모르고 아빠께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 선물이었는데, 아빠는 생일 가까우니까 후배가 사 온 케이크에 촛불 꽂고 생일 축하합니다. 불러주면 아빠의 도리는 끝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나는 여름을 한국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아무리 대학생이라도 내 생일 케이크는 당. 연. 히. 배스킨라빈스 강아지 케이크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그냥 남이 사 온 치즈케이크로 내 생일 케이크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게 서러웠다. 나는 치즈케이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게 내 생일 케이크라고? 믿지 못한 일이었다. 내 생일날도 아니고, 2일 전 촛불 켜고 노래하자는 이 매력 하나 없는 20대 생일이 뭐지? 이러려고 가족이랑 생일을 보낸다고? 그 후, 아빠의 내 생일 케이크 발언권은 뺏기 위해서 아빠랑 생일을 한동안 안 보낸다는 작은 소심한 다짐도 새웠었다.
책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생일은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날 중 하나다. 기적적인 일이 생길 때도 있고, 아무리 가족이랑 싸워도 주인공이 원하던 생일 선물을 받고 화해하는 동화책 같은 날인데, 내 삶은 소설이 아니라 너무나 현실적인 무미건조한 인간드라마였을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아빠는 딸이 대학생이 되었으니 이젠 알아서 생일 보내는 것도 바라셨을지도 모르겠다. 이 생일이 최악의 생일도 아니었고 그 후 강아지 아이스크림 케이크 못 받은 생일도 많았지만, 생각을 많이 심어준 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세상의 공주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권세와 권리를 하루에 다 누리려 하는지. 왜 그런 욕심을 하루에 꾹꾹 채워 넣는지. 나는 하루만큼만 이라도 그런 대접 못 받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웠다. 이중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한동안 집요하게 요동했다.
오랫동안 생일에 대한 집착에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왜 나는 매년 최고의 생일을 보내야 하는가? 내 생의 최고 생일은 내 기억 속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첫 번째 생일이 어서였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내 앞에 있는 것에 대한 감정만큼은 제일 진심이었다. 나는 언제 이 첫 생일만큼 최고의 생일을 보내길 힘들 걸 깨달을 수 있을까?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생일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배우고 깨달은 그 상태를 지금 내 미래의 최고 생일과 비교할 수 있을까? 나는 남에게 불가능함을 요구하고 있었던 거다. 아이스크림을 처음 맛본 그 감정을 갱신하게 해 달라는 미친 요구는 남도 아닌 자신도 못 채워주는 거였기에. 생각보다 쉽게 내가 기대치를 낮춰야 내가 행복해질 방법이 있었는데 이 결론까지 29년이 걸렸는지 귀여운 추억이 무겁게 답답하게 느껴진다. 남이 만들어준 생일에 목매는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빛나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탄탄한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