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하드를 사 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음식 중 바뀌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만큼은 편식 안 하고 슈퍼에서 사 먹는 하드부터 수제 젤라토까지 다 사랑한다. 다이어트할 때만이 아니고 식사 대신 아이스크림을 한 끼로 먹을 정도로 그만큼 아이스크림을 사랑한다. 계절 또한 따지지 않는다. 여름에는 더워서 먹으면서 좋지만 빨리 녹는 게 속상하고 귀찮다. 겨울에는 추위랑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싸움하듯이 덜덜 떨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덜 즐기는 건 아니다. 천천히 안 녹고 온전히 내 입안의 온도로 녹여서 아이스크림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아이스크림 종류 중 가격과 접근성이 가장 좋은 건 당연히 하드다. 아주 어릴 땐 스크류바랑 메로나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딸기를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 딸기 때문에 스크류바만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크류바 먹고 나면 빨갛게 틴트 바른 것 같이 입술에서 앵두 빛나는 게 참 좋았었다. 메로나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엄마가 메로나를 좋아하셔서 항상 집에 있던 것 같다. 그 당시 하드 심부름 다닐 때 아빠는 혀를 검은 푸듯 게만 드는 죠스바를 제일 좋아하셨다. 정말 아빠 나이대에 죠스바 드시는 분은 드물었는데, 아빠는 떳떳이 집에서 죠스바를 즐기셨다.
그러던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우리 집 하드 취향을 뒤 박아 놓은 하드를 두 개가 있다. 초콜릿 와플인지 모나카인지 뻥튀기 맛이 나는 과자 속 안에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빠삭한 초콜릿이 들어가 있던 크런치 킹. 쌍쌍바보다 더 쉽게 나눠 먹을 수 있어서 좋았던 내 추억의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리고, 바닐라 맛인지 우유 맛인지 애매한 얼음 맛의 겉옷을 다 먹으면 초콜릿 속옷과 부드러운 쿠키엔 크림 아이스크림이 숨어있는 옥동자. 초콜릿을 살살 녹여서 먹을 때도 있었고 기분 따라 아작 초콜릿을 씹어 쿠키엔 크림 아이고! 이 시려라. 이상하게 하나만 먹으면 섭섭한 게 하드더라. 여러 개 먹어줘야 제맛이었던 크런치 킹과 옥동자. 많은 하드와 달리 여러 식감을 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둘에 매력 아니, 마력이다. 크런치 킹이 단종되어서 찾을 수 없는 게 슬프긴 하지만 아직도 옥동자를 찾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다행이다.
20년이 지난 아직도 옥동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왠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빠는 분식 중독자이기도 하지만 전자기기 중독자이기도 하다. 중독자라고 하긴 하지만 아빠는 고등학교 때 할머니한테 컴퓨터 사달라는 걸 성공하시고 컴퓨터공학까지 가시게 된 나름 엘리트이며 얼리어답터이시다. 나는 아빠의 메카, 용산을 걸음마를 떼고 난 후부터 따라다녔던 것 같다. 인터넷 쇼핑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던 1990년도 중후반부터 2000년도 초반까지 새로운 전자기기가 나오면, 우리는 용산에 가야 했다. 컴퓨터 부품부터 시작해서 카메라에 DVD 플레이어까지 우리 집 모든 전자기기 구매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 곳만 둘러보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 둘러보며 가격이랑 스펙 그리고 서비스까지 챙기는 아빠를 보며 전자기기 구매에서 가장 중요한 꼼꼼함을 어린 나이 때부터 배웠다. 그때와 비교해 요즘 인터넷에서 전자기기 찾아보고 구매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그래도 나름 머리 써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절에는 네고도 해야 하니 더 힘든 시절이었다.
아니 왜 옥동자랑 용산이 무슨 상관일까?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래전 90년도 후반에는 용산 전자상가에는 데어리퀸이 있었다. 데어리퀸은 미국에서 1930대 후반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먼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아이스크림 체인점이다. 데어리퀸에서 처음으로 먹게 된 소프트 아이스크림 디핑콘 그 맛, 촉감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조하며 딱딱한 초콜릿 셸이 0.5초의 오도독 씹힘과 바닐라 소프트아이스크림의 부드러움으로 사르륵 넘어가는 그 느낌을. 너무나 상반되는 존재들이 완벽히 공존하는 입안의 심포니였다. 매번은 못 먹었지만 자주 아빠가 꼬드겨서 용산 데리고 갈 때마다 얻어먹었던 내 추억의 디핑콘. 맨 처음 DVD 플레이어를 구매해 첫 DVD로 토이 스토리 2를 사 왔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후로는 데어리퀸을 용산에서 못 봤다. 옥동자는 데어리퀸이 한국에서 몰래 사라졌을 때 삶에 단비같이 나타나 준 존재였다. 재미있는 건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선 옥동자가 귀하고 데어리퀸은 집 근처에 많다는 거다. 한국이 그리울 때, 아빠가 그리울 때 아무리 추워도 디핑콘을 먹으러 데어리퀸을 찾으러 다닌다.
계절 안 따지고 아빠는 사랑 표현을 밤사이 산타가 되어 냉동고를 하드로 꽉꽉 채워놓으시는 걸로 하셨다. 어린 시절 매일 아침을 크리스마스 아침같이 일어날 수 있던 아빠의 선물들. 옥동자는 출시 후부터 대학생 여름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서 아빠와 보내는 시간을 빛내주었다. 이젠 우리가 집을 나갈 때마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를 들린다. 24시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많이 생겨 아무리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사 갈 수 있다. 바구니를 챙긴 후 신상 아이스크림이 나왔는지 한번 쓱싹 둘러본다. 아무리 신상이 들어와도 나는 옥동자 5개를 바구니에 넣는다. 내가 두 개 먹고 아빠가 세 개 드시면 내일 저녁까지는 남아있겠지? 더 사 갈지 말지 고민하고 하나 더 집어넣는다. 아빠가 내 것까지 다 먹어버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비비빅도 할머니 거랑 내 것 하나씩 집어 올 때도 있고, 인절미 맛 아이스크림을 찾는 곳곳 발견한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우유 맛 하드들도 고르고 캔디바랑 누가바도 몇 개 챙긴다.
다른 사람들에겐 올 때 메로나라면, 우리에겐 올 때 옥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