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
아마 아빠가 학부모가 되어서 가장 매우 놀라셨던 거는 아빠 학창 시절 때 드시던 불량식품들이 아직도 초등학교 앞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내가 엄마한테 불량식품 먹고 걸려 혼나는 도중, 아빠는 문방구에 아폴로가 판매되고 있는 게 더 중요하셨다. 같이 혼내시기는커녕, 아빠가 아폴로를 뺏어 드셨다. 아직도 맛 똑같다고 하시면서. 초등학교 일 학년에겐 충격이었다. 혼나는 것보다 더 화나는 건 내 사탕을 아빠가 뺏어 먹다니!
그다음 주 토요일 아침 아빠는 학교 끝나고 같이 문방구에 가자고 먼저 제안하셨다. 아빠에게 내 용돈이 어디로 가는지 보여드릴 거에 설레고 용돈으로 어림도 없는 물건 사달라고 할 생각을 하니 학교는 금방 끝나있었다. 들뜬 마음에 선생님들한테 혼나지 않을 정도 속도로 뛰어 학교를 벗어났다. 아빠는 차를 운동장 반대편에 세워두시고 나를 찾고 계셨다. 내가 아빠 눈을 마주치니 아빠는 손을 흔들어 주셨다. 선생님들 근처에 계시나 한번 둘러보고 아빠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하며 내가 좋아하는 문방구들 보여줄게 하며 아빠 손을 잡고 문방구로 향했다.
불량식품 종류가 가장 많았던 문방구는 학교 후문 옆 첫 문방구였다. 그곳은 학교와 연동되어 있어 학습 재료들 주위로 파는 곳이었지만 학교 밖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최적화돼 있는 장소 때문에 학생들을 유혹하는 불량식품들이 제일 많았던 문방구였다. 그곳에서 아빠도 다시 초등학생이 되어 첫 불량식품을 접한 것 같은 눈으로 불량식품들을 보여 드렸다. 하나 하니 보시면서 이게 아직도 있네, 저게 아직도 있네. 감탄하시면서 보셨다. 다른 초등학생들은 어른이 불량식품에 관심 있다는 걸 놀라면서 아빠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도 인지하지 못한 채. 아빠가 노랗고 길쭉한 걸 보시고 이게 아빠 제일 좋아했던 것 중 하나라고 보여주셨다. 맛기차 콘 쫀드기. 거의 아무 맛 안 나지만 단맛과 씹는 재미로 먹었던 맛기차 콘 쫀드기.
나는 입술을 시퍼렇게 만드는 페인트 사탕과 비벼 먹는 초콜릿을 골랐다. 그렇게 고르는 동안 아빠는 또 오랜만에 보시는 다른 추억의 간식을 찾으셨다. 숏다리. 건어물을 좋아하시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오징어 다리. 거기에 더 감칠맛 나게 MSG가 듬뿍 뿌려져 있는 숏다리. 오징어 다리 하나, 두 개씩 찢어서 잘근잘근 오랫동안 씹기 좋은 숏다리. 아빠가 불량식품들을 계산할 때쯤 우리 주변의 우리 반 애들 두 명이 저희 같은 반 친군데 저희 거도 사주시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 그러라고 하시면서 아빠는 우리 반 아이들 간식까지 쿨결재를 해주셨다. 아빠는 우리 반에서 불량식품도 사주는 멋진 아빠로 단명 유명 인사였다.
그 주말 후, 종종 엄마손떡볶이 가기 전에 불량식품 심부름도 종종 했었다. 쫀드기와 숏다리를 사러 차 타기 전에 문방구에 들렀다. 심부름을 매주 한 5년 들리다 보니 이민하게 되었고, 불량식품들과도 잠시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아빠는 우리를 보러 오실 때마다 숏다리 몇 봉지를 구매해 오셨다. 엄마는 왜 이런 냄새나는 걸 갖고 오냐고 갖고 오냐고 아빠한테 구박을 주시곤 하셨다. 난 아빠가 추억을 공유해 주시려고 노력하신다는 게 감사했다.
문방구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게 슬프다. 인터넷에서 충분히 구매도 가능하고 그렇지만 그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문방구들은 몇십 년 뒤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될까 봐 걱정된다. 문방구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사회성을 기르게 도와준 것 같은데, 이제 학생들은 24시간 무인 문구점에서 키오스크와 사회성을 나눈다. 다행히도 무인 문구점에 아직도 불량식품을 구매할 수 있긴 하다. 아빠가 좋아하는 쫀드기랑 숏다리는 찾지 못했지만, 아직 단종되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인터넷 어디에선가 살 수 있겠지? 다음에 한국 갔을 때 아빠한테 불량식품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나눠 먹자고 내가 먼저 제안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