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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물 Mar 24. 2024

끈질긴 낙산냉면

매운맛

엄마랑 아빠는 식성이 달라도 너무 달라 음식 때문에 시작된 부부 싸움들이 수두룩 하셨다.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엄마는 생선 파, 아빠는 육식파. 엄마는 질은 밥, 아빠는 고두밥. 엄마는 짬뽕, 아빠는 짜장면. 엄마는 비냉, 아빠는 물냉. 나는 아빠와 입맛이 더 비슷하다. 그 까다로운 두 명의 입맛 중간 점 냉면집을 아빠가 찾으셨다. 맛집 찾기 좋아하던 아빠는 한동안 주말마다 도장 깨듯 가족들과 맛집 찾으러 다니는 걸 좋아하셨다. 그러다 찾게 된 낙산냉면. 공중파 방송까지 타서 좁은 골목에서 줄 선 후 작은 방바닥에 테이블 몇 개 없는 곳에서 뒤에 줄 서있는 사람 눈치 보면서 먹어야 하는 곳. 나는 그곳만 가서 그렇게 먹고 나면 쉽게 체했다. 돈 내고 먹으면서 이렇게 눈치 보면서 먹어야 한다니. 좋아하는 것도 먹지 않으면서 체하다니. 씁쓸했다. 체할 때마다 엄마는 네가 안 씹어서 먹어서 그렇다고, 네가 냉면 잘 안 잘라서 먹어서 그렇다고, 나를 위한 핑계를 대신 주셨다. 참 감사해라.


나도 무조건 물냉면 파였지만 부모님이 좋아하시니 할 수 없이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매운 것도 안 좋아하니 비빔냉면은 진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양념장 없이도 주문할 수 있었는데 그건 맛없다고 그렇게도 주문도 못 했다. 서글펐다. 어려서 내 의견은 상관없었다는 게. 동생은 매운 것도 잘 먹는 아이라 항상 행복하게 낙산냉면을 찾았다.


이민 이틀 전 엄마랑 그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아빠가 퇴근하실 때 저녁을 먹자고 연락하셨다. 설마 한국 떠나는 건 나인데 또 낙산냉면 먹자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내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빠한테 동생이 엄마랑 내가 할머니 집을 나서기 전에 했던 말을 다시 읊어 드렸다. “저녁 먹지 말고 와! 낙산냉면은 절대 나 빼고 갈 생각 하지 마!!” 아빠는 냉면은 간식이라며 금방 배에서 꺼진다고 동생이 절대 모를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또 줄을 서러 대학로를 지나 낙산냉면 앞에서 아빠를 만났다. 다행히도 평일이어서 줄은 짧았었다. 우린 또다시 방바닥에 앉아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매콤 시원한 냉면을 찾았다. 마지막까지 내가 원하는 양념장 양은 못 골랐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슬프다니. 면으로 뜨개질하듯이 양손으로 젓가락 한 짝씩 잡고 돌돌 말아서 먹었다. 그러다 금방 먹는 게 싫증이 나서 면 가닥 하나씩 들어놨다 내려놨다 하다가 냉면 흘리기까지 했다. 다행히 입고 있던 셔츠랑 반바지에는 아무것도 안 묻었다. 맛없게 먹어서 저녁 다른 거 먹을 수 있겠네.


다 먹고 동생 데리러 할머니네로 향했다. 아빠는 엄마랑 나를 먼저 할머니 아파트 앞에 내려주시면서 낙산냉면 갔다 온 거 증거인멸하자고 이빨 체크하라고 하셨다. 다행히 끄적끄적하게 대충 먹어서 깨도 고춧가루도 이빨 사이에서 볼 수 없었다. 옷도 아까 흘렸을 때 설마 해서 한 번 더 엘리베이터 거울에 체크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네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은 “낙산냉면 갔다 왔어! 안 왔어?”라고 물었다. 엄마는 뻔뻔하게 “어 안 갔어.” 하시며 신발을 벗으셨다. 나도 동생을 속여서 마음이 안 좋았지만, 엄마의 거짓말이 들리자, 마음이 안도되었다. 그 순간 동생은 “이게 뭐야?” 하며 소리 질렀다. 나도 신발을 벗는 순간 알아챘다. 아… 들켰구나. 아무리 이빨이며 거울에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갖고 놀던 냉면 한가락. 양말에 딱 붙어 존재감을 드러내야만 했을까. 동생은 울고불고 신경질을 냈다. 나만 놓고 갔다고. 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공범이었구나. 동생의 마음을 달리려고 하는 순간 아빠가 차 세우고 할머니 집에 들어오시면서 냉면 안 먹고 왔다고 벌써 들통나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셨다. 할머니는 '쯧쯧' 하시면서 아빠를 쳐다보셨다.


내 기억으론 그다지 맛없는 냉면으로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곳. 아직도 잘 되던데 다행히도 20년 전 먹은 낙산냉면이 현재로서 마지막 그릇이다. 나는 심각히 물냉면 파라서, 고춧가루를 냉면에서 찾는 걸 용납 못 한다. 더 이상 아빠의 메뉴 독점권에, 이기적임에 덜 시달려도 된다는 철부지 없는 딸이다. 한국에 나와 있으면 길게 몇 주뿐인데 그때만큼은 내가 먹고 싶은 거 고집하고 있다. 드시고 싶으면 나 한국 없을 때 드시라고 내가 역 꾸중을 드리는 불효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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