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맛
모르는 게 약이다. 어릴 땐 뭔지 모르고 잘 먹었겠는데 더 이상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선지 해장국, 순대, 알탕, 그리고 번데기. 번데기만큼 나에게 오랜 기억을 남겨준 음식도 없을 거다. 이름부터 정이 갔었다. 번데기. 발음하기도 쉬웠고 아빠랑 손잡고 시장 다녀올 때 보면 먹게 됐다. 아빠가 이쑤시개에 하나 딱 집어 호호 식혀 내 입안에 넣어 주셨던 다정함을 잊지 못한다. 분명 책에서 번데기가 나비가 된다는 거 읽었는데, 설마 이 번데기가 저 번데기겠어? 믿고 싶지 않아서 그 사실을 부정하고 아빠랑 번데기를 나누어 먹었다. 의심조차 하지도 않았던 어린 나다.
유치원 겨울방학 때 외할아버지 댁에 가기로 한 주말이었다. 아빠 해외 출장 때문에 설날 연휴 때 다 같이 못 뵈러 가게 되어, 설날 연휴 전에 외할아버지를 뵈러 가기로 했다. 외할아버지네 가는 길은 주말 차 막히면 기본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까지 생각해야 했다. 거기다 멀미가 심한 나 때문에 가다가 잠깐 차 세워야 하는 상황도 자주 생겼다. 아빠는 배가 고프면 아기가 배고프다고 칭얼대듯이 짜증을 잘 내셨다. 그래서 장거리 운전하실 때, 특히 외할아버지 댁 갈 때마다 간식을 챙겨가야 했다.
본격적으로 고속도로 타기 전 시장에 차를 데어 엄마 보고 가는 동안 차에서 먹을 음식을 픽업 부탁하셨다. 나도 그때 출출해서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참을성이 없어져 갔다. 아빠 딸인 게 확실한 건지 배고프면 얼굴에 표시 나고 참을성이 아직도 없다. 그때도 얼마나 배고팠는지 엄마가 차에 타시자마자 엄마 손에 들린 번데기를 달라고 달달 졸라댔다. 엄마는 엄청 뜨겁다고 조심히 후후 불면서 먹으라고 조수석에서 뒷자리로 번데기 담긴 컵을 넘겨주셨다. 아빠가 그때 갑자기 운전을 시작하시기도 했고, 손이 유난히 작았던 나는 컵이 뜨거워서 제대로 못 잡고 바로 놓쳐버렸다. 아뜨뜨 너무 뜨거웠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팔팔 끓고 있던 번데기가 내 종아리와 발에 쏟아졌다. 내 살도 국물에 번데기와 같이 익고 있었다. 음식 쏟은 경험은 많아도 이렇게 뜨거운 음식에 대어본 건 처음이라, 아픔에 울음이 터져버렸다. 엄마는 나를 달래기는커녕 더 혼내셨다. “잘 잡고 조심하라고 했잖아!”라고 소리 지르셨다. 서러워서 더 크게 울었다.
나는 계속 울고 있는 동안 엄마랑 아빠는 소리를 지르시면서 싸우셨다. 이게 누구 잘못인지. 번데기를 사 온 사람 잘못인지. 갑자기 운전 시작한 사람의 잘못인지. 어떻게 흔들리는 차에서 번데기 먹을 생각을 하냐고. 울다 보니 어느새 약국에 도착해 있었다. 약국에서 화상이란 진단을 받고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별생각을 안 하고 다시 외할아버지네 집으로 향했다. 외할아버지네 집에서 뛰어놀고 있었는데 종아리가 후끈후끈하는 거다. 내려다보니 종아리가 두 배 크기였다. 걱정되어 엄마한테 보여드렸다.
바지를 아래서부터 돌돌 걷어 올렸다. 종아리에 화상은 물집이 되어 물 풍선같이 부풀어 올랐던 거다. 엄마랑 아빠는 화상 경험이 없어 약국에서 받은 치료가 돌팔이 치료였던 건지 전혀 모르셨다. 얼음찜질을 받아야 하는 대신 붕대로 감겨있던 내 화상. 다시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에 갔을 때는 2도/3도 화상이라 흉터가 남을 거라고 물 안 닿게 조심하고 최대한 걷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이 물집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한동안 집에만 슬프게 있어야 했던 나의 유치원 방학.
그 후로 나는 번데기를 먹은 적이 없다. 번데기의 실체도 알아버렸고 나의 물 풍선 물집은 곧 터져서 곰 발바닥 모양 흉터로 남아있다. 그리고 번데기는 우리 집에서 금지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