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
아빠는 음식에 진심이다. 얼마나 진심이냐면 나를 곱창 맛집을 아빠 회사 시간 점심시간에 데리고 가시겠다고, 만 10살짜리를 곱창집에 홀로 줄 서게 하신 본인이시다. 내가 한국 놀러 갈 때마다 여의도 직장인 점심 러시아워를 피하고자 내가 10시 반에 맛집에 가서 줄 선다. 아빠가 오픈 시간에 딱 맞춰 식사하고 들어가실 수 있게. 효율적으로 한 끼라도 맛없는 음식을 먹지 않는 건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아빠는 딸이 고기를 좋아하는 게 신기하시면서 부담스러우셨을 거다. 아내는 고기보단 생선이랑 과일을 좋아하는데, 아내 몸에서 나온 한 살짜리 딸은 편식 없이 먹는 게 한우밖에 없으니 얼마나 머리에 땀이 나셨을지, 어깨에 얼마나 큰 무게가 느끼셨을지? 내가 나 자신을 먹여 살릴 나이가 되니 아빠의 부담감을 뼈저리게 느낀다. 어린 나는 다행히 한우에서 삼겹살로, 닭고기로 고기 세계를 넓혀갔다. 내 육식 세계가 넓어지면서 아빠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을까? 어린 딸이 껍데기와 곱창을 좋아한다는 걸 아셨을 때 아빠의 심경은 어떠셨을까? 아내는 왜 그런 걸 먹냐고 하지만, 없어서 못 먹는 어린 딸과 자기 최애 안줏거리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게는 곱창과 소주 한 잔인데 아빠는 내가 어릴 때 가족끼리 외식이나 식사할 때 절대 술 한 모금 안 드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자기 조절이었다. 아빠는 술 한 모금만 하셔도 바로 새빨개지신다. 도수 따지지 않고 그 한 모금에 빛나는 사과로 변하시는데 취하시지도 않았는데 주정뱅이와 같이 보이는 그의 간 기능은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다. 안타깝게 나도 술 마시면 꽤 빨개진다.
나는 술을 아빠한테서 배우지 않았다. 한편으로 아빠한테 배웠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빠랑 더 사이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20살이 넘은 어른인데 엄마가 워낙 술은 절대 안 된다 해서 아빠도 자연스레 못 마시게 하셨다. 그래도 부모님은 언젠가 서서히 알게 되셨다. 딸이 나름 술고래라는 거. 딸도 알고 있다. 아빠가 나름 술고래라는 거.
2018년 찰싹찰싹 칼바람이 뺨을 때리던 12월 말의 밤, 나는 아빠랑 장호 왕곱창 앞에서 만났다. 15년 전과 다르게 아빠가 먼저 대기하고 계셨다. 이곳을 처음으로 가족 외 다른 사람과 함께 들리게 되었다. 그건 구 남친, 구 약혼자, 현 남편이다. 남자친구와 결혼 준비 이유로 한국에 들어와 있었고 우리는 모둠 곱창(곱창, 대창, 막창, 양) 4인분을 시켰다. 당연히 그걸로 주문이 끝날 줄 알았는데 아빠가 “사장님! 소주 한 병이요.”라고 해서 내 귀를 의심했다.
극적으로 아빠와 첫 소주를 마시게 된 이날은 있지 못할 날이다. 아빠도 딸과 이곳을 처음 왔을 때부터 언젠가 소주 한 잔을 나누며 곱창을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하셨을까? 참이슬 한 병을 곱창 한 끼를 먹으며 나눠마셨다. 나와 아빠는 소주 첫 잔에 2002년 위 더 레드 붉은 악마 셔츠처럼 빨개졌다. 생 곱창과 같은 빛을 품어내는 우리의 이방인은 새하얀 얼굴을 저녁 내내 유지했다.
곱창, 대창, 막창, 양 하나하나 판에 올려 기름을 뿜어내며 야들야들 노릇노릇하게 잘 익고 있었다. 김치 한 젓가락, 콩나물 한입을 먹으니 고기가 다 익었다. 소기름으로 둘러싼 곱창 한 점과 소주 한 잔으로 목을 깔끔히 정화해 주는 완벽함. 위장에 그 둘이 만나 따뜻함을 이루는 우리 가족의 식사였다. 다른 가족에겐 일상 같은 식사 한 끼였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식당 앞 “2018년 12월 김 씨 부녀 첫 소주 나눔” 기념비를 세우고 싶을 정도로 특별한 날이었다.
이후로 아빠랑 술에 대한 숨김은 덜해졌다. 한국 갈 때마다 편의점에서 처음 본 맥주나 하이볼 사놓고 못 마신 것들을 아빠에게 선사해 드리고 간다. 남이랑 막걸리 수업 듣고 나서 막걸리 거르는 걸 할머니가 아빠랑 같이했다. 아빠랑 막걸리도 마시고 누구 얼굴이 더 빨간지 다투기도 한다. 소주 한 병으로 더 가까워진 우리 부녀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