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뿌우움은 다암배 연기 처어럼
97년생 이번 연도를 통해 나이다리를 한 다리 한 다리 넘어서 서른이라는 나이에 안착했다. 어릴 적부터 어릴 적이라 해봐야 고등학생 시절 희망만을 가진 채 살았던, 돌도 씹어먹을 거라는 나이임에 틀림없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옛 가수들의 노래에 관심이 많았고 그중 김광석 님의 노래를 많이 접해 들었다. 그중 노래방에만 가면 한껏 감성을 부여잡고는 툭 내뱉는 첫 소절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뿌우움은 다암배 연기 처어럼' 내뿜어대는 담배연기와 담배연기랑 같이 흘러가는 하루의 뜻이나 알고 불렀을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해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불러댔다.
돌을 씹어먹기에는 부담이 되었던 20대에도 여전히 <서른 즈음에>는 내 애창곡 중 하나였다. 여전히 노래 속 가사들을 하나하나 뜯어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나마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한 소절만큼은 공감할 수 있는 나이였다. 나의 첫 번째 연애는 20살이 되던 해 성사가 되었고 나는 그 아이와 평생을 함께 할 것만 같았을 정도로 설레었고 사랑이라는 놈이 머문다면 그 아이가 사랑이었고 아이와 평생 머물 줄 알았다. 그 생각은 오래 간직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내 곁을 떠났다. 그 애는 헤어짐을 요구했고 나는 붙잡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이 아닌 사랑이라는 주제를 정한 놀이 아니었을까, 진짜 사랑했더라면 울고 불고 헤어질 수 없다며 구차한 모습으로라도 잡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아이와 이별을 하고 1년 동안을 잊지 못했다. 성인이라는 합법적 핑계로 알코올을 빌려 연락도 해봤다. 차라리 붙잡을걸 더 구차한 모습만 보이고 말았다.
우연하게도 1년 뒤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태권도장에서 사범 일을 하고 있었고 그 아이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태권도장에 다시 오게 되었다. 우리는 태권도장에서 만난 인연이었고 태권도장에서 새롭게 다시 만났다. 막말로 쌩깔 수는 없는 마당이었다. 어쩌다 우리는 다시 친해졌고 다시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며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게 될 무렵 우리는 두 번째 이별을 겪었다. 그 애가 술에 취한 채 내게 전화를 걸었고 이별을 후회했다는 등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애는 마지막에 한 달 뒤 호주로 유학을 하러 떠났다.
내 인생에 가장 슬펐던 이별은 15살에 키운 강아지가 27살에 세상을 떠났을 때다. 내 갓난아기 시절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가장 서럽게 울었고 가장 한없이 울었고 제일 오랜 시간 기억하고 있는 이별임에는 틀림없었다. 당시 내 곁을 지켜주던 여자친구의 품에 안겨 흐느끼고 흐느낀 채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해야만 했다. 20살의 여자친구가 세 번째 슬픈 이별이라면 두 번째 슬픈 이별은 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였다. 췌장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자주는 못 갔지만 시간 내서 옛날 스타렉스를 몰던 아빠 차로 전주에서 서울까지 병문안을 자주 간 적이 있었다.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어릴 적 할머니 밥상을 먹으면서 항상 잔소리와 예쁨을 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다 내가 군인이던 때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믿기지 않았고 발인 때 할머니의 친자식들이 소리 내어 울고 있을 때 가장 느껴본 적 없는 슬픔과 아픔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감히 첫 번째 두 번째로 나눌 수 없을 정도의 큰 슬픈 이별식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내게는 떠나지 않는 머물러만 있을 줄 알았던 사랑들이었다.
서른 즈음이 되어버린 날에 다시금 '서른 즈음에'를 재생 목록에서 재생했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멀어져 가는 하루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소절까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 6살부터 10대를 지나 20대를 지나 30에 발을 들었을 때 내 청춘들은 머물러 있지 않았던 것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막연했던 꿈과 희망에 기대될 대로 되지 않을까라는 무식한 10대의 자만감에 빠져 이 정도는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에 궁금증을 가지던 20대 그리고 이제는 과연 이대로도 괜찮을까? 하는 의심을 품기 시작한 30이다.
29년의 청춘을 30이 오기까지의 과정에 모두 바치고 흘렀다. 허허 옛날에는 서른이면 장가도 가고 애도 낳아야 할 나이라는데 존경하는 아빠와 다른 어른들은 어째 이것들을 이뤘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열심히 죽어라 부딪혀도 옛날보다 지금의 벽이 더 두꺼운 건지 벽이 그새 더 생긴 건지 벽만 부수느라 바쁜 나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젊으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애매하고 '젊으니까 뭐든 다 해봐'라는 도전적인 말을 듣기도 애매해져버리고 말았다. 아직 서른의 초입이니까 어느 정도는 관대하기로 했다. 대신 20대의 나보다 멘탈과 체력은 청춘에 당한 시련에 의해서 더 단단해졌음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다 깨부수기로 했다 내 앞의 무수한 벽들을.
현재 내게는 4년을 같이하고 있는 동반자가 같이하고 있다. 동반자와 4년 동안 계절을 순환했고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 둘 떠나보내는 건지 떠나온 건지 모를 이별을 함께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이별이 아닌 사랑을 찾아가느라 정신없지만 가장 마음이 아플 이별은 동반자와 이별을 할 때지 않을까 싶은 서른 즈음이다.
아직은 이십 즈음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떠밀려 떠나온 청춘이지만 서른 즈음은 떠나보내기도 떠나기도 싫게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쏟아붓고 싶다. 마흔 즈음에는 어떤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떠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마냥 서른 즈음만 떠나보낸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냥 30이라는 숫자만 떠나보내고 싶다. 아마 마흔 즈음에는 많이 웃고 조금 울고 덜 아프고 더 행복할 지금의 청춘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