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다시 만나는 날, 그땐 내가 먼저 달려갈게'
2009년 집에 새로운 가족이 들어섰다. 남자아이였고 자기와 같은 친구들을 무서워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좋아했던. 새로운 가족이 되기전에는 아빠는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지만 막상 가족이 되어보니 내심 귀여웠는지 내가 안 볼 때 귀여워해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이름은 한창을 고민하다 뜨거운 여름에 가족이 된 기념으로 '태양'으로 지었다.
꼬리는 짧고 뭉툭했으며 귀는 쫑긋했고, 내 발만한 크기를 가졌고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빛을 지닌 내 태양이는 너무 조그마해서 잘 때 혹여나 내가 몸으로 짓누르진 않을까 내가 발로 치진 않을까 걱정돼서 잠도 많이 설쳤다. 아직은 배변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때,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던 중 물컹한 내 발의 촉감에서 풍기는 태양이의 똥내는 잠에서 덜 깬 중학생의 분노를 일렀다.
뭐가 그렇게도 무서웠는지, 무섭기만 하면 내 품에 쏙 안겨서 바들바들 떨던 작은 몸뚱아리가 어느샌가 내 종아리 반 정도로 훌쩍 크자 무엇이든 물고, 물어뜯고 아무 데나 쉬도 싸더니 사고뭉치가 되어가던 태양이는 다른 종들과 달리 유독 살이 더 많이 찐 포근한 사고뚱땡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혼나더니 식욕이 많이 돋았나 쉴 새 없이 먹던 우리 태양이는 평균 2~3킬로 나가야 할 녀석이 무려 5킬로나 나가기에 2배의 차이를 보여주는 우리 태양이는 뚱땡이가 맞다. (우리 태양이 종은 '귀엽고 작았어야 할 요크셔테리어'이다.)
아빠는 일 나가고 누나랑 나는 학교를 다녔으니 아침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늘 혼자 집을 지켰어야 할 태양이는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몰라도 늘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태양이가 만들어 놓은 흔적들을 치우느라 바빴고, 치우면서 사고를 쳐놓은 태양이는 혼나느라 바빴다. 그래도 뭐가 그래 좋은지 늘 내 얼굴이 닳도록 핥아댔고 얼마나 핥아댔으면 촉촉했던 혀의 촉감이 건조해져서 까칠할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선 태양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더 적어지기 시작했다. 점심쯤 나가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면 졸린 눈을 껌벅인 채 마중 나오는 태양이는 '형 왔는가?' 하듯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를 졸졸졸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자정이 되어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탓에 태양이와 밖에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지만 아무 상관없다는 듯 항상 자기 전 내 얼굴을 핥아대더니 내 이불에 들어와 한껏 웅크린 채 같이 잠을 청했다.
군대를 가야 할 때는 태양이와의 특별한 시간들을 더 많이 만들었다. 아침 공기, 오후 공기, 저녁 공기, 새벽 공기 시간 상관없이 태양이에게 더 많은 바깥공기와 풀의 채취를 선물해 줬고 태양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헥헥거리면서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몇 걸음 종종종 가다 뒤를 휙 돌아보곤 했다. 입대했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건 태양이었다. 내 기분이 어떻든 항상 내 곁에서 잠들었고 내 얼굴을 핥아주던 태양이는 내가 며칠을 들어오지 않는데 나를 그리워나 할까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기에 더욱이 태양이가 보고 싶었다.
25살이 되어갈 즈음 태양이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귀에 심한 염증이 생겼고 굉장한 악취와 심한 간지럼증을 호소하듯 매일 귀를 긁어대고 바닥에 비벼대며 진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 정도만 아팠으면 좋았을 것을 항상 고질병이었던 발의 상태도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급하게 동물병원에 들러 귀 상태를 체크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커질 대로 커진 염증에 귀의 모든 기관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에 태양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얼마나 아팠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태양이의 외모 자랑이었던 쫑긋한 양쪽 귀는 한쪽이 힘을 쓰지 못해 저물어 있었다. 그래도 이 자식이 퇴원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한쪽만 세운 귀로 날 보고 헥헥 웃으며 얼굴을 실컷 핥아댔다. '이 자식은 수술할 때도 내 얼굴 핥을 생각만 하고 있었나?'
점차 회복하던 태양이는 26살 초반에 걷는 것조차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었던 탓과 나이에 따라오는 고질병의 악화가 겹쳐온 것이었다. 같이 산책을 나가면 종종종 걷다 뒤를 돌아보던 애기는 한 발 한 발 뒤에서 같이 가자는 식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때면 태양이를 안은 채 풀의 채취만은 꼭 선물해 주고서는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샌가 밥도 잘 먹지 못해 먹여주어야 겨우 한 입 먹고서는 잠만 자고, 제대로 걷지 못해 한쪽 자리에만 머문 채 앉았다 일어났다만 반복하던 우리 뚱땡이는 점점 야위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힘을 쥐어짜서 내 잠자리까지는 걸어오고 나서야 잠에 들었던 꼭 내 곁에서 잠에 들었던 애기였는데 26살 초여름에는 내 곁에 오기도 힘든지 안간힘만 쓰고 금방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직접 들어 옮겨놓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드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 하루도 무사히 넘어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나까지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어느새 뜨거운 7월이 다가왔고 나는 제주도로 잠시 떠났다. 떠나기 전 날 밤까지 태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태양이는 힘이 없는 모습이었고 내 손을 간신히 핥아대고 있었다. '제발 갔다 올 때까지만..' 내가 떠나기 직전에 우리 태양이는 웬일로 직접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은 채 나를 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진 채 그대로 나는 집 밖을 나섰다.
갔다 돌아왔을 때는 태양이가 내 얼굴을 반갑게 핥아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집 밖을 나선 지 첫날 저녁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던 저녁에 걸려온 통화의 목소리에는 태양이가 죽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는 태양이가 유독 편안히 누워있었고 기저귀에는 태양이의 설사가 묻어있었다 했다. 그리고 태양이가 숨을 쉬지 않았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그 날밤 나는 예감은 했지만 내가 없을 때. 내 마지막 똘똘한 태양이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의 태양이의 모습들이 스쳤고 태양이에게 무엇이든지 더 해주지 못해서 후회속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내 양 볼에 눈물이 계속 흐르기 시작했고 옷은 눈물에 범벅이 되어 계속해서 젖어가고 있었다.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도 미안했다. 마지막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나도 아빠도 그 누구도 보지 못해서, 알지도 못한 채 태양이는 혼자 그렇게 곁을 떠나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비밀번호를 누르기가 겁이 났다. 마치 태양이가 신발장에서 내가 신발 벗는 것을 방해할까 봐, 신발 벗고 있는 와중에도 내 얼굴을 핥아댈까 봐 그런데 그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늘 있을 것만 같았던 자리에 태양이는 이제 없었고 태양이의 흔적만이 놓여 있었다. 언젠가는 치워야지 치워야지 하던 태양이의 집은 여전히 우리 집 그 자리에 놓여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집을 보면 '어차피 태양이가 저기 안에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었는데, 태양이 영혼이 깃들어있진 않겠구나' 한다. '언젠가는 치워야지'
가끔 핸드폰 사진첩이나 SNS에 여전히 남아있는 태양이를 보게 된다. 잘 생겼고 예뻤고 귀여웠던. 여전히 태양이의 촉촉했다가 거칠어진 혀의 촉감이 기억이 나고 여전히 그립다. 언젠가 다시 만나는 그날에는 내가 먼저 태양이에게 힘껏 달려가 안아주지 않을까 싶다.
김나영 - 봄 내음보다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