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지윤 Feb 09.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데는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Notting Hill. 1999


Anna와 William이 동생의 생일 저녁자리를 마치고 함께 걷다 private 공원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의 메모리얼 벤치가 보인다.


ㅡFor June who loved this garden

from Joseph always sat beside herㅡ


벤치에 적힌 메시지를 보며 그녀가 말한다.

"Some people do spend whole life together"


그녀는 그 벤치에 앉는다.

서서히 뒷걸음질 치며 멀어지는 윌리엄에게 그녀가 말한다.


"Come and sit with me"


그는 뒷걸음질 치던 발을 돌려 그 벤치에 함께 앉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윌리엄의 다리를 베고 안나가 벤치 위에 누워있다.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그때 이미 예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 스타인 Anna와 노팅힐의 서점 주인 William


그리고 초반에 윌리엄이 얼떨결에 안나의 코스타들과 의도치 않은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그때 아역 배우에게 이번이 처음 영화인지를 묻는다.

꼬마 배우는 이번에 22번째 영화라고 대답한다.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다)

역시나 얼떨결에 그럼 그 22번의 영화 중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인지 의미 없이 묻는다.


꼬마가 레오나르도랑 일 했을 때라고 대답한다.


윌리엄이,

Da Vinch?! 하고 진심으로 물으면

꼬마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DiCaprio라고 대답한다.


윌리엄은 정말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웃으며 course,

라고 중얼거리고는 또 한 번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진다.


진지한 얼굴로,

"And is he your favorite Italian director?!"


영화 자체가 병맛이지만 (난 브리티시 영화의 병맛스러움을 좋아한다) 이 장면에서 윌리엄은 정말 제대로 병맛이다.


이런 병맛인 영화의 병맛인 장면, 병맛 캐릭터를 보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가 사랑에 빠지는 Anna는 영화배우이다.

그가 얼떨결에 하게 된 엉뚱한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나 관심이 없는 남자이다.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에서 다빈치를, 그것도 영화배우와의 인터뷰에서 유추하는 남자는 아무리 보아도 영화 혹은 영화배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나는 오랜 세월을 생각해왔었다.


서로의 관심사와 사상과 이상 혹은 취향이 비슷한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는 소울메이트를 만났다고 한다.


특히 연인 혹은 배우자를 만날 때 그런 소울메이트를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건 아니지만 서로가 비슷하고 서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혼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윌리엄의 이 병맛 같은 대화를 보면서 문득 오랜 세월 아니 거의 평생을 옳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순간 허물어지면서 이면이 보였다.


나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없고 나를 잘 모르고 나와 취향도 사는 곳도 가치관도 일도 인생 전반이 다른 어느 남자와 (혹은 여자와) 빠지게 되는 사랑에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데 왜 굳이 취향과 가치관과 영혼이 비슷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배우자에게서 편리를 따지는 영악함이었던 것은 아닐까?!


서로 너무 다른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게 왠지 더 찐 같은게 아닐까?! 그동안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은 무엇일까?!


스물두 편이나 영화에 나왔던 아역배우를 알아보지 못하고 레오나르 도하면 다빈치를 떠올리며 디카프리오가 배우인지 감독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남자가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다.


역시 화려하고 도도한 아메리칸 여배우가 병맛 넘치는 영국에 와 역시나 되도않은 책방에 처박힌, ooopsy daisy를 외치는 루저스러운 이혼남과 사랑에 빠진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데는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 그런 망해가는 책방 주인의 얼굴이 휴 그랜트가 아니었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하는 의구심은 노코멘트.


어쨌거나 진짜 모르겠다.


남자와 여자.


우리의 영혼이 꼭 같아야 할 필요가 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는 게 찐 사랑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져드는 남과 여




매거진의 이전글 옷차림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