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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May 25. 2022

9시 54분. 매우 시적이고 사적인 시간

달과 별과 잠과 꿈과 책과 글과 자신만의 시가 있는 고지서와 고단의 세계



밤, 9시 54분. 매우 시적이고 사적인 시간.


뒤돌아 보았다.

우리가 여태 앉아 먹고 마시며 생의 어느 한 시절을 공유한 자리를. 거기 우리의 온기가 아직 유령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흩어진 최신의 과거에 대하여 생각했다. 우리가 부스려놓은 이야기들이 거기 어지러졌다 추억이 된다. 증발된 시간 응축된 기억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삶의 잔해가 유령처럼 그 공적인 공간에 아직 우리로 남아있었다. 빈 테이블 위는 쓸쓸해 보였다. 우리가 나눠 먹던 음식과 과음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워내지 못한 술잔이 애처롭게 우리를 붙잡았다. 열기와 기와 기가 사라진 자리. 9시 54분.  공적인 자리에서 사라져 사적인 시간으로 돌아가는 시간. 매우 시적이고 사적인 시간.


밖을 나가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이제 서로가 돌아가야 할 각자의 사적인 시간을 위로했다. 내일이면 또다시 만나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같은 고민을 이야기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 우리가 지금은 헤어저 각자의 내밀한 공간으로 몸을 감춘다. 달과 별과 잠과 꿈과 책과 글과 자신만의 시가 있는 세계로.

그 테이블 위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우리의 공기가 얼싸안고 위로하는 우리를 내다봤다. 안녕, 그들은 공적인 공간에 남아 우리에게 그런 안녕을 말했다. 그 유령 같은 온기가 말라 비틀어질 때쯤, 그러면 그것은 마음에서 빼내지 못할 단단한 추억이 되겠지.


누구에게나 시는 존재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혹은 깊이 사랑하는 시간에 우리는 모두 시적으로 아름답고 시적으로 음울하고 시적으로 슬펐다.


운명의 어떤 면이 일순 우리를 이 한 테이블에 앉혀 밥을 먹게 했나. 그렇게 서로를 아는 사이로 만들어 버렸나. 나는 운명의 그런 놀래키는 면이 좋았다.

내 생에 들어와 버린 사람과 결코 들어가지 못한 사람. 내가 들어가 버린 세계와 결코 들어가지 못할 세계 따위가 우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관계를 나눠냈다.

운명은 무슨 이유로 옆 테이블의 여자들과 서빙을 하던 웨이터와 늦은 밤 밖을 뛰는 남자와 나를 엮어내지 않나. 왜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못하고 끝내 남이 되어버리나. 그리고 끝내 함께 밥을 먹던 우리는 우리로 만들어 버렸나.

나는 늘 그런 것이 신기했다. 우리가 우리가 되는 일. 끝내 엮이지 못한 그들과는 남이 되는 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서로가 멀리서도 갑자기 인연이 되어 우리가 되거나 기차나 비행기 안 어깨를 오래 붙이고 앉았다가도 끝내 인사 한번 나누지 못해 우리가 되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


늘 그렇지만 그런 일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다시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게 되는 일. 그 영혼을 보아버리는 일. (내 생에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 여자에게로 다가가 말을 건네고 물을쏟아 옷을 적신다. 그러고는 당신은 사적인 시간에 무엇을 하는 여자인지를 묻는다. 여자는 글을 쓰지?! 글을 써,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현듯 친구가 된다. 우리가 된다.

나는 밥을 먹다 그런 상상을 했다. 우리가 우리가 되는 일에 관하여.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무리를 이탈해 옆 테이블의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지 않을 것이고 옷에 물을 쏟지도 않을 것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묻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절대로 글을 쓴다고 말할 리가 없어 우리는 지척에 앉아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시고도 끝내 남이 된다.

나는 여기 우리 안으로 더더욱 동그랗게 몸과 마음을 말린다.


도시의 삶은 가까운 것에게 더 달라붙게 하고 내 편의 것에 더 오므라 들게 했다. 도시의 삶은 마음이 먼 것으로부터 한 뼘이라도 더 떨어지기 위해서라도 가가 운 것에 더 깊이 더 가까이 들러붙었다. 그것은 반대로 먼 것들애 대한 예의 이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서로를 안다. 다시는 모르는 사람이 될 수 없어 우리가 된 사람들. 옆 테이블 여자들과 서빙을 하던 웨이터와 뛰는 남자와는 영원히 발음 할 수 없는 관계, 우리.

아니 모르지, 그들과도 언제 어떤 운명으로 우리가 될지 모르지 운명은 그런 거니까. 늘 우리를 놀래키니까.


9시 54분. 매우 시적이고 사적인 시간안으로, 우리는 너와 나와 걔가 되어 흩어진다. 각자의 시간과 공간으로. 은밀하고 내밀하고 농밀한 곳으로 그렇게 우리가 너와 나와 걔로 부서져 각자의 영역 안으로 사라지는 시간.


애인과 싸움이 있고 먹이를 줘야 하는 고양이가 있고 밀린 고지서가 있고 접어야 할 빨래가 있고 읽다 펼쳐 놓은 소설이 있는 곳으로. 내가 모르는 완벽한 타인이 되어 각자의 시간을 살러 우리는 너와 나와 걔가 되어 부서지고 흩어진다. 그러면 그들은 여자들이 되고 웨이터가 되고 뛰는 남자가 되고만다. 테이블을 벗어나 비스킷처럼 부서진 우리는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 그렇게 남이 된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고 몸을 씻고 책을 보다가 글을 쓴다. 우리가 방금 전 우리였던 그 테이블 위 여자와 남자들은 지금 나를 모른다. 옷을 벗고 몸을 씻고 책을 보다 글을 쓰는 나를.


사방으로 흩어진 우리의 조각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남자 친구를 말하다 울었던 애와 먹이를 주는 고양이를 키우는 애, 엄마와의 갈등을 안은 애와 시련을 한 애 그리고 그들이 받은 각자의 고지서들과 삶의 고단 등을. 그들의 사적이고 시적인 시간들을. 그들이 보지 못한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을. 내일이면 또다시 각자의 갈등과 고지서와 고단 등을 거기 벗놓고 서로 앞에 다가와 어제체 다시 우리가 될 너와 나와 걔의 인연을.


우리.

옆 테이블 여자들과 서빙을 하던 웨이터와 밖을 뛰던 남자와는 영원히 될 수 없는 우리. 그들이 갈등과 고지서와 고단 등의 사적인 시간을 아무리 벗어나도 나와는 될 수 없는 관계, 우리.






며칠 후 지나친 한낮의 레스토랑 안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 위를 들여다 봤다. 거기 아직 미처 치워지지 못한 우리의 형상이 흐리고 어렴풋 하게 남아 있었다. 증발해 가는 유령들은 우리 안으로 말라비틀어져가며 단단한 추억으로 변질 되어갔다. 나는 옆 테이블의 여자들과 서빙을 하던 웨이터와 밖을 뛰던 남자를 떠올렸다. 창문 속 유령처럼 앉아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던 우리들은 아직도 내 세계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그들은 끝내 내 삶에 들어 오지 못하는구나. 조금 기쁘고 조금 서글펐다. 나에게 그 여자들과 웨이터와 남자는 아무리 고지서와 고단을 밀치고 밖을 나와도 영원히 거기, 시적이고 사적인 시간만으로 존재했다.


나는 영원히 모를 그들의 고지서와 고단의 세계를 그려본다. 저 창가 속 테이블 위에는 결코 없는 세계를 그들의 농밀한 세계를. 내가 결코 들어가 볼 수 없는 세계를.

그러다 치워진 테이블 위에 남은 우리의 흐리고 어렴풋한 공적인 시간의 잔해를 훔쳐 그걸 들고 나는 우리라는 관계안으로 더 깊숙히 말려 들어 갔다.


밤, 거기서 함께 웃고 울던 우리9시 54분 테이블을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달과 별과 잠과 꿈과 책과 글과 자신만의 시가 있고 고지서와 고단과 눈물이 있는 매우 시적이고 사적인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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