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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Jun 06. 2020

아침 열 시 삼십칠 분, 내 생에 가장 젊은 순간

고장 난 것 (닉 케이브의 멈춘 시계)

느린 인간을 창조한 신에 대한 오마주


고장 난 것의 가치


아무리 오분을 빠르게 돌려놓아도 굳이 삼분을 느리게 가던 시계.

나 역시 구태여 팔 분을 빠르게 돌리지 않는 이유는 나는 시계를 99%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어떤 시계도 십 초의 오차 없이(맞추는 시점 기준) 맞추어 놓기 때문이다.

(신뢰하지 않으므로 정확하게 맞춘다는 뜻이 아니라 신뢰하지 않으므로 기준이라도 맞춰두자는 생각이다)


그러던 시계가 하필 오늘 아침 멈춰버렸다.

사실 시계, 특히 저 시계는 더더욱 신뢰하지 않으므로 저 시계를 쳐다보는 일은 시간을 확인하려는 의도보다는 오늘은 시간이 현재와 더 멀어지지는 않았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고 그 염려는 꼭 지금의 삼분 전, 그러니까 맞추어놓은 시간과 정확하게 팔 분을 느리갈뿐 더 이상의 부정직한 행위를 하지 않는데 그쳤으나 오늘은 시간이 무려 십삼분 가량을 느리게 따라오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따라오고 있기는 하나 하며 오분 뒤 다시 시계를 보았을 때는 현재와 십팔분 멀어졌을 뿐이었다. 멈춘 것이다.


오전 열시 삼십칠분 이었다.


어제 맨하탄에서 녹음이 있어 늦은 밤 오랜만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친한 언니와 밤을 보낸 후였다.

우리는 서로 늦잠을 잤다며 망연히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때, 꾸역꾸역 느리게 가던 시계가 기어이 멈춰버린 그때. 역시나 구태여 오분만을 이르게 맞춰놓던 내 눈에 비친 그 바늘은 마치 어제도 오늘도 지금도 그리고 내일도 아마도 영원히 거기 그대로 있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십삼분 전 혹은 십팔분 전 열시 삼십칠분 쯤에 우리는 어디에 무엇을 하며 머물렀나, 떠올려 보았다. 과거가 되어버린 십여분 전을 반듯하게 되새겨 보려는데 불과 십여분 전의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한겨울의 입김보다도 형태가 모호했다. 시계는 그 시간에 멈춰 있는데 그 시간은 과거가 되었다니. 그리고 불과 몇 분 전의 신선한 과거조차 과거는 흐릿한 것이라니. 시간과 분리되어 홀로 미래에 떠밀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기능을 상실한 멈춰진 시계보다도 한 인간의 과거는 가여웠다.


그날 마침 아침식사 전 혼자 중얼 대던 언니의 기도에서 언니는 지금이 우리 생에 가장 젊은 순간, 이란 문장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과거가 되어버린 어젯밤, 우리는 침대에 나란하게 누워서는 이십 대를 다 보낸 소감과 서른에 반드시 치루어야 하는 아픔과 좌절에 관한 시행착오와 이미 서른을 넘긴,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언니의 시간과 아직 우리가 가보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관통하게 될 우리의 마흔과 쉰과 그 이후의 시간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선택이란 게 주어지지 않은 사정으로 우리는 누구나 이십대의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선택권 없이 주어진 나의 이십대를 '나는 더 열심히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로 일축했다. 열심히 살고 싶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혹은 열심히 살 걸 그랬으나 그러지 못했다와는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

'나는 열심히 살 수 있었지만, 그래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객체 없는 미안한 마음이 허공에 떠돌았다.


이십대, 나는 너무 많은 재능을 받고도 노력을 선택하지 않은 함정에 빠져 살았다. 어찌 되었든 선택하지 않은 이십대를 지나야 만 했고 이제는 소감을 말할 때였다. 가장 젊은 매 순간을 한 페이지씩 과거로 넘겨 서른이 될 미래의 시간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시월 구일 열 시 삼십칠 분은 삼십팔 분이 되는 순간 과거로 사라졌으나 벽에 걸린 시계는 삼십칠 분에도 오십삼 분에도 지금도 내일도 영원히 삼십칠 분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어 서른으로 나아가야 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시월 구일 아침 열 시 삼십칠 분.


노른자가 툭 터지던 달걀에 베이컨과 치즈를 얹어먹으며 보낸 그 사소하고 평이한 시간 언저리 어디쯤.

예술가들이 실은 순수하다는 말을 할 때쯤인가? 아니면 맨하탄으로 급하게 레슨을 가야만 하는 아쉬움을 이야기할 때 그때쯤, 혹은 그사이 잠깐의 침묵과 식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그 공백을 메울 때쯤이었을까? 비적비적 출근 준비를 하거나 예술 이야기를 하거나 그저 무심히 아침을 먹던 그 찰나 중 한 시점에 우리 생에 가장 젊은 아침 열심 삼십칠 분이 소멸됐다.


내생에 가장 젊었던 순간.


그렇게 무심하고 모호하게 흘러버린 과거가 쌓여 나는 20대를 채웠고 30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스스로 멈춰버린 시계보다 가엽게 흘러가는 우리들의 20대를 붙잡을 도리가 없어 나는 서른이 된다.




이것은 내가 서른을 한해 앞두고 썼던 어느 날의 일기 중 한 페이지이다.

아직 내 나이의 앞자리기 2에 머무르던 어느 날 나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여태 처박아 두던 일기를 이제서야 내놓는다.

나는 왜 이렇게 모든게 느린가 모르겠다. 구태여 3분을 느리게 가던 시계는 어쩌면 나라는 느리고 기이한 인간을 창조한 신에 대한 오마주였는지도 모르겠다.







The Armory Show 2019 New York



Nick Cave, Hustle Coat 2017.

낡고 고장 난 싸구려 시계와 주얼리들.

고장 나고 낡은, 오래된 물건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아름답고 새로운 작품으로 가치 있게 재탄생된다.

그는 어릴 적 싸고 쓸모없는 수집품을 자랑스럽게 장식해두던 조부모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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