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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Aug 29. 2020

나는 건빵 안의 별사탕이다

기능을 상실한 것 (뒤샹의 자전거 바퀴)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 New York City


기능을 상실한 후에 오는 낭만


1.

펜데믹으로 집에만 있는 동안 아마존으로 헤어컷 세트를 주문했다.

내 머리카락 정도는 내가 더 잘 자를 수 있을 것 같아서 집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마음먹고 주문한 헤어컷 세트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살기로 했다.

헤어스타일에 너무 무감한 여자는 매력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머리(뇌) 보다 머리(헤어스타일)를 더 중요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뇌를 잘 관리하는 여자가 헤어스타일까지 잘 관리를 하면 금상첨화일 텐데 대체로 둘 중 하나는 빠지거나 둘 다 빠지거나 한다.


난 아마도 둘 다 빠지는게 아닐까, 또 걱정한다.


겉모습보다 내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나는 관계가 힘들다.

타인의 헤어 컬러를 부러워는 해도 뇌구조를 칭찬해 주는 이가 드물다.

그럴 때 나는 설곳이 없는 것 같다.

건빵 안의 별사탕처럼 아주 생뚱맞은 인간이 된 것 같아 홀로 이채롭다.


샤넬 가방에 들어있는 립스틱의 색보다 에코백에 들어있는 소설의 제목이 궁금하면 인기가 없다.


나는 인기도 없고 헤어스타일도 엉망인데 설상가상 지적이지도 않은 뇌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싶어 조바심이 난다.


텅 빈 뇌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쓰려하는데 펜데믹과 아마존이 그따위 생각 말고 뇌나 관리해라!라고 충고라도 하는 것 같다.


그까짓 헤어스타일 따위.


결국 오지 않은 헤어컷 세트는 나와 인연이 아닌 것으로 알고 나는 머리맡에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머리(헤어 스타일) 보다 머리(뇌)를 돌보기로 한것이다.


겉모습 말고 내면의 심미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건빵에 들어있는 별사탕 정도의 확률이라도 존재하리라 믿으며. 그리고 우리가 만나면 '당신도 별사탕 이군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나는 결국 어쩔 수가 없다.

퍽퍽한 건빵 안의 달달한 별사탕이 되는 수 밖에는.


나는 그녀의 립스틱 넘버보다 서가의 책 목록이 더 궁금한 이채로운 별사탕이다.





2.

어느 날 스튜디오 책상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가위를 발견했다.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실기실은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무슨 이유로 너는 거기 남겨진갈까. 가위는 기능을 상실한 후였다. 물감이 말라붙어 펴지지도 오므려지지도 않는 그 상태 그대로 버려졌다.

그러나 그 가위는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다웠다. 날이선 고가의 완벽히 기능을 해 내는 헤어디자이너의 가위보다 유니크하고 예뻤다.


기능을 상실했지만, 기능을 상실했으므로 아름다움만 남은 것이다.

쓸모가 없어졌으나 그것은 존재만으로 쓸모가 되어버렸다. 저것으로 내 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없지만 가위가 꼭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 조차 자르지 못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었다.


쓸모를 다했으므로 버리는 사람, 쓸모를 다해 버려진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나는 이채로운 별사탕이므로 후자가 되고 싶었다. 당신에게서 쓸모와 능력만을 요구하지 않고 당신 자체로 아름답다 말해 주는 달콤한 별사탕.






Marcel Duchamp, Roue de Bicyclette



의미가 있다면 대량생산품도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뒤샹.

바퀴가 꼭 굴러야만 바퀴인것은 아니다. 기능을 상실한 바퀴는 되려 우아한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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