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지윤 Jun 01. 2020

이우환 선생님의 돌덩이와 나의 돌멩이

쓸모없는 것 (이우환의 돌)

나의 돌멩이가 이우환 선생님의 돌덩이가 될 때까지


쓸모없음의 쓸모


이우환 선생님 생각이 나서.


집 앞 길목에 수일 전부터 유난히 눈에 띄는 돌멩이가 보였다. 인력으로 부순 날이선 검고 작은 자갈 위에 소곳하면서도 우뚝하게 홀로 놓여 있던 돌멩이 하나가 나를 유심하게 바라본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 놓으려고 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이런 곳에, 누가.

매일 지나다니던 길, 어제도 있었다면 반드시 눈에 띌 생경함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려도 그러한 생경함이 어제는 없었다. 전에 없던 그것이 오늘 (부터) 이곳이 자리를 잡게 된 사연이 무엇일까. 그리고는 마주쳤던 눈을 떼고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한결같이 생경한 그 자리에 소곳하게 놓여 있었다. 누구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그리고는 문득 이우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ㅡ주먹만한 작은 돌멩이라도 엄청난 시간을 품은 덩어리다, 어쩌면 지구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다ㅡ


그리고는 홀로 생경이 놓인 돌이 내일도 그 자리에 있다면 나는 필연 그것을 집어와야 한다, 에 생각에 미쳤다. 다음날 보니 그것은 그 자리에 다소곳하나 뚝심 있게 그대로 있었다. 어제 비가 창문을 부술 듯 왔는데 비를 맞고도 그대로구나 너는, 하고 생각하고 얼른 집어 들은 손이 아프게 차다. 이런 찬바람에도 그대로구나, 너는. 강하고 변함없는 너에게 감탄을 한다

.

이우환 선생님 말씀이 자신이 찾아다닌다는 돌은 "두루뭉술하고 아무렇게나 생겨야 한다" 고 했다. 예쁜 것도 말고 특출 난 것도 말고 두루뭉술 아무렇게나. 마침 얼마나 두루뭉술하고 마나 아무렇게나 생겼는지 선생님이 찾아다니던 돌들의 미니어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시간을 품은 것일까. 너는.

가끔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돌덩이들이 공간을 작품 삼아 검질기게 앉아 사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옆에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을 지경이다.


ㅡ처음에는 왜소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돌들을 이리저리 옮겨보고 움직여 보고 어르다 보면 점점 돌도 철판도 스스로 살아나고 공기도 변하고 주변이 변한다, 어느 순간 왜소하기만 했던 돌들이 늠름해진다ㅡ


Relatum - Exsitence


작가란 사실 자신의 한과 혼을 아낌없이 작품 안에 담아내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수명보다 긴 시간을 견디고 존재해왔던 돌덩이를 들어 작품을 만든다.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외면당했던 무언가 앞에 관심이 생기고 사람들이 모인다. 작품을 감상하고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작가의 한과 혼을 나눠 받고 비로소 스스로 빛과 생기를 발휘하는 돌덩이. 작가에게 수혈을 받아 뜨겁게 삶이라는 에너지를 품고 작품이 된 돌덩이는 되려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감동을 돌려준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비록 이우환 선생님 손에 붙들린 돌이나 내 손에 붙들린 돌이나 돌이기는 마찬가지이나 선생님의 세월과 영혼이 나의 것보다는 농도가 짙었다. 세월을 모으고 많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내면에 축적해 일순 길에서 마주친 돌덩이에도 내 혼과 한을 담아낼 수 있도록 나를, 나부터 채워내야 했다. 언젠가는 내가 집어 든 가치 없는 무언가에도 힘이 넘치는 생을 부여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위안과 감동을 받고 행복 해 질 수 있도록.


갑자기, 이우환 선생님이 생각나서.




Relatum - Silence Iron Plate, Natural Stone



Relatum - Canvas, Still bar and Stone






Edgewater, New Jersey 2018



Edgewater, New Jersey 2018



길바닥에 홀연히 놓여있던 돌.

누군가가 예쁘게 그림을 그려 올려 두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그 작은 돌멩이를 모두가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는다. 볼품없는 돌에 마음을 쏟은 누군가로 인해 순간 쓸모없던 그것은 작품이 된다.




이전 04화 아침 열 시 삼십칠 분, 내 생에 가장 젊은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