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 울어. 나는 무너지지 않아. 나는 괜찮아.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 아침에 일어나서 뜨는 해를 바라보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선다. 바쁘게 돌아가는 한의원 치료실 근무를 해내고, 어쩔 땐 이틀 연속 근무를 견뎌내고, 내일은 쉬는 날이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빡세게 돌아가는 일상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뭘까, 하고. 그건 바로 내 생명력, 내 의지이다. 그건 누구도 꺾을 수 없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깊은 곳에 있다. 나는 나의 생명력을 믿는다. 깊고 강하게, 믿고 있다. 나름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는 또 만만찮은 펀치를 날린다. 나는 쓰러진다. 그래도 일어난다. 그게 나니까.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고 집에 왔더니 발에서 냄새가 난다. (웃음) 이번 주에 발견한 좋은 소식이 있다. 한의원 사람들 중에 흡연자가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따로 지정된 흡연 구역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도 이번 주에 그 대열에 합류했다. 다들 일하는 시간에는 못 피우니 줄담배를 피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 옆에 서서 연거푸 네 대의 담배를 태웠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환자들, 바삐 돌아다니는 원장님들, 치료실은 작은 전쟁터이다.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면 사고가 발생한다. 오늘은 같은 동료 중 한 사람이 발침 실수를 해서 환자가 노발대발하는 사건이 생겼다. 다들 위로했지만 나는 안다. 그 직원이 속으로 얼마나 자책하고 있을지를. 마음이 안 좋았다. 나 역시 발침 실수를 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잘 해결되어서 크게 일이 번진 적은 없다. 앞으로도 정신 더 똑바로 차려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딸과 아침, 저녁으로 통화하니 마음이 산뜻해지고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좀 전에 통화했을 때 딸은 자기가 밤에 안고 자는 인형 세 개를 내게 보여주었다. 토끼 인형 두 개, 고양이 인형 하나. 흰색 토끼 인형은 딸이 아주 어릴 때 내 전 남자친구가 사준 것이었다. 그 낡은 걸 아직도 들고 자다니. 귀여운 딸. 딸을 보면 힘이 샘솟는다. 다음 주에 우리집에 딸이 처음으로 온다. 너무나도 기대된다. 좁고 낡은 내 원룸을 보고 딸은 무슨 말을 할까 과연. 잘 때 불편하진 않을까. 여러가지 걱정들이 많지만, 그래도 내 공간에 딸을 처음으로 초대한다고 생각하니 설레고 기분 좋다. 부디 3일 내내 기분 좋은 추억들만 만들고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내 깊고 습한 곳에 흐르는 생명의 시냇물. 그곳에는 항상 맑고 깨끗한 물만 흐른다. 시냇물 주위로는 갖은 이끼들과 숲풀들이 자라고 있고, 그 옆에는 큰 나무들이 거인처럼 서 있다. 글을 쓸 때면 나는 그 숲에 잠깐 다녀온다. 그곳은 아무도 올 수 없는 곳. 나밖에는 쉴 수 없는 곳. 비밀스럽고 신성한 곳. 나는 내 스스로 그런 숲을 내 마음 안에 만들어놓았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생채기가 나면 좀 어때. 마음 좀 다치면 뭐 어때. 나는 홀로 그 숲에 들어가 편히 쉬면 되는 것이다. 가만히 돌 위에 앉아 발을 물 속에 집어넣고 휘저어 보기도 하고, 날아다니는 새들과 나비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위로받는다. 원래 인생은 혼자고, 스스로 고독해지는 시간을 필시 갖지 않으면 사람은 너무 뜨겁고 열이 올라 불타버릴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상하게 긴장을 빡 하고 있어서 그런지 퇴근해도 피곤에 절어있다는 감각이 없다. 무뎌진 건지, 익숙해진 건지, 출근 2주차인데 이 정도면 버틸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다. 보통의 나라면 그만두고 싶어질 텐데 버티는 게. 아는 언니가 그랬다. 버티는 자가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나도 이상하고 너도 이상하다는 걸 인정하면 버텨진다고. 그래도 난 믿고 싶다. 우리 모두가 괜찮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들을 갖고 있다고. 동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그걸 보고 나도 배운다. 따라한다. 그거면 되지 않았나? 응. 그거면 됐어. 충분해.
나의 강한 의지를 믿는다.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내 안의 생명력.
살아숨쉬는 그 샘물을 오늘도 한껏 떠다 마셨다.
오늘도 존재했다.
지금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