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대학 졸업을 하고 난 직후였는데, 난 더 배움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이리저리 대학 내부를 쏘다녔다. 대학원에 갈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내가 교수실 위로 올라가려는데, 이미 대기업에 취업된 동기들이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 애들은 인사를 하고 총장실로 올라갔다. 나는 열패감을 느끼며 웅얼거리다가 잠에서 깨었다. 꿈 속에서 거울을 보았다. 내 모습은 희미해져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노래도 불러보고 춤도 춰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듯한 내 모습. 가족들이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난 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꿈에서 깨고 나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내 계급은 뭘까? 낡은 원룸에서, 딱 받을 만큼만 받으며, 저축은 그럭저럭 하는 생활. 난 누가 봐도 상위층은 아니다. 사람을 계급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게 요즘 시대상이긴 한데, 난 그런 계급 나누기에 의문이 들었다.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금수저 은수저 하는 게 이 세상인데, 이미 이 세상에는 계급이 존재하는데, 나 혼자만 아니라고, 아니라고, 사람에 계급 따윈 없다고, 다들 살아가는 꼴이 다른 거라고 외쳐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고.
간호조무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돈을 아주 많이 벌 수 없는 직업이다. 하지만 가늘고 길게 갈 수는 있는 직업이다. 그렇다고 편집자가 돈을 많이 벌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정신승리를 해야 하는 건데, 내가 어느 날 이 지리멸렬한 생활에 질려 좌절할까 봐 걱정이다. 진짜 사람에 계급이 있고, 그 계급의 분수대로 살아가야만 한다, 라는 마인드가 정착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 하지만 나는 또다시 사람은 저마다 사는 꼴이 다르고, 각자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겠지. 인생 다 산 척하지 말라고, 계급은 있다고, 내 뺨을 후려갈기는 말들을 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실 바보가 아닐까? 다른 사람들 다 자기 분수를 알고 사는데, 나만 혼자 특별하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나 혼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근데 뭐 어쩌라고. 돈을 적게 벌면 굽신거리면서 살아야 하나? 내가 무슨 돈 많은 남자 하나 물어보겠다고 난리 치는 것도 아닌데, 돈 한번 더 벌어보겠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난 내 인생에 만족하면서 살 뿐인데.
사람에도 계급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슬플 일이다. 이 시대의 기준에서 바라봤을 때 나는 최하위 계급일지도 모른다. 뭣도 없다. 낡은 원룸에서, 간호조무사 월급을 받으며, 게다가 비양육이긴 하지만 먹여살려야 할 애까지 딸렸다. 배운 건 학사 졸업장 달랑 하나고, 딱히 전문적인 기술 같은 것도 없다. 모아놓은 돈도 없다. 난 최악이 아닌가? 아득바득 있어 보이려고 뭘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살고 있다. 왜냐하면 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치 죽을 준비라도 해놓은 사람처럼 말하는데, 그게 아니라, 언제 이 세상 여행 끝날지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능력이 많아도 죽을 사람은 죽는다. 가난한 자의 자기 위로 같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난 절대로 처지 비관 이런 걸로 자살할 생각이 없다. 그냥 내 처지가 이러면 이런 대로 살다가 자연사하고 싶다.
물론 나도 바보는 아니라서 친구들과의 격차는 느낀다. 내 친구 하나는 결혼하고 나서 일을 안하는 전업 주부인데 매일 골프를 치러 다니고 프리다이빙을 하러 해외여행을 간다. 서울에 자가 아파트도 마련해서 살고 있고 매일 빚때문에 힘들다면서도 인스타에 보면 새 가구와 새 가전제품을 소개하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물론 힘들게 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힘듦을 비관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저들보다 못 벌까, 나는 왜 저들보다 못 가졌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들이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 중년인 40대, 이 어지중간한 나이에서 나는 실시간으로 좌절감을 느끼는 중이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향한 믿음은 변치 않는다. 누가 누굴 비교해. 누구와 누굴 비교해. 그냥 내 인생이나 똑바로 살자. 내 인생이나 묵묵히 살자. 사람에도 계급이 존재하지만 난 그 바운더리를 깨부수는 마인드로 멋지게 살자. 뭣도 없지만 뭣도 있는 것처럼, 한 치 앞만 보지 말고 내 자신 이 세상 뜨는 그 순간 항상 떠올리면서 살아가자. 내가 출가했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것도 없이, 나 훌훌 털어버리고, 이 세상을 등지고 절간에 혼자 조용히 명상하는 게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물욕, 과시욕, 탐욕. 모든 걸 버리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해서 내 인생을 깎아내리는 짓만은 하지 말자고. 나 자신을 사랑해도 모자른 시간인데. 어딜 감히 나 스스로를 계급 밑바닥에 두고 비관해.
난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비계급주의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말릴 수 없는 자아도취자일지도 모른다. 난 분명히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계급은 없다. 다이다이로 맞장 뜨면 그 사람의 영혼밖에 남지 않는다. 영혼 대 영혼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 것 같은가? 인생을 통으로 보는 놈이 이긴다. 인생이 유한하고, 언제나 꺼질 수 있는 불꽃임을 인정하는 놈이 이긴다. 자기 자신 안으로 한없이 파고들어본 놈이 이긴다. 영혼 대 영혼의 대결에서 지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이 세상을, 이 우주를, 거시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치 앞만 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를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 내 영혼은 체급이 다르다고. 비록 낡은 원룸에서 웅크려 자다가 깨어나 쪼그려앉아 담배나 피우고 있지만, 난 다른 걸 본다. 난 영원히 꿈꾸는 사람이다. 난 영원히 철들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에 계급은 없다. 계급 따윈 없다. 그저 영혼의 빛깔이 다른 것뿐이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