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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Nov 25. 2021

이혼 후 오는 세 가지 감정

이혼한 지 5개월이 지났다. 나는 아직 이혼을 통과하는 중이다. 나는 많은 것들과 이별하고 있다. 세 사람이 모여 살던 그 가정과, 9년을 만난 전 남편과, 안온하지만 불편했던 일상들과 이별 중이다. 나는 아직 적절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이혼 초보다. 누군가 말했다. 이혼 후에 상실감과 우울,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고. 나는 그것들을 착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상실감은 말 그대로 원가정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감정이다. 이혼 전, 아이의 탄생 이후 원가정은 더욱 튼튼하게 묶이는 것처럼 보였다. 본가와 시가 어른들은 이제야 우리가 핏줄로 엮였다는 데에 매우 기뻐하셨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균열의 조짐을 보이던 전 남편과 나 사이는 말 그대로 쩌적 하고 갈라져 버렸다. 결론적으로 자식은 원가정을 더 단단하게 묶지 못했다. 우리 사이의 갈등은 자식 하나 낳아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놈의 성격 차이. 우리는 아이를 낳은 지 1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내 손으로 찢어놓았지만 상실감은 극에 달했다. 결혼이라는 거, 정말 튼튼한 거더라. 그 제도 아래서 산다는 거 정말 편리한 거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하나 보더라. 며칠 전 놀이터에 갔을 때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 부모를 만났다. 그 아이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오가며 웃고 있었다. 나는 떨어지는 태양을 보며 달이라고 소리지르는 딸아이를 챙기며 그 아이의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상실감이라는 건 그렇게 훅 다가온다. 놀이터에 나갔을 때, 또는 마트에 갔을 때, 산책을 나갔을 때 부모 두 명을 동반하고 나온 어린아이를 보면 나는 마음이 선득해진다. 딸아이가 혹여나 아빠! 하고 허공에다 부르지 않을까 겁이 나는 것이다. 아빠는 죽지 않고, 떠나지 않고, 어딘가에 있어. 하지만 일상 속 네 곁엔 함께 있을 수 없는 존재야. 딸아이에게 이렇게 담담히 말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나도 모른다.


우울은 생의 저변에 깔린 지독한 놈이다. 우울은 깊고 고요하게 내 안에서 흐른다. 그 위에 무력감이라는 놈이 더해지면 그날은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먹을 수도 없다. 실제로 나는 이혼 후 살이 8kg이나 빠졌다. 자의로 욕망을 거세한 것처럼 무색무미무취의 상태가 된다. 우울은 부모님의 누렇게 뜬 웃는 얼굴에서 온다. 우울은 아이의 밝게 빛나는 웃음에서 온다. 우울은 깨끗이 설거지된 싱크대에서 온다. 우울은 햇살 좋은 오전 나른한 방 안에서 온다. 그렇게 이혼 후에도 일상이 뚝심있게 진행되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밤사이 40도 가까이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나 혼자 돌봐야 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울과 무력감은 기쁨에서 온다. 아이가 방 안에서 흔들흔들 동화책을 들고 춤을 출 때, 아이가 비눗방울을 터트리며 까르르 웃을 때,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데에서 온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바로 옆에서 같이 지켜봐주고 기뻐해줄 사람이 없다는 데서 온다. 자기, 우리 딸 오늘 진짜 이쁜 똥 쌌어. 자기, 오늘 우리 딸이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꽃 좀 봐봐. 자기, 어제는 우리 딸이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어, 자기, 우리 딸 이제 이가 나려고 하나봐......


슬픔은 울음에 싸먹으면 대충 때워지지만,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은 것들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은 때로는 절망적이다. 결혼이라는 건, 아마도, 슬픔을 나누기 위함보다는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어, 나 이렇게 기뻐, 나 이렇게 좋아, 이렇게 즐거워, 하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내비치기 위한 모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작은 모임을 내 손으로 찢어 버렸다. 나는 전 남편과 헤어진 것에는 전혀 후회가 없으나, 원가정을 해체시켜 놓았다는 것에는 일말의 껄끄러움이 남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이제 남은 두 사람, 딸아이와 내가 만든 새로운 원가정의 방향키는 내가 쥐고 있는데. 아무리 상실감과 우울, 무력감이 나를 꽝꽝 쳐대도 나는 맷집 좋은 권투 선수처럼 다시 일어나고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려면 이혼 후 오는 감정들이 나를 선선히 통과하게끔 좀 더 투명해지고 가벼워져야 한다. 절대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


덧.

제일 센 놈은 외로움이다.

이놈은 결혼을 하든 하지 않았든, 이혼을 했든 안 했든 당신에게 온다.

유유히 다가온다. 밤에도 낮에도. 꿈속에서도.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결혼도, 외로움을 없애기 위한 이혼도 이 세상에는 없다.

외로움은 죽기 전까지 끌어안고 가야 할 유령이다.

외로움에 비하면 상실감과 우울, 무력감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죽기 전까지 외로움과 이 한 생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자식도, 부모도, 전 남편도 없다.

오로지 나뿐이다.

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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