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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Dec 27. 2021

조울증 환자의 변

나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조울증(양극성 정동장애) 약을 먹지 않고 버티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정신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결론은 대실패였고 나는 오늘 다시 약을 먹었다. 아래가 내 증상들이다.


1. 머리에 꺼지지 않는 컴퓨터 한 대가 들어찬 것처럼 계속 위이잉 하며 어지러웠다.

2. 왼쪽 얼굴이 지나치게 민감해져 잠깐씩 스치는 머리카락에도 짜증이 났다.

3. 습관적으로 눈알이 팽팽 돌아서 사람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4. 어떤 것에 과도하게 집중하면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5. 감각과 인식이 일치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내가 들고 있는 담배 한 개비의 부피가 지나치게 얇거나 두껍게 느껴지는 것. 음식의 맛이 잘 안 느껴지는 것.

6. 짜증나는 순간 폭력적인 말들이 속에서 재현되었다. 예를 들어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넣을 게 많다, 이러면 씨발 작작 좀 처먹지 하는 말들이 생각 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오늘 상담 선생님과 엄마에게 내 실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상담 선생님은 절대 약을 끊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엄마는 화를 내면서 너는 지금 당뇨약이나 혈압약처럼 조울증약을 먹고 있는 거라고, 그 사실을 알겠냐고, 제대로 현실 직시를 하라며 호되게 나를 혼냈다.


1부터 6까지는 표면적인 현상들이고, 속에서는 정말 많은 말들과 생각들이 폭발적으로 생성되어 나를 괴롭혔다. 나는 계속해서 좌절했다. 아, 나는 이제 약을 먹지 않고서는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불구가 되었구나. 나는 불구구나. 나는 약 처방이 필수로 필요한 인간이구나.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하는 절망.


약을 먹고 한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위잉 돌아가던 컴퓨터 한 대가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쉬이이이 소리를 내며 그 컴퓨터는 식어가고 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들어 편의점에서 새우버거를 하나 사 와서 커피랑 같이 먹었다. 속은 영 불편하고 가디건을 껴입은 손목과 등은 뜨뜻해서 묘하게 불쾌하지만 그래도 머릿속이 차가워지니 살 만한 것 같다.


조울증은 정말 지랄 맞은 병이다. 증상이 심해지면 공황 발작도 오는데 대표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는 느낌과 눈알 오른쪽이 휙 돌아가는 느낌이 있다. 이 상태에 들어가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이를 볼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담배를 피울 수도 없다. 지금이 우울 삽화 기간이라 그나마 다행이지, 조증 삽화일 때는 더하다. 조증 삽화일 때의 나는 정말 미친 사람같다. 내가 정말 조울증 환자일까 의심했던 적도 정말 많다. 그래서 더 실험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약을 안 먹어도 멀쩡히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들.


조증 삽화일 때 나는 일주일에 200만 원어치의 게임 현질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은 80만 원짜리 부츠를 사서 사이즈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그냥 남에게 줬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 10만 원짜리 케이크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기분이 나빠서 30만 원짜리 운동화를 샀다. 좌절의 깊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몇백만원짜리 가방을 사고, 27만원을 주고 산 안경이 내 얼굴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쓰레기통으로 처박아 버렸다. 문구점에 들어가서는 스티커만 5만원 어치를 사서 벽에 마구 붙여 낭비했다. 어떤 날은 갑자기 아무 의미 없이 피자 10판을 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갑자기 사고는 비약하고, 나는 어떤 연예인과 콜라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 없는 망상에 휩싸인다. (실제로 그 연예인에게 콜라보를 하자고 디엠을 보냈다.) 어떤 날은 내가 천연염색 장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천연염색 학과 교수와 만나서 면담까지 나누었다.) 어떤 날은 내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선자 소감 노트를 작성하기까지 했다.) 어떤 날은 내 쪼그라든 자아가 너무 가여워서 죽고 싶기만 할 때도 있다. 조증 삽화는 정말 무섭다. 화염같다.


나는 내가 이러다 또다른 정신 질병을 앓게 될까 두렵다. 더 큰 화마를 막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수도권으로 올라가서, 약을 타와야만 한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봐야만 한다. 조울증은 정말 위험한 병이다. 나는 내 언어가 와해될까봐 걱정된다. 내 글이 소란스럽고 속시끄러운 알 수 없는 기호 체계로 보일까봐 걱정된다.


나는 아이를 재우며 필사적으로 아이의 볼에 입맞춘다. 아이의 이마에 입맞춘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아 본다. 마치 대지에 입을 맞추는 사람처럼. 아이의 보드라운 품에 머리를 어 본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것처럼. 내 피부는 버석하고 나는 낡았다. 나는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불구가 되어 버린 사람이다. 당뇨약이나 혈압약처럼 아마 죽기 전까지 조울증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전히 나는 희망을 좇는다.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용을 쓴다. 글을 쓴다. 내 병증에 대한 것을 낱낱이 기록해 놓고 그걸 들여다 본다. 희망으로 끝내기 위해서. 나는 빌드업을 하고 나는 반복적으로 강박적으로 나를 채찍질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어, 하는 말을 내 가슴속에서 이끌어낸다. 그래도 힘을 내야지, 하는 말을 해 본다. 직사각형의 투룸에서 아이와 둘이 살고 있는 서른일곱의 정신 병증이 있는, 이혼한 싱글맘도 이렇게 살아 있어, 하고 되뇌어 본다.


그래. 나는 살아 있어. 조금쯤 불구더라도 살아 있어.

시궁창의 쥐새끼처럼 나는 살아남을 거고,

시커멓고 지저분한 바퀴벌레의 몸을 할지라도 나는 이 겨울을 뚫고 나갈 거다.

이 어둠이 내게 주는 시련을 온몸으로 맞으리.

온몸으로 맞으리.

내일의 새 아침을 기다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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