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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Jun 16. 2022

어제 이혼 1주년이었다

어제는 춥고 비가 왔다. 마치 11월의 날씨 같았다. 나는 스산하고 위험스런 바람이 부는 날을 온몸으로 피하고 싶었다. 어제는 볶음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맛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왜? 이혼 1주년이 뭐라고? 아침에 약을 먹는 것조차 깜빡하고 도서관으로 나와서 인강을 듣고 글을 쓰고 하다가 문득 1주년이라는 걸 알았다. 내 손에 끼워진 이혼 1주년 반지. 이혼하던 날 샀던 것이다. 지금도 끼워져 있다. 나는 반지를 돌돌 돌리면서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날은 습한 날이었고 어제처럼 하늘에 구름이 껴 있었다. 우리는 각자 도착해서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서류를 확인하고 판사가 선언을 하던 때, 전 남편은 먼저 일어서서 나가 버렸다. 나는 아, 이대로 끝이구나 하고 느린 발걸음으로 전 남편이 간 길을 그대로 걸어갔다.


길 끝에 그가 서 있었다.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지내요. 그리고 돈 아끼지 말고 자신한테 투자 좀 해요. 건강 관리 좀 하고. 아이 잘 부탁할게요. 하던 그의 마지막 말. 지금도 우리는 카톡을 하고 통화를 하지만 어째선지 그게 진짜 그의 마지막 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부탁할게요. 하던 그의 말이 아직도 내 귓가에 남아 있다. 우리는 다른 길로 걸어갔다. 그는 차를 타러, 나는 지하철을 타러. 나는 그길로 백화점으로 가서 이 반지를 구입했다. 그러고는 숙소에 들어가 좀 잠을 자다가 강남 한복판에 있는 펍에 들어가 진창 술을 마시고 다시 나왔다. 바보같이 전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왜 전화했나요. 술마셨나요. 전화는 해도 되는데, 술마시고 이러지는 마세요. 그렇게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던 전남편은 끊을게요, 했다.


나는 바보같이 왜 전화를 했을까. 나는 바보같이 왜 이혼 1주년 반지 따위를 산 걸까. 왜 술을 마신 걸까. 내 마음에는 춥고 비가 왔었다. 안으로 안으로 자꾸만 들이쳐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안을 뜨거운 술로 채우려 해보아도 내 마음에는 폭풍밖에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 찢어지던 마음, 그 갈기갈기 발겨지던 마음을 어찌 잠재울 수 있었을까. 천사가 와도 요정이 와도 그 어떤 부처가 와도 내 마음은 다스릴 수 없었을 것 같다. 나는 그러고 몇날 며칠을 울었다. 레드 제플린 3집을 들으며, 그렇게 울어댔다. 꼴에 분위기 있게 울어보자고 레드제플린을 틀긴 틀었는데, 내 마음속 상심을 후벼파는 그 음악은 나를 조금쯤 상하게 했다. 이혼은 끝이었다. 그렇게 마무리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나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년을 굽이돌아 오면서 나는 많이 단단해진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면으로는 한없이 여려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도 한없이 커졌다가 쪼그라들기도 한다. 나 혼자 해내야 된다는 생각도 들면서 또 나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 좌절하기도 한다. 이혼해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온갖 장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아빠가 데리러 오지 않는 어린이집 하원 시간, 아빠가 함께하지 않는 놀이터 놀이, 아빠가 함께하지 않는 여름 바캉스. 다행히 전 남편은 내 딸을 자주 보러 온다.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많이 애쓰는 것 같다. 그래도 부족한 건 부족한 거다. 나는 원가정을 찢어놓았고, 거기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시부모님, 그리고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남동생, 아가씨, 무엇보다도 내 딸. 내 딸. 내 딸의 작은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항상 면접 교섭 때마다 '엄마는 안 가? 엄마도 같이 가' 하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딸.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나는 딸을 전 남편에게 보내고는 돌아선다.


내 마음속에는 폭풍이 아직도 휘몰아치고 있다. 축축하고 젖은 그 폭풍우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나를 적신다. 나를 흔든다. 갑자기 아무도 살지 않는 허물어진 성 근처를 걷고 싶다. 갑자기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곳을 홀로 맥주병을 들고 홀짝이며 걷고 싶다. 비오는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하염없이 그 비를 맞고 싶다. 나는 아직 불안정하다. 내 인생, 어떻게 될까.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럴까.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나는 더 이상 글을 써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절망감이 든다. 이혼 1주년, 그 사람은 뭐 했을까. 아무 생각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사람은 그런 거 세세히 따지고 자시고 할 이가 아니니까. 그냥 하루처럼 보냈겠지. 우리의 헤어짐은, 우리의 헤어짐은 함께 산 9년의 세월의 장막을 찢고 새로운 장면을 우리에게 가져와 주었다. 우리의 헤어짐은, 우리의 헤어짐은 새로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의 헤어짐은, 우리의 헤어짐은 그렇게 새로웠다.


당신을 여름에 만났었지. 당신은 그 톡톡 튀는 빗방울 같은 신선한 공기처럼 내게 다가왔지.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없어. 우리는 계속 만날 거니까. 죽을 때까지 만날 수도 있겠지, 우리 딸이 있는 이상. 당신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어. 기쁨, 슬픔, 고통, 절망 등을 주었어. 당신을 잊을 수는 없어. 우리는 '아이 배변 훈련은 잘하고 있나요' 따위의 문자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잖아. '이번 주에는 삼 일 데리고 있을게요' 같은 일상적인 문자를 나누고, 또 당신은, 우리 엄마아빠가 사는 곳에 불이 났다고 해서, 따로 전화를 해서 걱정을 하는 사람이잖아. 어디서든지 잘 살아. 어제 내가 잠시 눈물을 보인 것은, 모르겠어, 당신과 함께 살았던 그 잠시간의 행복감에 도취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했던 마지막 데이트를 생각해. 우리가 이혼 후 했던 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우리는 특별한 인연이었어. 당신 그거 알아? 어제 우리 이혼 1주년이었어.


잘 살자.

일상적인 카톡이나 전화를 어색하게 주고받으면서,

아이 떼는 좀 덜 부리나요, 하는 걱정 섞인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그렇게 잘 살아 보자.

어쩌면 나는 당신과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인연일지도 몰라.

모르겠어, 이걸로 내가 위안을 받을지 스트레스를 받을지는.

하지만 우리 딸로 인해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싫지 않아.

우리는 서로를 결코 잃을 수 없어.

그렇다고 당신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우리는 헤어졌지만 헤어질 수 없는 이상한 관계야.

이상한 관계야.

당신 그거 알아?

어제 우리 이혼 1주년이었어.

제발, 우리, 잘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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