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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Jul 22. 2022

내가 나홀로 존재할 때

삶을 돌이켜볼 때 좋았던 순간들은 거의 나홀로 존재했을 때였다. 나홀로 쿠바 해변에서 모히또를 마시며 말보로 레드를 피웠을 때, 나홀로 밤을 새며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끝냈을 때, 나홀로 여행을 가서 모르는 골목을 휘적거렸을 때. 그런데 나는 왜 이제 와서 나홀로인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가.


누가 그랬다. 나는 지금 엄청 사랑받아야 할 시기라고. 외로우면 안 된다고. 듣자마자 나는 동의했다. 사랑을 갈구한다. 관심을 갈구한다. 나홀로 있는 것보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게 좋다. 이혼 후 거의 관계 중독이다시피 사람들을 만났다. 카톡을 하고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하고 모임에 들어갔다. 누군가를 만나며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런데도 충족이 되지 않는 이 외로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결국 나홀로 설 수 없을 때는 내 고독을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이를 재우며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몇 번은 들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이렇게 사랑받는 내가 있는데 무슨 사랑을 갈구한다는 말인가. 이런 사랑을 받고 있는데. 고작 낳아줬다는 이유로 이렇게 맹목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데. 아이의 사랑은 순진하며 의미가 없고 때 타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사랑.


그럼에도 나는 내 고독을 감당할 수가 없다. 혼자 있을 때, 누군가와 연락하고 있지 않을 때, 나 혼자 잠들어야만 할 때, 나는 울거나 글을 쓴다. 대체 고독을 감당한다는 말이 무언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독파하면 조금 더 그 고독이 나아질까? 사람들은 참으로 자기 고독들을 잘 숨기거나 갈무리한다. 그렇게 보인다.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데. 내 고독은 기침과도 같아서, 사랑과도 같아서, 가난과도 같아서, 시도 때도 없이 남들 앞에서 튀어나온다.


며칠 전 아이 때문에 병원에 가서 전 남편을 만났다. 전 남편은 더위를 많이 타서 손수건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그가 손수건을 꺼냈다. 익숙한 빛깔과 무늬. 내가 신혼 초에 혼자 여행을 갔다가 사준 손수건이었다. 버리지도 않고 아직도 쓰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나왔다. 울고 말았다. '자기'라고 부르며 안기고 싶었다.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바꾼 폰을 보았다. 그와 함께 몇년 전 바꾼 폰을 나는 아직 쓰고 있는데, 그는 폰을 바꾸고 케이스도 예쁜 걸로 끼워 놓았다. 내 눈물은 쏙 들어갔고, 방금 전까지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도 흩어져 버렸다.


전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러다가도 미워한다. 게다가 나는 연애까지 하는 중이다. 거의 헤어진 연애지만, 여러 군데 덕지덕지 바느질을 한 낡은 양말 같은 너덜너덜한 연애지만, 그래도, 아직,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한순간도 전 남편과 그 사람을 비교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돌싱의 연애란 처참하다. 결혼했던 사람과 연애하는 사람을 비교하면서 만나다니, 정말 저열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처한 곤란한 상황에 나는 줄담배와 굶주림으로 대응한다. 줄담배를 피우고, 저녁을 먹지 않는다.


장 그르니에의 섬을 생각한다. 그는 하루에 세 번 무섭다고 했다. 해가 저물 때, 잠들려고 할 때, 그리고 잠에서 깨어날 때.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나를 저버리는 세 번, 이라고. 그가 키우는 물루라는 고양이를 생각한다. 물루는 그 세 번의 저버림조차 무서워하지 않으리. 나는 그 무서움을 하루에도 몇십 번씩 느끼는 중이다. 하루하루가 왜 이리 고단하고 지난한지 모르겠다.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나를 수십 번이고 저버린다. 나는 어퍼컷 펀치를 여러번 맞은 나이 든 복서처럼 나동그라진다.


조만간 나는 나홀로 존재할 것이다. 헤어질 것이다. 헤어나올 것이다. 비는 멎고, 태양은 떠오르리. 내가 내 고독조차 감당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바로 설 수 없다. 칼로 상흔을 헤집는 이 고독, 이 우습고 하찮으며 때로는 나를 약올리듯 놀려대는 이 고독, 이 빌어먹을 놈의 고독을 나는 살아내야만 한다. 내가 나홀로 존재할 때만이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연애는 무슨 연애. 글은 무슨 글. 그놈의 글. 글. 글. 그놈의 디저트, 그놈의 짜장면, 그놈의 담배, 그놈의 낮잠, 한숨, 빨래, 그리고 섹스, 그놈의 섹스.


오늘도 내 몸무게는 41kg이고 나는 점심으로 카야버터베이글과 아이스카페라떼를 먹었다. 저녁에는 술 몇 모금을 마신 게 다다. 내일은 삼선짜장면으로 점심을 먹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오랜만에 삼겹살을 구워주려고 한다. 내가 작게 사랑하는 것들을 한데 모아 더 사랑해 주어야겠다. 내가 크게 사랑하는 것들은 오래 두고 보아야겠다. 내 사랑, 아이의 이마에 다정스러운 키스를. 그리고 내 자신, 내 자신에게는 나홀로 있음의 기쁨을. 고독을. 고독을. 제발, 더 고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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